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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실록 45권, 세종 11년 7월 20일 갑자 3번째기사 1429년 명 선덕(宣德) 4년

근정전에서 임금이 휘빈 김씨의 폐빈에 대해 하교하다

근정전(勤政殿)에 거둥하여 하교(下敎)하기를,

"대개 듣건대, 배필(配匹)이 서로 만나는 것은 생민(生民)의 시초로서, 운수(運數)와 복조(福祚)의 길고 짧음과 국가의 흥성함과 쇠잔함이 이에 달렸다고 한다. 옛날 주(周) 나라문왕(文王)이 세자(世子)로 있을 때에 착한 여인(女人) 사씨(姒氏)를 얻어 배필을 삼으니, 저구(雎鳩)가 서로 화답해 우는 것처럼 화순(和順)하고, 얌전한 덕행(德行)이 가지가 굽어 드리우듯 아랫사람들에게 미치는 어짐[仁]을 미루어 인지(麟趾)의 응보를 가져 왔으며, 자손을 위한 좋은 계책[燕翼之謀]를 남겼다고 한다. 아아, 아름답구나. 후세(後世)로 내려오면서 순후(淳厚)한 풍습(風習)은 점점 엷어지고 여자가 지켜야 할 훈계는 전하지 아니하게 되니, 후비(后妃)와 빈어(嬪御) 중에는 간혹 남의 아내로서 마땅한 덕행은 생각지 아니하고 남편의 달콤한 사사로운 총애(寵愛)만을 다투어 바라는 이가 있게 되었다. 심(甚)한 자는 아양을 부리는 방법을 쓰며, 압승(壓勝)의 술법으로써 독점하려고 하다가 폐출(廢黜)되는 일을 재촉하게 된다. 여러 사적(史籍)을 상고하여 보면 비록 침방(寢房) 안의 말이라는 것은 대개가 애매한 것이 많으나 만약 정상(情狀)과 증적(證迹)이 드러나서 덮어 숨길 수 없는 자가 있다면, 이것은 다 제 자신이 그렇게 만든 것이니, 또 누구를 허물할 수 있겠는가. 우리의 조종(祖宗)은 가법(家法)이 매우 엄정(嚴正)하여 매양 내조(內助)의 공(功)을 얻었다. 내가 전년에 세자(世子)를 책봉하고, 김씨를 누대(累代) 명가(名家)의 딸이라고 하여 간택(揀擇)하여서 세자빈(世子嬪)을 삼았더니, 뜻밖에도 김씨가 미혹(媚惑)시키는 방법으로써 압승술(壓勝術)을 쓴 단서가 발각되었다. 과인(寡人)이 듣고 매우 놀라 즉시 궁인(宮人)을 보내어 심문하게 하였더니, 김씨가 대답하기를, ‘시녀(侍女) 호초(胡椒)가 나에게 가르쳤습니다.’ 하므로 곧 호초를 불러 들여 친히 그 사유를 물으니, 호초가 말하기를, ‘거년 겨울에 주빈(主賓)께서 부인(婦人)이 남자에게 사랑을 받는 술법(術法)을 묻기에 모른다고 대답하였으나, 주빈께서 강요하므로 비(婢)가 드디어 가르쳐 말하기를, 「남자가 좋아하는 부인의 신을 베어다가 불에 태워서 가루를 만들어 가지고 술에 타서 남자에게 마시게 하면, 내가 사랑을 받게 되고 저쪽 여자는 멀어져서 배척을 받는다 하오니, 효동(孝童)·덕금(德金) 두 시녀의 신을 가지고 시험해 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였다.’ 했는데, 〈효동·덕금〉 두 여인은 김씨가 시기하는 자이다. 김씨는 즉시 그 두 여인의 신을 가져다가 자기 손으로 베내어 스스로 가지고 있었다. 이렇게 하기를 세 번이나 하여 그 술법을 써 보고자 하였으나 그러한 틈을 얻지 못하였다고 한다. 호초가 또 말하기를, ‘그 뒤에 주빈(主嬪)께서 다시 묻기를, 「그 밖에 또 무슨 술법이 있느냐.」고 하기에 비(婢)가 또 가르쳐 말하기를, 「두 뱀[兩蛇]이 교접(交接)할 때 흘린 정기(精氣)를 수건으로 닦아서 차고 있으면, 반드시 남자의 사랑을 받는다.」 