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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실록 45권, 세종 11년 8월 18일 임진 1번째기사 1429년 명 선덕(宣德) 4년

금·은 세공의 면제를 주청하는 표·전문을 배송하다

임금이 왕세자와 백관(百官)을 거느리고, 금·은 세공(歲貢)의 면제를 주청(奏請)하는 표·전문(表箋文)을 배송(拜送)하였다.

그 표문(表文)에 말하기를,

"하늘은 사람에게, 아버지는 아들에게 인애(仁愛)하심이 지극하므로, 사람이 하늘에 대하여, 아들이 아버지에게 대하여, 진실로 군색하고 절박한 사정과 병들어 앓는 고통이 있을 때면 반드시 부르짖어 호소하며 구제하여 주기를 요구하는 것은 천하의 떳떳한 사리(事理)이나이다. 공손히 생각하건대, 황제 폐하께서는 온 천하를 하늘처럼 덮어주시고 아버지처럼 굽어 살피시어, 온 세상의 안팎이 만물(萬物)로 하여금 다 그들의 생(生)을 이루게 하였나이다. 필부필부(匹夫匹婦)도 다 스스로 만족함을 얻고 있사온데, 신(臣)에게 어쩔 수 없는 일이 있는 것을, 한갓 스스로 근심하고 슬퍼하고 답답해 하고 불안해 할 뿐, 위에 주달(奏達)하지 않는다면, 이것은 폐하를 하늘이나 부모처럼 생각하니 않는 것이 되므로, 신(臣)은 〈사정을〉 자세히 아뢰고자 하오니, 엎드려 생각하건대 폐하께서는 굽어 살피옵소서. 그윽이 생각하건대, 우리 나라는 땅이 좁고 척박하여서 금(金)·은(銀)이 생산(生産)되지 않는 것은 온 천하가 다 함께 아는 바입니다. 그러므로 명나라태조 고황제(太祖高皇帝) 홍무(洪武) 5년 10월에 중서성(中書省)이 공손히 받든 성지(聖旨)의 한 귀절에 ‘고래(古來)로 번방(藩邦)인 먼 나라에서 공물로 바치는 것은 예물을 바친다는 성의를 표시하는 정도에 불과한 것이니, 앞으로 가져올 방물(方物)은 다만 토산물(土産物)인 포자(布子)로서 3, 4가지를 넘지 않게 하여 성의를 표시하는 데에 그치게 하고, 그 밖의 것은 모두 가져 오지 말라. ’고 하였사오며, 홍무 7년에 이르러서 정조(正祖)의 예물로써 다만 포필(布匹)만을 받고 그밖의 금·은 기명(金銀器皿)은 모두 다 되돌렸었나이다. 이것은 대체로 고황제께서 만리 밖도 밝게 보시어 우리 나라에서 금·은이 생산되지 않는 것을 환히 아셨기 때문이요, 실로 옛날 우(禹)임금임토작공(任土作貢)104) 한 뜻과 빈틈없이 부합하나이다. 어찌 이른바 전성(前聖)과 후성(後聖)의 법도가 같다 하지 아니하오리까. 그 때에는 원(元)나라의 객상(客商)들이 와서 금·은을 팔았던 까닭에 약간의 금·은이 있었으므로 우리 나라에서 전과 같이 계속 진헌(進獻)하여 지금에 이르렀사오나, 수십 년 동안에 금·은은 용도(用度)가 다 없어지고 국가에서 저장한 것도 이미 다하였으므로, 집집마다 찾아 내고 호(戶)마다 거두어서, 온 나라 안의 배신(陪臣)의 집에도 금·은의 그릇을 가진 자가 없게 되었으니, 일이 막다른 골목에 이르고 사세가 급박하여졌나이다. 이것이 신(臣)이 감히 침묵하지 못하고 마음 속을 열어 자세히 진정(陳情)하여 우러러 황제의 위엄에 저촉되게 하는 까닭입니다. 신은 또 스스로 생각하기를, 신의 조상인 선신(先臣) 강헌왕(康獻王) 휘(諱)는 특히 고황제의 권애(眷愛)와 도움을 입어 이미 왕작(王爵)을 허락하셨고, 또 나라 이름을 내려 주셨으며, 신의 아버지 선신(先臣) 공정왕(恭定王) 휘(諱)와 신(臣) 휘(諱)는 이어 고명(誥命)을 받았나이다. 무릇 삼대(三代)에 걸쳐 이에 40여 년 동안이나 은총(恩寵)이 남달리 융숭하여, 상사(賞賜)가 잦기를 거의 없는 해가 없었음은 이루 다 기록할 수가 없나이다. 여러 사서(史書)를 상고하건대, 우리 나라가 황제의 은총을 친근하게 받음이 오늘과 같은 때는 없었습니다. 신은 성은(聖恩)의 만분의 1이라도 보답하고자 하여 일찍이 잠간 동안이라도 가슴에 품고 잊지 아니하였으니, 또한 어찌 감히 있는 것을 없다고 하여 떳떳한 세공(歲貢)을 폐지하여 황제의 청문(聽聞)을 기만(欺瞞)하겠습니까. 신의 이 말은 실로 지정(至情)에서 나온 것입니다. 황천(皇天)의 상제(上帝)와 산천의 귀신이 위에서 굽어보고 계시며 곁에서 질정(質正)하고 있나이다. 신이 감히 속이고 속일 수 있겠습니까. 엎드려 바라건대, 황제 폐하께서는 신(臣)의 말이 번거로운 것을 용서하시고 신의 사정이 절박한 것을 가엾게 여기시어, 멀리 성스러운 우임금의 〈토지의 생산 능력에 따라 공부(貢賦)를 정한〉 법을 상고하시고, 가까이는 고황제(高皇帝)의 〈번방(藩邦)인 먼 나라에서 바치는 공물(貢物)은 성의를 표시하는 정도에 그쳐야 한다고 하신〉 높은 가르침을 이어받으시어, 천지가 사람을 사랑하는 어짐을 몸받으시고, 부모가 아들을 보호하는 마음을 미루시와 특히 윤허(允許)하시는 명령을 내리시어, 금·은의 조공을 면제하고 토지(土地)의 소산물로서 대신하게 하신다면,어찌 신과 신의 온 나라 신민(臣民)과 부로(父老)들만이 기뻐하여 황제의 덕화(德化) 가운데서 춤출 뿐이겠습니까. 신의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신령도 또한 저승에서 감격할 것이며, 신의 자자손손(子子孫孫)이 길이 황제의 인후(仁厚)하신 덕택을 천만세(千萬世) 무궁하도록 입게 될 것입니다. 공손히 바라건대, 황제 폐하께서는 조금이나마 가엾게 여기심을 내리소서."

