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실록 37권, 세종 9년 8월 29일 갑신 3번째기사
1427년 명 선덕(宣德) 2년
권채와 그의 아내를 형벌로서 신문하도록 하다
의금부 제조 신상(申商)이 계하기를,
"권채(權採)의 노비(奴婢)가 공초(供招)를 바친 것이 형조(刑曹)와 다름이 없는데도 권채와 그 아내는 모두 실정을 고백하지 않고 허물을 형조 판서에게 돌리니, 이 사람은 다만 글을 배울 줄은 알아도 부끄러움은 알지 못합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임금의 직책은 하늘을 대신하여 만물(萬物)을 다스리는 것이니, 만물이 그 처소를 얻지 못하여도 오히려 대단히 상심(傷心)할 것인데 하물며 사람일 경우야 어떠하겠는가. 진실로 차별없이 만물을 다스려야 할 임금이 어찌 양민(良民)과 천인(賤人)을 구별해서 다스릴 수 있겠는가. 녹비(祿非)가 나타나서 일의 증거가 더욱 명백한 것이 이와 같은데, 권채가 기어코 복죄(服罪)하지 않는다면 마땅히 형벌로서 신문할 것이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2책 37권 17장 B면【국편영인본】 3책 89면
- 【분류】신분-천인(賤人) / 사법-재판(裁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