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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실록39권, 세종 10년 2월 22일 갑술 1번째기사 1428년 명 선덕(宣德) 3년

과거를 제술로만 치르는 것에 대한 보강책을 대신들에게 묻다

정사를 보고 경연에 나아갔다. 임금이 말하기를,

"요사이 말하는 사람들은 근래에 과거(科擧)는 제술(製述)만 전용(專用)하므로, 성균관(成均館)의 학생이 경서(經書)는 읽지 않고 다만 초(抄)하여 모으는 것만 익히게 되므로, 전혀 인재(人才)를 기르는 뜻이 아니라고 하는데, 나는 생각하건대 선비를 뽑는 방법을 아는 사람은 양촌(陽村)018) 만한 이가 없는데도, 그가 상서(上書)하기를, ‘마땅히 제술(製述)로써 시험해야 된다. ’고 하였으나, 강경(講經)은 조종(祖宗)의 성헌(成憲)이므로 경솔히 고칠 수 없다. 다만 근래에 연사(年事)가 흉년이 들었기 때문에 제술로써 시험했었으니 어떻게 하면 옳겠는가."

하니, 좌대언(左代言) 김자(金赭)가 아뢰기를,

"신의 의사로는 양촌(陽村)의 상서(上書)에 의거하여 평상시에 재(齋)에 거처할 때는 구재(九齋)로 나누어 고강(考講)하여 승진시키고, 시취(試取)할 때에 제술(製述)을 사용함이 옳겠습니다."

하였다. 임금이 옳게 여겼다.

강(講)하다가 당나라 무종(武宗) 원년 6월에 여러 신하들이 정무(政務)를 말하였으나 대궐 안에 머물려 두었다는 말에 이르러 말하기를,

"무릇 상서를 임금이 대궐 안에 머물려 두고 내려 보내지 않은 것은 아름다운 일은 아니다. 만약 공사(公私)와 선악의 분변에 있어서 거취(去取)를 밝힌다면 옳겠지마는, 진실로 밝히지 못한다면 정론(正論)을 한 사람은 다시는 말하려고 하지 아니하여 폐단이 반드시 다단(多端)할 것이다."

하니, 김자가 아뢰기를,

"상서(上書)한 사람에게 이미 죄를 주지 않았다면 그 일을 명백히 아랫사람들에게 보여야만 옳을 것입니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2책 39권 23장 A면【국편영인본】 3책 117면
  • 【분류】
    왕실-경연(經筵) / 왕실-국왕(國王) / 인사-선발(選拔) / 교육-인문교육(人文敎育)

○甲戌/視事, 御經筵。 上曰: "近有言者曰: ‘比來科擧, 專用製述, 成均學生, 不讀經書, 惟習抄集, 殊非育才之義。’ 予以爲知取士之術者, 無如陽村, 而其上書曰: ‘宜試以製述。’ 然講經, 祖宗成憲, 不可輕改。 但因近來年歉, 試以製述, 如之何則可?" 左代言金赭曰: "臣意以爲依陽村上書, 常時居齋, 則分九齋, 考講而升之, 試取則用製述可矣。" 上然之。 講至 武宗元年六月群臣言事留中之語曰: "凡上書, 人主留中不下, 非美事也。 若於公私善惡之辨, 明以去取則可, 苟或不明, 則正論者不肯復言, 而弊必多端矣。" 曰: "上書者, 已不加罪, 則以其事, 明視於下, 斯可矣。"


  • 【태백산사고본】 12책 39권 23장 A면【국편영인본】 3책 117면
  • 【분류】
    왕실-경연(經筵) / 왕실-국왕(國王) / 인사-선발(選拔) / 교육-인문교육(人文敎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