하고, 예물(禮物)을 바치는 표문에 이르기를,

"성인(聖人)이 천자(天子)의 자리에 계시오니 온 천하가 태평하옵고, 미신(微臣)이 국토(國土)를 지키고 있는 예(禮)로써 약간의 작은 정성을 표하나이다. 삼가 황세저포·백세저포 각각 20필, 흑세마포 50필, 잡색마 16필을 갖추었습니다. 위의 물건들은 거치른 지방에서 생산되었을 뿐 아니라 제조(製造)도 양장(良匠)이 하지 못하였사오나, 중심에서 나오는 신의로 양해하시고 윗사람에게 이바지하는 의례를 굽어 용납하소서."

하고, 황태후(皇太后)에게 올리는 예물은 홍세저포 10필, 흑세마포 20필, 중궁에게 올리는 예물은 홍세저포 10필, 흑세마포 20필이었다. 그 전문(箋文)에 이르기를,

"높은 곳에 계시면서 낮은 곳의 사정을 듣는 것은 성인(聖人)의 큰 도량(度量)이오며, 회포(懷抱)가 있으면 숨기지 않는 것은 신자(臣子)의 지정(至情)이나이다. 그윽이 생각하건대, 우리 나라는 땅이 좁고 토질이 거칠고 메말라서 예전부터 금·은이 나지 아니하므로, 태조 고황제의 밝은 예지(叡智)로써 그러한 사정을 환히 아시고 성지(聖旨)를 내리시어 〈금·은공(金銀貢)을〉 감면(減免)하시고 공납(貢納)한 금·은의 기명을 되돌려 주시기에 이르렀나이다. 다만 고려조(高麗朝)의 말기(末期)에 앞서 원(元)나라 객상(客商)들이 가져다 판 것으로써 삼가 공헌(貢獻)을 준비할 수 있었으며, 이 관례를 그대로 이어받아 오늘에 이르렀으나, 이제는 공사(公私)간에 가지고 있던 것이 다 없어지고 남은 것이라곤 없나이다. 이러한 목전(目前)의 급박한 경우를 당하니 감히 간담(肝膽)을 피력(披瀝)하여 우러러 천청(天聽)을 번거롭게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엎드려 바라건대, 황태자 전하께서는 황제의 밝은 은택이 베풀어지도록 인도(引導)하사 특히 금·은 공납을 면제하고 토산물(土産物)의 마땅한 것으로써 대신하게 하여, 상하(上下)의 정(情)이 통하게 하고 먼 곳 사람의 바람을 위안하여 주시는 것이 신(臣)의 간절한 소원이나이다."

