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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실록 44권, 세종 11년 5월 16일 신유 2번째기사 1429년 명 선덕(宣德) 4년

《농사직설》의 서문

총제(摠制) 정초(鄭招) 등에게 명하여 《농사직설(農事直說)》을 찬술(撰述)하게 하는데, 그 서문에,

"농사는 천하의 대본(大本)이다. 예로부터 성왕(聖王)이 이를 힘쓰지 아니한 사람이 없었다. 순제(舜帝)9관(官)058) 과 12목(牧)에게 명하실 적에 맨먼저 ‘먹는 것은 농사 시기에 달렸다.’ 하였으니, 진실로 자성(粢盛)059) 의 용도(用度)와 생양(生養)의 자료(資料)도 이것을 떠나서는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삼가 생각하건대 태종 공정 대왕(太宗恭定大王)께서 일찍이 유신(儒臣)에게 명하시어 옛날 농서(農書)로서 절실히 쓰이는 말들을 뽑아서 향언(鄕言)060) 으로 주(註)를 붙여 판각(板刻) 반포하게 하여, 백성을 가르쳐서 농사를 힘쓰게 하셨다. 우리 주상 전하께서는 명군(明君)을 계승하여 정사에 힘을 써 더욱 민사(民事)에 마음을 두셨다. 오방(五方)의 풍토(風土)가 같지 아니하여 곡식을 심고 가꾸는 법이 각기 적성(適性)이 있어, 옛 글과 다 같을 수 없다 하여, 여러 도(道)의 감사(監司)에게 명하여 주현(州縣)의 노농(老農)들을 방문(訪問)하게 하여, 농토의 이미 시험한 증험에 따라 갖추어 아뢰게 하시고, 또 신(臣) 초(招)에게 명하시어 그 까닭을 더하게 한 다음, 신(臣)과 종부시 소윤(宗簿寺 少尹) 변효문(卞孝文)이 낱낱이 살피고 참고(參考)하게 하시어 그 중복(重複)된 것을 버리고 그 절요(切要)한 것만 뽑아서 찬집하여 한 편(編)을 만들고 제목을 《농사직설(農事直說)》이라고 하였다. 농사 외에는 다른 설(說)은 섞지 아니하고 간략하고 바른 것에 힘을 써서, 산야(山野)의 백성들에게도 환히 쉽사리 알도록 하였다. 이미 위에 바쳐 주자소(鑄字所)에 내려서 약간 본(本)을 인쇄하여 장차 중외(中外)에 반포하여 백성을 인도하여 살림을 넉넉하게 해서, 집집마다 넉넉하고 사람마다 풍족하는 데 이르도록 할 것이다. 신이 주(周)나라 시(詩)를 보건대, 주가(周家)에서도 농사로써 나라를 다스려 8백여 년의 오랜 세월에 이르렀는데, 지금 우리 전하께서도 이 나라 백성을 잘 기르고 나라를 위하여 길이 염려하시니, 어찌 후직(后稷)성왕(成王)과 규범(揆範)을 같이하지 않으랴. 이 책이 비록 작더라도 그 이익됨은 이루 말할 수 있겠는가."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4책 44권 16장 B면【국편영인본】 3책 181면
  • 【분류】
    출판-서책(書冊) / 출판-인쇄(印刷) / 역사-고사(故事)

  • [註 058]
    9관(官) : 순제(舜帝) 때의 아홉 관직. 곧 사공(司空)·후직(后稷)·사도(司徒)·사(士)·공공(共工)·우(虞)·질종(秩宗)·전악(典樂)·납언(納言)임.
  • [註 059]
    자성(粢盛) : 나라의 대제(大祭)에 쓰는 서직(黍稷).
  • [註 060]
    향언(鄕言) : 국어(國語).

○命摠制鄭招等, 撰《農事直說》。 其序曰:

農者, 天下國家之大本也, 自古聖王, 莫不以是爲務焉。 帝舜之命九官十二牧也, 首曰: "食哉惟時。" 誠以粢盛之奉、生養之資, 捨是, 無以爲也。 恭惟太宗恭定大王, 嘗命儒臣, 掇取古農書切用之語, 附註鄕言, 刊板頒行, 敎民力本。 及我主上殿下, 繼明圖治, 尤留意於民事, 以五方風土不同, 樹藝之法, 各有其宜, 不可盡同古書, 乃命諸道監司, 逮訪州縣老農, 因地已試之驗具聞。 又命臣, 就加詮次, 臣與宗簿少尹臣卞孝文, 披閱參考, 祛其重複, 取其切要, 撰成一編, 目曰《農事直說》。 農事之外, 不雜他說, 務爲簡直, 使山野之民曉然易知。 旣進, 下鑄字所, 印若干本, 將以頒諸中外, 導民厚生, 以至於家給人足也。 臣竊觀詩, 家以農事爲國, 歷八百餘年之久。 今我殿下惠養斯民, 爲國長慮, 豈不與后稷成王同一揆範乎? 是書雖小, 其爲利益, 可勝言哉


  • 【태백산사고본】 14책 44권 16장 B면【국편영인본】 3책 181면
  • 【분류】
    출판-서책(書冊) / 출판-인쇄(印刷) / 역사-고사(故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