하였습니다. 가르친 두 가지 술법의 전자(前者)는 박신(朴信)의 버린 첩 중가이(重加伊)에게서 전해 들었고, 후자(後者)는 정효문(鄭孝文)의 기생첩 하봉래(下蓬萊)에게 전해 들었습니다. ’라고 하였다. 또 세자궁(世子宮)에 순덕(順德)이라는 시녀가 있는데, 본래 김씨의 집종[家婢]이었다. 일찍이 김씨의 약낭(藥囊) 속에 베어 넣은 가죽신의 껍질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 괴이하게 여겨, 호초(胡椒)에게 보이며 말하기를, ‘우리 빈(嬪)께 이런 짓을 하라고 가르친 자는 누구냐.’ 하고 즉시 그것을 꺼내어 감춰버렸다 한다. 과인은 이 말을 다 듣고 즉시 순덕(順德)을 불러다가 거듭 물으니 다시 다른 말이 없었으며, 또 말하기를, ‘비(婢)가 일찍이 주빈(主嬪)의 어머니 집에 가서 가죽신의 껍데기를 내보이고 이어 그 까닭을 말하였습니다. 그 가죽이 아직도 비(婢)에게 있습니다.’ 하고, 꺼내어 바치는 것이었다. 이에 과인은 중궁(中宮)과 같이 김씨를 불러다가 친히 정상과 사유를 물으니 일일이 자복(自服)하였고, 베어낸 신의 가죽이 갖추어 있고 증언(證言)이 명백하여 전세(前世)의 애매하고 의사(疑似)한 일에 견줄 것이 아니었다. 슬프다, 정말 이런 일이 있었구나. 아아, 세자를 정하고 그 배필을 간택한 것은 진실로 장차 종묘(宗廟)의 제사를 받들며, 남의 어머니로서의 궤범(軌範)이 되어 만세(萬世)의 큰 복조를 연장하려고 한 것이었다. 지금 김씨가 세자빈이 되어 아직 두어 해도 못 되었는데, 그 꾀하는 것이 감히 요망하고 사특함이 이미 이와 같기에 이르렀으니, 오히려 어찌 그가 투기(妬忌)하는 마음이 없고 삼가고 화합(和合)하는 덕(德)을 드러내며, 닭이 세 차례 울어 새벽이 되었다고 알리어092) 내조(內助)를 이룩하고, 종사(螽斯)093) 의 상서를 불러 들일 것을 바랄 수 있겠는가. 이러한 〈부덕(不德)한 자가 받드는 제사는〉 조종(祖宗)의 신령이 흠향하지 않을 것이며 왕궁(王宮) 안에 용납할 수 없는 바이니, 도리대로 마땅히 폐출(廢黜)시켜야 할 것이다. 내 어찌 그대로 두어 둘 수 있겠는가. 이미 선덕(宣德) 4년 7월 20일에 종묘에 고하고 김씨를 폐빈(廢嬪)하여 서인(庶人)을 삼았으며, 책인(冊印)을 회수(回收)하고 사삿 집으로 쫓아 돌려보내어서 마침내 박행(薄行)한 사람으로 하여금 우리의 가법(家法)을 더럽히지 못하게 하였다. 그의 비위를 맞추어 아첨하여 그로 하여금 죄에 빠지게 한 시녀 호초는 유사(有司)에 넘겨서 법과 형벌을 바르게 밝히도록 하였다. 생각건대, 이것은 상례(常例)에 벗어난 일로서 실로 국민들의 귀와 눈에 놀라움을 줄 것과 더욱 모든 관료(官僚)들도 아직 그 일의 시말(始末)을 깊이 알지 못하는 것을 염려하기 때문에 이에 교서를 내려 알리노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4책 45권 7장 A면【국편영인본】 3책 191면
  • 【분류】
    왕실-비빈(妃嬪) / 역사-고사(故事) / 사법-행형(行刑)

  • [註 092]
    닭이 세 차례 울어 새벽이 되었다고 알리어 : 《시경(詩經)》 제풍계명편(齊風雞鳴篇)에 어진 왕비가 새벽에 남편인 임금을 깨우는 것을 찬미하였는데, 이를 인용한 것임.
  • [註 093]
    종사(螽斯) : 《시경(詩經)》 주남(周南)의 종사편(螽斯篇)에 자손이 많은 것을 축복한 시가 있는데, 이를 인용한 것임.