하고, 예물은 백세저포 20필, 흑세마포 30필, 잡색마(雜色馬) 4필이었다.


  • 【태백산사고본】 14책 45권 14장 A면【국편영인본】 3책 194면
  • 【분류】
    외교-명(明) / 무역(貿易)

  • [註 104]
    임토작공(任土作貢) : 토지의 생산 능력을 따라 공부(貢賦)를 정하는 것.

○壬辰/上率王世子及百官, 拜請免歲貢金銀表箋。 表曰:

天之於人、父之於子, 仁愛之至也。 故人之於天、子之於父, 苟有窘迫之情、疾痛之苦, 則必疾呼而求救者, 天下之常理也。 欽惟皇帝陛下, 天覆父臨於四海之內之外, 使萬物咸遂其生, 匹夫匹歸, 皆獲自盡, 而臣有無可奈何之事, 徒自憂慼鬱悒, 而不以上達, 則是不以天與父母, 望陛下也。 臣試陳之, 伏惟陛下垂察焉。 竊念小邦土地褊薄, 不産金銀, 天下之所共知也。 故太祖高皇帝 洪武五年十月, 中書省欽奉聖旨, 節該: "古來藩邦遠國, 其所貢獻, 不過納贄表誠而已。 今後將來的方物, 只土産布子, 不過三五對, 表意便了。 其餘的都休將來。" 至七年正旦, 只受布匹, 其餘金銀器皿, 竝皆發回。 玆蓋高皇帝明見萬里, 灼知小邦之不産金銀也。 實與神任土作貢之意脗合無間, 豈非所謂前聖後聖同一揆也者乎? 第緣其時, 朝客商興販到, 些少金銀, 猶有存者, 小邦進獻仍舊, 遂至于今數十年間, 用度罄盡, 公藏已竭, 以至家抽戶斂, 擧國陪臣之家, 無有蓄金銀器者, 事窮勢迫, 此臣所以不敢含默, 敷陳心腹, 仰觸天威者也。 臣又自念, 臣祖先臣康獻王諱特荷高皇帝之眷佑, 旣許王爵, 又賜國名, 臣父先臣恭定王諱及臣諱連受誥命, 凡三世將四十年于玆矣。 寵異之隆、賞賚之頻, 殆無虛歲, 不可殫記。 稽諸書史, 小邦之昵被聖恩, 未有如今日者也。 臣之所以欲圖報聖恩於萬一者, 未嘗頃刻而忘于懷, 又安敢以有爲無, 欲廢常貢, 以欺天聽也哉? 臣之此言, 實出至情, 皇天上帝、山川鬼神, 臨之在上, 質之在旁, 臣敢誣哉? 臣敢誣哉? 伏望皇帝陛下, 恕臣辭煩, 憐臣情迫, 遠稽神之令典, 近述高皇帝之大訓, 體天地愛人之仁, 推父母保子之心, 特降兪音, 許免金銀之貢, 代以土地所産, 則豈惟臣與一國臣民父老歡欣鼓舞於聖化之中也哉? 臣祖若父之靈, 亦且感激於冥冥之中, 而臣之子子孫孫, 永被深仁厚澤於千萬世之無期矣。 欽惟皇帝陛下, 少垂憐焉。

獻禮物表曰:

聖人御天, 克綏四海。 微臣執壤, 聊効寸忱。 謹備黃白細苧布各二十匹、黑細麻布五十匹、雜色馬一十六匹。 右件物等, 産自荒陬, 製匪良匠。 冀諒由中之信, 俯容享上之儀。

皇太后禮物: 紅細苧布一十匹, 黑細麻布二十匹。 中宮禮物: 紅細苧布一十匹, 黑細麻布二十匹。

箋曰:

居高聽卑, 聖人之大度; 有懷無隱, 臣子之至情。 竊念小邦地褊土塉, 自來不産金銀。 太祖高皇帝明睿所照, 灼知其然, 降旨蠲免, 以至發回所貢器皿。 第以高麗之季, 前客商轉販之餘, 謹備貢獻, 因循至今, 公私所蓄, 罄盡無餘。 遇此目前之急, 敢不披肝瀝膽, 仰煩天聽也哉? 伏望皇太子殿下, 導宣睿澤, 特蠲金銀之貢, 代以物産之宜, 以通上下之情, 以慰遠人之望, 臣之至願也。

禮物, 白細苧布二十匹、黑細麻布三十匹、雜色馬四匹。


  • 【태백산사고본】 14책 45권 14장 A면【국편영인본】 3책 194면
  • 【분류】
    외교-명(明) / 무역(貿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