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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실록 40권, 세종 10년 윤4월 8일 기축 6번째기사 1428년 명 선덕(宣德) 3년

한성부가 경성의 구역 단위를 조정할 것을 건의했으나 예전대로 그냥 두도록 하다

한성부가 계하기를,

"병오년의 호적[版籍]이 지금에 이르러 드디어 경성(京城) 5부의 호수(戶數)가 1만 6천 9백 21호, 인구는 10만 3천 3백 28인이며, 관령(管領)이 46인을 이루었습니다. 성밖 10리의 지역에는 호수가 1천 6백 1호, 인구가 6천 44인, 관령이 15명입니다. 그 휴양(休養)하며 생취(生聚)하는 모습이 흥성하다 말할 수 있습니다. 비옵건대 주(周)나라·당(唐)나라의 제도에 따라 5부의 각방(各坊)에 5가를 비(比)로 하여 장(長) 1인을 두며, 1백 가를 이(里)로 하여 정 1인을 두고, 성 밖의 각 면(面)은 30가를 이(里)로 하여 권농(勸農) 1인을 두며, 매 1이(里)마다 모두 표지(標識)를 세워 분별하고, 모든 가구(家口)의 다과(多寡)와 귀천(貴賤)·노유(老幼), 모든 세금과 부역의 부과와 면제, 제사·혼인·상사(喪事)·농상(農桑)의 권장(勸奬)과 징계 등을, 매번 명령을 시행할 때를 당하여 집집마다 가서 보고 호마다 깨우쳐서 제때에 봉양하게 하여, 도망한 자로 하여금 숨을 곳을 없게 하고, 옮겨 간 자로 하여금 용납할 곳이 없게 하여, 서로 보호하고 서로 지켜서 예속(禮俗)을 이루게 하소서."

하니, 이조에 내려 의정부·제조(諸曹)와 더불어 함께 의논하라고 명하였다. 여러 사람들이 말하기를,

"지금의 5가의 장은 곧 비장(比長)이며, 관령(管領)은 곧 이정(里正)인 것이니, 각방의 관령 46인도 오히려 사람을 선택하여 임명하기가 어려운데, 만약 1만 6천 9백 21호를 매 1백 호마다 이정 한 사람씩 둔다면 1백 23인을 더 두어야 하게 되니, 어떻게 채워 임명하겠습니까. 또 성밖의 각 이에는 이미 관령이 있어서 권농(勸農)의 임무까지 겸해 맡고 있으니, 반드시 다시 〈권농을〉 설치할 필요는 없습니다. 마땅히 예전대로 그냥 두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니, 그대로 따랐다.


  • 【태백산사고본】 13책 40권 11장 A면【국편영인본】 3책 128면
  • 【분류】
    호구-호구(戶口)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漢城府啓: "丙午年版籍, 迄今乃成。 京城五部, 戶一萬六千九百二十一, 口十萬三千三百二十八, 管領四十六, 城底十里, 戶一千六百一, 口六千四十四, 管領十五, 其休養生聚, 可謂盛矣。 乞依之制, 五部各坊五家爲比, 置長一人; 百家爲里, 置正一人。 城底各面三十家爲里, 置勸農一人, 每一里皆立標, 以辨夫家之衆寡、貴賤老幼。 凡征役之施舍、祭祀婚姻喪紀農桑之勸懲, 每當施令, 家至戶諭, 以時奉行, 使奔亡者無所匿, 遷徙者無所容, 相保相守, 以成禮俗。" 命下吏曹與政府諸曹同議, 僉曰: "今之五家長卽比長, 管領卽里正。 各坊管領四十六, 尙難擇定, 若以一萬六千九百二十一戶, 每百戶置一里正, 加一百二十三人, 何以充差? 且城底各里, 旣有管領, 兼掌勸農, 不必更設, 宜仍其舊。" 從之。


  • 【태백산사고본】 13책 40권 11장 A면【국편영인본】 3책 128면
  • 【분류】
    호구-호구(戶口)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