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으로 인한 문제를 신하들과 의논하다
상참을 받고, 정사를 보았다.
임금이 좌우 신하에게 이르기를,
"일본국이 그 왕이 훙(薨)하였는데도 사신을 보내어 부고하지 않고, 즉위(卽位)함에 미쳐서도 또 사신을 보내어 수호(修好)의 뜻을 통해 오지도 않았으니, 우리 나라도 또한 통신사(通信使)를 보낼 필요가 없다. 그러나 우리가 교린(交隣)하는 예에 있어 이를 닦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사절을 파견하고 부의(賻儀)를 전달하였으며, 또 즉위를 축하하였으니 저희들이 으레 보사(報謝)하여야 마땅하거늘, 또 사절도 보내지 않고 도리어 청구하는 일로 인하여 종금(宗金)을 보냈으니, 실례 중에도 실례인 것이다. 이번에 종금을 대하기를 장차 어떤 등급을 좇아야 할는지, 저들은 본래 예의(禮義)를 모르는 자이니 무엇을 족히 책하겠는가. 앞서 우리 나라의 사신이 그 나라에 이르러 배에서 내리지도 못한 적이 있었고, 혹은 박대하여 보낸 자도 있으며, 혹은 그 글의 사어(辭語)가 불손한 적도 있었는데, 금번 통신사가 갔을 때에는 사관의 식물도 등급을 올렸고, 서계(書契)도 또한 공손한 인사로 하였으니, 이것은 칭찬할 만한 것이다. 사람을 대하는 도리란 박대하는 것보다는 후대하여야 하나니, 우선 후대하는 것이 어떠한가."
하니, 좌우에서 대답하기를,
"성상의 하교가 지당합니다."
하였다.
임금이 또 말하기를,
"일본의 국왕이 박서생 등에게 말하기를, ‘부왕(父王)의 뜻을 이어받아 상국(上國)132) 을 받들어 섬기려고 하나, 혹 전날의 일로 구류(拘留)를 당하지나 않을까 하니, 청하건대 돌아가거든 귀국 왕에게 고하여 내 뜻을 상국에 전달하게 하여 먼 곳에 있는 오랑캐도 성화(聖化)를 입도록 하여 주시오.’ 하였다니, 이 뜻이 매우 아름다운 것이다. 대개 작은 나라가 능히 스스로 큰 나라에 상달하지 못하면, 반드시 번국(藩國)의 신하에게 의뢰하여 그 성의를 주달하는 것은 옛날부터 그러했으니, 이제 주달하지 않으면, 이는 개과천선(改過遷善)하려는 마음을 저지하는 것이 될 것이며, 또 우리 나라가 아니면 실상 의지할 만한 곳이 없으니, 마땅히 그 뜻을 상국에 전주(轉奏)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저들이란 반복(反覆)이 무상하니, 뒷날에 만약 조빙(朝聘)133) 의 예를 하지 않는다면 아마도 조정134) 에서 도리어 우리 나라로 하여금 일본에 문책하게 할 것이고, 만약 그 소청을 듣지 않았다가 다른 날 조정에서 이 사실을 들으면 반드시 그 허물을 우리 나라로 돌릴 것이니, 이것이 국론으로 결단하기 어려운 것이 아니겠는가. 나는 듣건대, 원도(源道)가 지성으로 대국을 섬겨 사신 황엄(黃儼)이 일찍이 그 나라에 이르니, 영접하는 집을 그 경상(境上)에 지어 놓고 친히 나와서 맞아 들여 갔다고 하는데, 이제 그 아들 의교(義敎)가 저의 부왕의 충성을 준행하지 않아서, 다만 조정을 받들어 섬기지 않을 뿐만 아니라 명나라 사신이 그 나라에 이르면 몰래 해적의 배를 유도하여 그를 해치려고 하였으며, 그 뒤로부터 조공(朝貢)을 닦지 않았는데 다행히 금일에 이르러 의리를 사모하고 풍성(風聲)을 향하여 상국에 조공하려고 하니, 또한 가상하지 않은가. 만약에 다시 이러한 뜻으로 사람을 보내어 청해 온다면 장차 어떻게 처리해야 할꼬."
