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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실록43권, 세종 11년 1월 3일 경술 4번째기사 1429년 명 선덕(宣德) 4년

황희·맹사성이 학문 진흥책을 올리다

영집현전사(領集賢殿事) 좌의정 황희(黃喜)·우의정 맹사성(孟思誠) 등이 상서(上書)하기를,

"공손히 생각하옵건대 주상 전하께서는 하늘이 내신 불세출(不世出)의 자질과 정일(精一)하고 밝으신 학문으로 문(文)을 숭상하고 교화를 일으켜서, 인민을 교양하고 인재를 양성하는 도를 지극히 하시고 극진히 하셨습니다. 그러나 성심(聖心)에 오히려 아직도 부족하게 아시고 미진하게 여기사, 이에 신 등에게 학문을 진흥하는 방도를 남김없이 말하라 명하시니, 신 등은 원래 용렬하고 공소(空疎)한 사람으로 외람되게 본전(本殿)의 자리만을 채우고 있었는데, 어명을 받잡고 전전긍긍하였으나 감히 입을 다물고 말하지 않을 수 없사와 삼가 한두 가지 좁은 소견을 다음에 조목별로 열거하오니, 엎드려 성상의 재택(裁擇)을 기다리나이다.

1. 옛날에 공경(公卿)·대부(大夫)·원사(元士)의 적자를 모두 대학(大學)에 입학시킨 것은 가르치고 키워 인재를 만들어 뒷날의 쓰임에 대비하고자 함이었습니다. 비옵건대 지금 조관(朝官)의 자손을 모두 학교에 입학시켜, 그 학문이 우수해지고 나이가 25세에 이르기를 기다려 이에 벼슬하게 하고, 유음 자손(有蔭子孫)으로 나아가 15세 이상이 된 자는 오부학당(五部學堂)에 승보(升補)된 자를 제외하고 모두 성균관(成均館)에 입학하게 하여, 경서(經書)를 연구하고 예도(禮道)를 배우게 할 것입니다.

1. 문무(文武)의 쓰임은 〈어느 한 편에〉 치우쳐 폐지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옛글에 이르기를, ‘무비(武備)를 지식시키고 문교(文敎)를 닦으라. ’[偃武修文覿文匿武] 하였으니, 이는 진실로 제왕(帝王)이 천하(天下)와 국가(國家)를 다스리는 긴요한 도인 것입니다. 우리 태종께서 무과(武科)의 모든 일을 문과(文科)에 준하신 것은 대개 권도(權道)로 일시적 편의를 좇아 행하신 것이지, 만대의 떳떳한 법은 아닌 것입니다. 대저 말달리며 활쏘기를 익히는 것은 본래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이며, 호세(豪勢)한 집에서 〈그 경향이〉 더욱 심한 것이거늘, 하물며 전시(殿試)하여 방방(放榜)할 때에, 일산[蓋]을 내리며 잔치[宴]를 내리고 3일 동안 유가(遊街)하게 하고, 벼슬을 제수하는 영광을 더하여 고무 용동(鼓舞聳動)하게 하시니, 이 때문에 일국(一國)의 모든 자제들이 무과로 돌아가게 됩니다. 어찌 노심초사(勞心焦思)하여 경적(經籍)을 깊이 연구할 생각이 있겠습니까. 학문이 진흥하지 못하는 까닭은 진실로 이 때문인 것입니다. 비옵건대 지금부터 무과 과거의 법도 한결같이 《원육전(元六典)》에 의거하여 향시(鄕試)와 전시(殿試)에 일산을 내리고 잔치를 내리는 등의 일은 모두 폐지하고, 사서(四書)와 일경(一經)을 고강(考講)하게 한다면, 옛날에 양장(良將)이 시서(詩書)에 힘쓰고 예악을 좋아하는 법에 거의 합치할 것입니다.

1. 전조(前朝) 때에 구재 도회 과시(九齋都會課試)의 법이 있어 선비들을 고무하여 사문(斯文)을 흥기시키려는 술책으로 하였으니, 문장에 특달(特達)한 선비가 빈번히 나온 것도 그윽이 생각하건대 이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비옵건대 오부학당에서 학문을 강의하는 여가로 매 6월마다 시산직(時散職)에 있는 문신으로 하여금 격일로 가서 모이게 하여, 글제를 내어 글을 짓게 하고는 석차대로 창방(唱榜)하여 선비들의 사기를 새롭게 하신다면, 문(文)을 숭상하는 치도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1. 내외학 춘추 과시법(內外學春秋課試法)이 이미 법으로 정하여져 있으니, 비옵건대 〈이 법을〉 중외(中外)에 거듭 밝혀 정부·육조와 문신 관각(文臣館閣) 2품 이상은 성균관에 모여 혹 경서를 고강하기도 하고, 혹 글을 짓게 하여, 그 재예를 연마시키고 그 사기를 북돋게 할 것입니다. 외방 각도에서도 또한 이 예를 모방하게 할 것입니다.

1. 그윽이 보옵건대 전하께서 만기(萬機)의 바쁜 겨를에도 대학의 유생들의 거처와 음식을 염려하시니, 그 우대(優待)하시고 권면(勸勉)하시는 뜻은 옛날에 없었던 바입니다. 그러나 생원(生員)이 된 자들이 누세의 인습에 젖어 대체(大體)를 알지 못하고 비록 법으로 다스려도 입학하려 하지 않으니, 비옵건대 유사(攸司)로 하여금 중외에 효유하여 각 해마다 선발된 생원들을 모두 입학하게 하고, 그 중에 혹 거관(居館)한 지 여러 해가 되어 늙도록 급제하지 못한 자는 예조에서 월강(月講)을 상고하여 원점(圓點)의 많고 적음에 따라 경직(京職)을 제수한다면, 학문의 공효도 거의 헛되지 않을 것이요, 벼슬의 길도 열릴 것입니다.

