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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실록 37권, 세종 9년 9월 17일 임인 1번째기사 1427년 명 선덕(宣德) 2년

예조에서 여자의 혼인 연령을 14세에서 20세까지로 정하고 이를 어기지 말게 할 것을 건의하다

예조에서 계하기를,

"삼가 살펴보옵건대, 《주문공가례(朱文公家禮)》에, ‘남자는 나이 16세에서 30세까지, 여자는 나이 14세에서 20세까지 당사자와 주혼자(主婚者)가 기년(期年) 이상의 상(喪)이 없어야 혼인할 수 있다. ’고 하였는데, 주(註)에는, ‘옛날에 남자는 30세가 되어 장가가고, 여자는 20세가 되어 시집갔는데, 지금 법령 조문에 남자는 나이 15세, 여자는 나이 13세 이상이 되면 모두 장가들고 시집가는 일을 허락한다.’ 했으니, 지금 이를 설(說)하는 것은 고금(古今)의 도리를 참고하고 예령(禮令)의 중도(中道)를 참작하여 천지의 이치에 순응하고 인정(人情)의 적당함에 합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 국가에서는 빈궁한 사람이 혹시 시기가 지나치도록 능히 혼가(婚嫁)하지 못한 사람이 있을까 염려하여, 서울과 지방의 맡은 관사(官司)로 하여금 엄중히 방문(訪問)하게 하여 시기를 잃지 않도록 하고, 이를 어긴 사람에게는 죄를 주게 되니, 〈이것이〉 《예전(禮典)》에 기재되어 있지마는, 그러나 연한(年限)을 정하지 않은 까닭으로 모든 혼인하는 집에서 서둘러 급하게 하고자 하는 뜻이 없으며, 서울과 지방의 맡은 관사(官司)에서도 또한 증거할 바가 없으므로 고찰(考察)함이 점점 쇠퇴(衰頹)하여 시기를 잃게까지 되니, 다만 음양(陰陽)의 화합에만 어긋날 뿐만 아니라 여자들이 혹은 남에게 몸을 더럽히게까지 되어 풍속이 아름답지 못하게되니 진실로 미편합니다. 지금부터는 한결같이 《문공가례(文公家禮)》에 의거하여 여자는 나이 14세로부터 20세 안까지 모두 혼인을 하도록 하고, 만약에 부득이하여 기한을 넘기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유를 갖추어 서울은 한성부(漢城府)에 알리고 외방(外方)은 그 고을에 알리게 하고, 서울과 외방(外方)의 맡은 관사(官司)에서는 다시 사실을 조사하여 만약에 까닭도 없이 기한을 넘기는 사람이 있으면 그 혼주(婚主)되는 사람은 형률에 의거하여 논죄할 것입니다."

하니, 그대로 따랐다.


  • 【태백산사고본】 12책 37권 24장 A면【국편영인본】 3책 92면
  • 【분류】
    풍속-예속(禮俗) / 출판-서책(書冊)

○壬寅/禮曹啓: "謹按《朱文公家禮》云: "男子年十六至三十, 女子年十四至二十, 身及主婚者無期以上喪, 乃可成婚。" 註云: "古者男三十而娶, 女二十而嫁。" 今令文, 男年十五, 女年十三以上, 竝聽婚嫁, 今爲此說, 所以參古今之道, 酌禮令之, 中順天地之理, 合人情之宜也。 我國家慮貧乏之人, 或有過時不能婚嫁者, 令中外攸司, 嚴加訪問, 使不失時, 違者罪之, 載在禮典。 然年限不定, 故大小婚姻之家, 無汲汲欲速之意, 而中外攸司亦無所據, 考察陵夷, 以致失時, 非唯有乖於陰陽之和, 至有女子或爲人所汚, 風俗不美, 誠爲未便。 自今一依《文公家禮》, 女子年自十四至二十歲內, 幷皆成婚, 如有故不得已過限者, 具其事由, 京中則告于漢城府, 外方則告于其官, 中外攸司, 更加覈實, 如有無故過限者, 其應主昏者, 依律論罪。" 從之。


  • 【태백산사고본】 12책 37권 24장 A면【국편영인본】 3책 92면
  • 【분류】
    풍속-예속(禮俗) / 출판-서책(書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