하니, 좌우에서 아뢰기를,
"일본의 국왕이 전일의 잘못을 뉘우치고 다시 신하로서 복사(服事)하고자 하니, 그 뜻은 비록 아름다우나 이 나라가 옛날부터 금시 신하로 섬기다가 금시 배반하곤 하였사오니, 오늘의 말을 믿고 전달(轉達)해 아뢸 수는 없는 것입니다. 만약 뒷날에 배반한다면 도리어 우리 나라의 우환이 될 것이요, 후회하여도 미치지 않을 것입니다."
하였고, 우의정 맹사성(孟思誠)은 아뢰기를,
"만약 이러한 뜻으로 와서 청한다면 다만 그 사대(事大)의 대의(大意)만을 권고할 것이요, 상국에 이를 전달할 수는 없지 않을까 합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다시 논의하여 보고하라."
하였다.
임금이 또 말하기를,
"이제 금·은 세공(歲貢)을 면제 받았으니 후일의 공물을 장차 포자(布子)로 대신할 것인가, 아니면 마필(馬匹)로 대신할 것인가"
하니, 판부사(判府事) 허조(許稠)가 대답하기를,
"마필로서 공물을 대신하는 것은 계책의 좋은 것이 못됩니다. 해마다 바치는 공물이 무궁하여 마침내는 계속 판득하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포자 같은 것은 1품으로부터 9품까지 모두 납입하게 하고, 또 외방에서도 이를 수납하면 가히 계속 판득할 수 있을 것이니 장구지계(長久之計)가 될 것입니다."
하고, 예조 판서 신상(申商)이 아뢰기를,
"금·은 세공을 면제 받은 것은 우리 나라 억만년에 미칠 경사입니다. 다만 포자로서 대신 공납한다면 비록 1만 필에 이른다 해도 오히려 여정(旅庭)에 부끄러울 것입니다. 말은 우리 조선에서 산출되는 것이니, 이를 1백여 필 이내로 대신하고 아울러 포자도 바친다면, 말도 계속하여 판득할 수 있을 것이며 정실(庭實)에도 빛이 있을 것입니다."
하였다.
임금이 또 말하기를,
"물방아[水碾]를 사용하는 것이 정말 이득이 있을 것인가. 그렇다면 마땅히 장의동(藏義洞)에 설치한 물방아를 다시 수리해야 할 것이다."
하니, 병조 판서 최윤덕(崔閏德)이 대답하기를,
"장의동은 여러 골짜기의 물이 한 시내로 모여 들어 다른 곳으로 흘러 내려가는 곳이 없기 때문에, 혹 물이 많으면 수축한 것이 바로 무너지오니, 수리해 복구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였다.
임금이 또 말하기를,
"나귀란 놈을 중원에서는 몹시 많이들 이용하고 있으니, 요동(遼東) 등지에 가서 교역해다가 기르는 것이 어떠할까."