1. 외방 각 고을에 모두 교수(敎授)·훈도(訓導)를 두고, 감사가 그 전최(殿最)를 고찰하며, 예조에서 그 서도(書徒)들을 시험하여 위에 아뢰면, 법으로도 타당하다 하겠습니다. 그러나 법은 있으나 그 실효를 보지 못하고 있으니, 비옵건대 경상 좌우도에 각각 도회(都會) 2개소를 두고 매 1개소마다 40인을, 전라·충청도에 각각 2개소를 두고 매 1개소마다 30인을, 강원도에 2개소를 두고 매 1개 소마다 20인을, 황해도·평안도에 각각 1개소를 두고 매 1개소마다 20인을, 함길도에 1개소를 두고 15인을 정원으로 하여, 봄에는 3월 보름 뒤부터 4월 그믐까지 가을에는 8월 보름 뒤부터 9월 그믐까지, 경사(經史)에 통달한 교수나 학문을 좋아하는 생도를 뽑아 모아서, 공름(公廩)으로 먹여 학문에 부지런히 힘쓰게 하고, 감사와 수령이 돈독히 권면(勸勉)하면 궁촌(窮村)이나 초야(草野)의 선배들도 거의 향방(向方)을 알게 되어 〈학문이〉 진작될 것입니다."

하니, 임금이 그대로 따르되, 다만 조관의 자손으로서 나이 25세가 되기를 기다린다는 조목에 내금위(內禁衛) 갑사를 제외하도록 하고 한결같이 상서한 대로 시행하도록 하였으며, 무과의 조목에 대하여는 병조로 하여금 다시 의논하여 아뢰게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3책 43권 1장 B면【국편영인본】 3책 159면
  • 【분류】
    인사-선발(選拔) / 교육-인문교육(人文敎育) / 역사-고사(故事) / 무역(貿易)

    ○領集賢殿事左議政黃喜、右議政孟思誠等上書曰:

    恭惟主上殿下, 以天縱不世之資、精一緝熙之學, 右文興化, 敎養作人之道, 至矣盡矣。 然於聖心, 猶且嫌然, 以爲未至, 乃命臣等, 悉陳興學之方。 臣等猥以慵疎, 備員本殿, 承命戰慄, 不敢含默, 謹將一二管見, 條列于後, 伏候上裁。 一, 古者公卿大夫元士之適子, 皆入太學, 欲其敎養作成, 以備他日之用也。 乞今朝官子孫, 皆入于學, 待其學優, 年至二十五歲, 乃得從仕。 其有蔭子孫年十五以上者, 除五部學堂升補, 許令盡入成均, 窮經學道。 一, 文武之用, 不可偏廢。 然古書有曰: "偃武修文, 覿文匿武。" 是誠帝王治天下國家之要道也。 我太宗以武科諸事, 比擬文科者, 蓋權一時之宜而行之, 非萬世之常典也。 大抵馳馬學射, 固兒子之所好, 而豪勢之家, 爲尤甚焉, 況復殿試放榜, 賜蓋賜宴, 遊街三日, 加以爵命之榮, 鼓舞聳動, 是率一國之子弟, 歸之於武擧也。 安有勞心苦思, 精硏經籍之念哉? 學之不興, 良以此也。 乞自今武擧之法, 一依《元六典》, 其鄕試、殿試, 賜蓋賜宴等事, 竝皆亭罷〔停罷〕 , 仍講四書若一經, 庶合古之良將, 敦詩書、悅禮樂之法。 一, 前朝有九齋都會課試之法, 所以鼓舞士子, 興起斯文之術也。 文章特達之士, 比比而出, 竊意未必不由乎此也。 乞於五部學堂講學之餘, 每當六月, 時散文臣, 輪日往會, 命題製述, 科次唱榜, 作新士氣, 其於右文之治, 不爲無補。 一, 內外學春秋課試之法, 已有成規。 乞令中外申明, 政府六曹及文臣館閣二品以上, 會于成均館, 或考講經書, 或令製述, 以鍊其才, 以勵其氣, 其外方各道, 亦倣此例。 一, 竊見殿下, 於萬機之暇, 下慮太學諸生居處之宜、飮食之隆, 優待勸勉之意, 古所未有, 然而爲生員者狃於世累, 不識大體, 雖繩以法, 莫肯入學。 乞令攸司曉諭中外, 各年生員, 皆令赴學, 其或居館累年, 老不中第者, 考其禮曹月講分數圓點多小, 除授京職, 則庶乎學問之功不廢, 仕進之路亦通矣。 一, 外方各官, 皆置敎授訓導, 監司考其殿最, 禮曹課其書徒, 輒以上聞, 法亦至矣, 然徒有其文, 莫見其效。 乞於慶尙左右道, 各置都會二所, 每所四十人, 全羅忠淸道, 各置二所, 每所三十人, 江原道置二所, 每所二十人, 黃海平安道, 各置一所, 每所二十人, 咸吉道置一所十五人, 春自三月望後, 至四月晦日, 秋自八月望後, 至九月晦日, 擇敎授之通經史者、生徒之好學問者聚會, 養以公廩, 使勤學問, 監司守令敦加勸勉, 庶窮村草澤之士, 知所向方, 而振起矣。

    上從之, 但朝官子孫待年二十五歲條, 則除內禁衛甲士外, 一依上書行之, 其武科條, 則令兵曹更議以聞。


    • 【태백산사고본】 13책 43권 1장 B면【국편영인본】 3책 159면
    • 【분류】
      인사-선발(選拔) / 교육-인문교육(人文敎育) / 역사-고사(故事) / 무역(貿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