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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실록 43권, 세종 11년 3월 26일 임신 4번째기사 1429년 명 선덕(宣德) 4년

평안도 도절제사가 영변부 설립 조건을 갖추어 보고하다

평안도 도절제사가 영변부(寧邊府) 설립 조건을 갖추어 계하기를,

"1. 선덕(宣德) 3년 11월 19일 병조에서 수교한 가운데, ‘영변부도 또한 평양부의 예에 의하여 적당히 서반의 토관직을 더 설치하여 변민(邊民)으로 하여금 기꺼이 나와서 큰 진(鎭)을 이룩하도록 하라.’ 하셨사온데, 이제 평양부의 서반 각품의 수효를 상고하온즉, 진서위(鎭西衛) 5영(領)에 사직(司直)이 6인, 부사직(副司直)·사정(司正)·부사정(副司正)이 각 10인, 대장(隊長) 1백 인, 대부(隊副) 2백 인, 모두 3백 36인이오니, 청컨대 이 예에 의하여 쓸 만한 자를 택하여 임명하도록 할 것이며,

1. 옛 연산(延山)무산(撫山)의 주민 총계 8백 92호 가운데 갑사 및 서울에 종사하는 익보병(翼步兵)·수성군(守城軍)·방패(防牌)와 〈서울〉 4개처에 분배한 입마인(立馬人)·향리·일수·양반·공사 노예 등 부실한 호구가 많고, 착실한 호구는 큰 진(鎭)보다는 적어서 없어서는 아니될 소임도 태반 부족하오니, 만약 서북 변방의 방어가 긴요한 각 고을의 백성으로 유이하다가 본부(本府)에 온 자는 모두 본고향을 돌아가게 하고, 본부 이남의 각 고을과 타도의 백성으로 와서 살고 있는 자는 본부가 부성(阜盛)하게 되기까지는 본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할 것이며,

1. 본부는 동쪽에 장항연(獐項淵)이 있고, 남쪽에 부이탑연(夫伊塔淵)이 있고, 서쪽에 구음포연(仇音浦淵)이 있어 만약 장마가 져서 큰물이 나면 건너기가 실로 어려우니, 청하옵건대 이 세 곳에 선척을 설치하고, 역이 없는 사람을 뽑아 나루치[津尺]038) 로 삼도록 하소서."

하니, 명하여 병조에 내려 의정부·육조와 더불어 함께 의논하게 하니, 건의하기를,

"토관은 진북위(鎭北衛)의 예에 의하여 별도로 3개의 진을 설립하여 진변위(鎭邊衛)라 일컫고, 1영마다 사직 1인, 부사직 2인, 사정·부사정 각 3인, 대장 10인, 대부 20인으로 하고, 유이해서 들어온 사람에 대해서는 영변부 이남의 각도와 타도로부터 유이해서 들어온 사람은 본부가 부성하게 될 동안까지는 고향으로 돌려보내지 말며, 세 못[淵]에 선척을 설치하는 문제는 한 곳마다 배 1척을 두고록 하소서."

하니, 그대로 따랐다.


  • 【태백산사고본】 13책 43권 28장 A면【국편영인본】 3책 172면
  • 【분류】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군사-지방군(地方軍) / 교통-수운(水運) / 호구-이동(移動)

  • [註 038]
    나루치[津尺] : 도선부(渡船夫).

平安道都節制使, 具寧邊府設立條件以啓: "一。 宣德三年十一月十九日兵曹受敎內: ‘寧邊府亦依平壤府例, 量加西班土官之職, 使邊民樂於趨赴, 以成巨鎭。’ 今考平壤府西班各品之數, 鎭西衛五領, 司直六、副司直司正副司正各十、隊長一百、隊副二百, 共三百三十六。 請依此例, 擇可任者差下。 一, 古延山撫山居民摠八百九十二戶內, 甲士及京從仕翼步兵, 守城軍防牌, 合排四處, 立馬人ㆍ鄕吏ㆍ日守ㆍ兩班公私奴隷等, 不實之戶多, 而實戶則少, 於巨鎭不得已之任, 太半不足。 若西北邊方, 防禦緊要, 各官之民, 流移到本府者, 悉令還本。 本府以南各官及他道之民來接者, 限本府阜盛, 勿令還本。 一。 本府, 東有獐項淵, 南有夫伊塔淵, 西有仇音浦淵, 若値霖雨大水, 則過涉實難。 請於三處, 設置舟楫, 定無役人爲津尺。

命下兵曹, 與政府六曹同議。 議云: "土官依鎭北衛例, 別立三鎭, 稱鎭邊衛。 每一領, 司直一、副司直二、司正ㆍ副司正各三、隊長十、隊副二十。 流移人, 則寧邊府以南各道及他道流移人物, 限本府阜盛間, 勿令還本。 三淵置舟楫, 則每一處, 只設船一隻。" 竝從之。


  • 【태백산사고본】 13책 43권 28장 A면【국편영인본】 3책 172면
  • 【분류】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군사-지방군(地方軍) / 교통-수운(水運) / 호구-이동(移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