하니, 허조가 대답하기를,
"다만 나귀만이 아닙니다. 물소[水牛]의 이용도 군사(軍事)에 가장 긴요하온데, 혹시 들어갔다가 길이 막히면 얻기가 어려울 것이며, 또 이 물건이 북방의 소산이 아니고, 또 외국으로의 유출을 금지하고 있사오니, 황제께서 만약 남경(南京)으로 이어(移御)하시거든 이를 주청(奏請)해서 교역해다가 기르고 번식시키면 그 이익이 매우 많을 것입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나도 역시 이에 뜻을 두고 있었는데 경의 말은 참 옳은 말이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4책 46권 16장 B면【국편영인본】 3책 208면
- 【분류】왕실-의식(儀式) / 외교-명(明) / 외교-왜(倭) / 농업-수리(水利) / 무역(貿易)
- [註 132]
○辛巳/受常參, 視事。 上謂左右曰: "日本國其王薨, 不遣使訃告, 及卽位, 又不遣使通好, 我國亦不必遣通信使也。 然在我交隣之禮, 不可不修, 故遣使致賻, 且賀卽位。 彼宜報謝, 又不遣使, 反因求請, 乃遣宗金, 失禮之中, 又失禮焉。 今待宗金, 將從何等? 彼輩本不知禮義, 何足責也? 前此我國之使至其國, 有不得下船者, 或有薄待而送者, 或其書辭不遜, 今通信使之行則館穀加等, 書契亦恭順, 是可尙已。 待人之道, 寧失於厚, 姑厚待之如何?" 左右對曰: "上敎允當。" 上又曰: "日本國王語朴瑞生等曰: ‘欲繼父王之志, 服事上國, 恐以前日之事, 祗被留拘。 請歸告國王, 俾達吾志于上國, 爲遠夷霑聖化。’ 此意甚美。 蓋小國不能自達於大國, 必賴藩屛之臣導達誠意, 自古而然, 今不奏達, 則是沮其遷善之心, 且非我國, 則實無憑藉之處, 宜將其意轉奏上國。 然彼輩反覆無常, 後日若不朝聘, 則恐朝廷還使我國, 問罪于日本, 若不聽其請, 而朝廷異日聞之, 則必歸咎我國矣。 此非國論之難斷者乎? 予聞源道事大至誠, 使臣黃儼嘗至其國, 爲營迎室於境上, 親迓以入。 今其子義敎不遵乃父忠誠, 非徒不事朝廷, 天使至其國, 欲陰誘賊船害之。 厥後不修朝貢, 幸至今日, 慕義向風, 欲朝上國, 不亦嘉乎? 若復以此意遣人來請, 則將何以處之?" 左右曰: "日本國王悔前日之非, 復欲臣事, 其意雖美, 然此國自古乍臣乍叛, 未可以信今日之言, 而轉奏之也。 儻後日背之, 則反爲我國之患, 而悔無及矣。" 右議政孟思誠曰: "若以此意來請, 則但勸其事大之意, 不可轉達于上國也。" 上曰: "更議以聞。" 上又曰: "今得免歲貢金銀, 他日之貢, 將代以布子乎? 馬匹乎?" 判府事許稠對曰: "以馬代貢, 非計之長者也, 歲貢無窮, 終難繼辦。 若布子則自一品至九品, 竝納之, 又於外方收之, 則可以繼辦, 而爲長久之計也。" 禮曹判書申商曰: "得免金銀, 我朝鮮億萬年喜事也。 但以布子代貢, 則雖至萬匹, 猶愧旅庭, 馬則産於我國, 代以百數之內, 竝獻布子, 則馬可繼辦, 而庭實有光矣。" 上又曰: "水碾之用, 誠有利乎? 然則宜修復藏義洞所設之碾。" 兵曹判書崔閏德對曰: "藏義諸壑之水, 會于一溪, 他無導瀉之處, 倘水多, 則隨築隨圮, 不必修復也。" 上又曰: "驢之爲物, 在中原甚利用。 就遼東等處, 交易來養若何?" 稠對曰: "非特驢也。 水牛之用, 最有利於兵, 倘入朝路梗, 則難以得之。 且此物非北方所産, 又禁出外國。 帝若移御南京, 則奏請交易而來, 孶長蕃息, 其利甚多。" 上曰: "予亦有志於此, 卿言甚然。"
- 【태백산사고본】 14책 46권 16장 B면【국편영인본】 3책 208면
- 【분류】왕실-의식(儀式) / 외교-명(明) / 외교-왜(倭) / 농업-수리(水利) / 무역(貿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