○御勤政殿下敎曰:

蓋聞配匹之際, 生民之始, 運祚之脩短、國家之盛衰係焉。 昔周文王之爲世子, 得聖女姒氏, 以爲之配, 以和鳴窈窕之德, 推樛屈逮下之仁, 致麟趾之應, 貽燕翼之謀, 吁美矣哉! 降及後世, 淳風漸薄, 女訓不傳, 后妃嬪御, 間有不念室家之宜, 競希燕私之寵, 甚至挾媚道、行壓勝, 以速廢黜。 稽諸史籍, 雖中冓之言, 率多曖昧, 若乃情迹敗露, 不可掩覆者, 斯皆自取之者, 又誰咎哉? 惟我祖宗, 家法甚正, 動得內助。 予於往歲, 冊封世子, 以金氏乃累葉名家, 擇以爲嬪, 不期金氏媚道壓勝, 事發有端。 寡人聞而震驚, 卽遣宮人審問, 金氏對曰: "侍女胡椒敎我也。" 乃召胡椒, 親問其由, 胡椒言: "去年冬月, 主嬪常問, 婦人見愛於男子之術, 婢對以不知, 主嬪强之, 婢乃敎之曰: ‘割得男子所悅婦人之鞋, 燒爲末, 和酒以飮男子, 則我可以見愛, 而彼因之疎斥矣。 可將孝童德金二侍女之鞋以試之。’" 二人則金氏所忌者也。 金氏卽取二人之鞋, 親手割之, 以自挾持, 如是者三也, 欲施其術, 而未得其間耳。 胡椒又言: "厥後主嬪復問更有何術, 婢又敎之曰: ‘兩蛇交接所泄精氣, 拭以巾而佩之, 當得男子之昵愛矣。’ 所敎二術, 前所聞者, 傳聞於朴信棄妾重加伊; 後所聞者, 傳聞於鄭孝文妓妾下蓬萊也。 又有世子宮侍女順德, 本金氏家婢。 曾於金氏藥囊, 得所剪鞋皮而怪之, 示諸胡椒曰: ‘誰敎我嬪爲此事者?’ 卽取而藏之。" 寡人備聞斯語, 卽召順德覆問, 更無異辭。 且曰: "婢嘗至主嬪母家, 出鞋皮以示之, 仍告其故, 其皮猶在婢所。" 乃出以進。 於是寡人, 同中宮乃召金氏, 親問情由, 一一自服, 剪皮具在, 詞證明白, 非前世曖昧疑似之比。 噫! 眞有是事矣。 嗚呼! 定國儲而擇配, 固將以承宗祧、作母儀, 衍萬世之洪祚也。 今金氏爲世子嬪, 曾未數年, 而其運謀, 敢爲妖邪, 已至如是, 尙何望其無妬忌之心, 著肅雍之德, 成《鷄鳴》至三之告, 召《螽斯》, 則百之祥乎? 此祖宗所不歆, 宮壼所不容, 理合廢黜, 予豈得已? 已於宣德四年七月二十日, 告于宗廟, 廢金氏爲庶人, 收奪冊印, 黜還私第, 終不使薄行之人, 汚我家法。 其逢迎(從)〔縱〕 臾, 使陷罪辜, 侍女胡椒, 付諸有司, 明正典刑。 惟是異常之事, 實有駭於國人之見聞, 尙慮大小臣寮, 未能究知本末, 故玆敎示。


  • 【태백산사고본】 14책 45권 7장 A면【국편영인본】 3책 191면
  • 【분류】
    왕실-비빈(妃嬪) / 역사-고사(故事) / 사법-행형(行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