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후를 책봉한 것을 하례하는 표전과 주본
임금이 왕세자와 백관들을 거느리고 황후를 책봉한 것을 하례하는 표전(表箋)을 배송(拜送)하고, 원민생(元閔生)·조치(曹致)가 표전을 받들고 떠났다. 표문에 이르기를,
"하늘의 도[乾道]는 양(陽)에 해당하와 아름다운 경사가 두터웠고, 땅[坤元]은 덕을 도우니, 마침내 황후를 책봉하는 영광을 받으셨도다. 기쁨은 신민들에게 넘치고, 즐거움은 해우(海宇)에 미쳤나이다. 공손히 생각하건대 총명 예지하시고 강건 정수하사, 마음을 바루고 몸을 닦으시니, 중전에서 황후의 의표를 엄히 하시고, 집을 가지런히 하고 나라를 다스리시니, 신성한 교화는 구주(九州)에 미치었습니다. 이에 혼례가 이루어지시와 두터운 복이 모이게 되었습니다. 엎드려 생각하건대 신(臣)은 외람되이 용렬한 자질로 다행히 창성한 때를 만나, 본손과 지손이 백세토록 번창하시고, 주아(周雅)의 수부 다남(壽富多男)하시기를 축원하는 화봉 삼축(華封三祝)을 본받나이다."
하고, 전(箋)에 이르기를,
"황제(皇帝)께서 책봉하심이 아름답게 드날리시니, 모후(母后)의 거둥이 더욱 중하여지셨고, 세자의 경사가 나니, 나라의 근본이 더욱 융성하여졌고, 보는 사람, 듣는 사람 모두 다 춤추도다. 공손히 생각하건대 천자(天姿)가 빼어나시고, 성품(性稟)이 영특하고 밝으시어, 지위가 이극(二極)에 높으시니, 가까이 천자의 사랑을 받으시어 거듭 밝게 비침을 열으셨도다. 여러 무리의 뜻을 화합하게 하고, 화려한 예전(禮典)을 이루시와, 많은 복이 잇따라 이르렀도다. 엎드려 생각하건대 신은 다행히 밝은 세대를 만나, 몸이 폐방(弊邦)에 매여 있어 비록 달려가 참예하지 못하나, 정성은 연경(燕京) 하례에 있나이다."
하였다. 중궁(中宮)에 바치는 예물(禮物)은 홍세저포(紅細苧布)·백세저포(白細苧布)·흑세마포(黑細麻布) 각 20필, 만화석(滿花席) 10장, 황화석(黃花席)·잡채화석(雜彩花席) 각 6장이었다. 민생(閔生)과 치(致) 등이 왕세자(王世子)의 관복(冠服)을 청하는 주본(奏本)을 아울러 싸가지고 갔는데, 그 주본(奏本)에 이르기를,
"의정부(議政府)의 장계(狀啓)에 따라, 홍무(洪武) 2년 10월 일 중서성(中書省)의 자문(咨文)에 성지(聖旨)를 받들어 반사(頒賜)한다는 절목(節目)에, ‘국왕의 면복 구장(冕服九章)과 배신(陪臣)의 관복(冠服)은 중국 조신(朝臣) 9등(等)에 견주어 2등을 낮추어, 왕국은 7등으로 하고, 배신(陪臣) 1등의 품질(品秩)은 중국의 제 3등과 같게 하여 오량 관복(五梁冠服)을 하사하고, 2등 품질은 중국의 제 4등에 견주어 사량 관복(四梁冠服)으로 하며, 3등 이하는 모두 이에 의하여 차례대로 낮춘다.’ 하였고, 영락(永樂) 9년 8월 일에 이르러서는 선군(先君) 공정왕(恭定王)에게 태종 문황제(太宗文皇帝)가 내려 주신 면복 구장(冕服九章)을 받았었는데, 오직 왕세자의 관복에 대한 한 절목에, ‘아뢸 만한 말씀이 있습니다. 지난 영락 5년에 공정왕(恭定王)의 아들 제(禔)가 세자로서 북경에 가서 조현(朝見)할 때에는 오량 관복을 받았습니다. 그윽이 생각하건대 태조 고황제(太祖高皇帝)께서 이미 배신(陪臣)의 1등의 품질을 중조(中朝)의 제 3등에 견주어 오량 관복을 내리셨으니, 왕세자의 관복은 아래로 신하(臣下)들의 것과 다름 없이 내리시는 것은 옳지 못한 것 같고, 전항(前項)의 일은 합당하지 못하와 조정에 품달(稟達)하는 바이오니, 청컨대 세자의 양관(梁冠) 등수(等數)를 올려서 내려 주시오면 법에 합당할 것입니다. 이에 위에 아뢴 것에 의하여 주청(奏請)해서 내려 주심이 마땅하겠나이다.’ 하여, 이를 위하여 삼가 아뢰나이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3책 41권 2장 A면【국편영인본】 3책 137면
- 【분류】외교-명(明)
○癸丑/上率王世子及百官, 拜賀冊皇后表箋, 元閔生、曺致奉表箋以行。 表曰:
乾道當陽, 克篤瑤圖之慶; 坤元協德, 聿膺寶冊之光。 喜溢臣工, 歡騰海宇。 欽惟聰明睿智, 剛健粹精。 心正身修, 嚴后儀於中壼; 家齊國治, 覃神化於九圍。 玆縟禮之旣成, 致純禧之駢集。 伏念臣猥將庸質, 幸際昌辰。 本支百世之辭, 願賡《周雅》; 壽富多男之祝, 竊效華封。
箋曰:
帝冊揚徽, 母儀增重。 儲宮衍慶, 邦本益隆。 凡屬見聞, 實均蹈舞。 恭惟姿凝岐嶷, 性稟英明。 尊居貳極之崇, 昵承天寵; 蔚啓重離之照, 允協輿情。 縟典告成, 多福荐至。 伏念臣幸逢昭代, 邈在弊封。 迹雖阻於駿奔, 誠倍殫於燕賀。 獻中宮禮物, 紅細苧布、白細苧布、黑細麻布各二十匹, 滿花席一十張, 黃花席、雜彩花席各六張。
閔生、致等幷齎請王世子冠服奏啓本以去。 奏本曰:
議政府狀啓: "照得, 洪武二年十月日, 中書省咨: ‘欽奉聖旨, 節該: 「頒賜國王冕服九章。 陪臣冠服, 比中朝臣下九等, 遞降二等, 王國七等。 陪臣一等, 秩比中朝第三等, 賜以五梁冠服, 二等秩比中朝第四等, 四梁冠服。 三等以下, 依此遞降。」’ 至永樂九年八月日, 先君恭定王, 欽蒙太宗文皇帝賜冕服九章, 止有王世子冠服一節, 有可陳達者。 曩於永樂五年間, 恭定王男禔, 以世子赴京朝見, 蒙賜五梁冠服。 竊惟太祖高皇帝, 旣令陪臣一等秩, 比中朝第三等, 賜以五梁冠服, 王世子冠服, 下與臣等無別, 似爲未便。 合無將前項事, 因稟達朝廷, 請加世子梁冠等數, 頒降遵守相應。" 得此。 上項事因, 理宜奏請頒降, 爲此謹具奏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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