판우군부사 변계량의 졸기
판우군부사 변계량이 죽었다. 계량의 자는 거경(巨卿)이요, 호는 춘정(春亭)이니, 밀양부(密陽府) 사람 옥란(玉蘭)의 아들이었다.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4살에 고시대귀(古詩對句)를 외고 6살에 벌써 글귀를 지었다. 14살에 진사 시험에 합격하고 15살에 생원 시험에 합격하였으며, 17살에 문과에 급제하여 전교 주부(典校主簿)에 보직(補職)되어 여러 번 옮겨 사헌 시사(司憲侍史)가 되고, 성균 악정(成均樂正)을 지나 직 예문관(直藝文館)·사재 소감 겸 예문 응교(司宰少監兼藝文應敎)·예문 직제학(藝文直提學)을 지냈다. 정해년 중시(重試)에서 을과(乙科)의 제1등으로 뽑혀서 특별히 예조 우참의에 임명되고, 기축년에 예문관 제학에 승진하였다. 을미년에 크게 가물어서 임금이 심히 근심하니, 계량이 아뢰기를,
"본국에서 하늘에 제사하는 것은 비록 예(禮)가 아니라고 말할 것이나, 일이 이미 박절하오니 원단(圓壇)에 기도하옵소서."
하니, 곧 계량에게 글을 지어 제사지내라고 명하였다. 정유년에 예문 대제학에 임명되고 이듬해에 예조 판서로 옮겼다가 이내 의정부 참찬으로 옮겼다. 그 다음 해에 왜놈들이 우리 나라 남쪽 변경을 침략하여 죽이고 약탈함이 많았는데, 태종 대왕이 계량의 말을 취하여 정벌(征伐)하기로 하였다. 병오년에 판우군 도총제 부사가 되었다가 이에 이르러 죽으니, 나이 62살이었다. 부고를 듣자 사흘 동안 조회를 정지하고, 유사에게 명하여 치제(致祭)하고 부의와 관(棺)을 하사하며, 동궁도 부의로 쌀과 콩을 아울러 30석을 내리었다. 시호를 문숙(文肅)이라 하니, 배우기에 부지런하고 묻기를 좋아함이 문(文)이요, 마음을 굳게 잡고 일을 결단함이 숙(肅)이다. 계량이 문형(文衡)085) 을 거의 20년 동안이나 맡아서 대국을 섬기고 이웃 나라를 교제하는 사명(詞命)이 그 손에서 많이 나왔고, 시험을 주장하여 선비를 뽑는 데 한결같이 지극히 공정하게 하여, 전조(前朝)의 함부로 부정(不正)하게 하던 습관을 다 고쳤으며, 일을 의논하고 의문을 해결하는 데에 이따금 다른 사람의 상상 밖에 나오는 일이 있었다. 그러나 문(文)을 맡은 대신으로서 살기를 탐하고 죽음을 두려워하며, 귀신을 섬기고 부처를 받들며, 하늘에 절하는 일까지 하여 하지 않는 바가 없으니, 식자들이 조롱하였다. 처음에 철원 부사 권총(權總)의 딸에게 장가들었다가 버리고, 또 오씨(吳氏)에게 장가들었다가 죽고, 또 이촌(李村)의 딸에게 장가들어 몇 달 만에 버리고, 또 도총제 박언충(朴彦忠)의 딸에게 장가드니, 아내가 있으면서 다른 아내에게 장가들었다는 일로서 유사들의 탄핵하는 바가 되었다. 마침내 아들이 없고, 비첩(婢妾)의 아들이 있으니, 이름이 영수(英壽)이다.
- 【태백산사고본】 15책 48권 12장 B면【국편영인본】 3책 233면
- 【분류】인물(人物) / 왕실-사급(賜給) / 인사-관리(管理)
- [註 085]문형(文衡) : 대제학.
○癸巳/判右軍府事卞季良卒。 季良字巨卿, 號春亭, 密陽府人, 玉蘭之子。 自幼聰明, 四歲誦古詩對句, 六歲始綴句, 十四中進士試, 十五中生員試, 十七登第, 補典校注簿, 累遷司憲侍史, 歷成均樂正、直藝文館、司宰少監兼藝文應敎、藝文直提學。 丁亥重試, 擢乙科第一人, 特拜禮曹右參議, 己丑, 進藝文館提學。 乙未, 大旱, 上甚憂之, 季良上言: "本國祭天, 雖云非禮, 事旣迫切, 請禱圓壇。" 卽命季良製文以祭之。 丁酉, 拜藝文大提學, 明年, 轉禮曹判書, 尋遷議政府參贊。 又明年, 倭奴侵我南鄙, 多殺掠, 太宗取季良之言, 議征討。 丙午, 判右軍都摠制府事, 至是卒, 年六十二。 訃聞, 輟朝三日, 命攸司致祭賜賻及棺, 東宮亦賻米豆幷三十石。 諡文肅, 學勤好問文, 執心決斷肅。 季良典文衡幾二十年, 事大交隣詞命, 多出其手。 掌試取士, 一以至公, 盡革前朝冒濫之習。 論事決疑, 往往出人意表, 然以主文大臣, 貪生畏死, 事神事佛, 至於拜天, 靡所不爲, 識者譏之。 初娶鐵原府使權緫之女, 去之, 又娶吳氏, 死, 又娶李村女, 數月而去之, 又娶都摠制使朴彦忠之女, 以有妻娶妻, 爲攸司所劾, 竟無子。 婢妾子曰英壽。
- 【태백산사고본】 15책 48권 12장 B면【국편영인본】 3책 233면
- 【분류】인물(人物) / 왕실-사급(賜給) / 인사-관리(管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