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찰방 김위민이 오랫동안 폐단된 일들을 계를 올려 아뢰다
제주도 찰방 김위민(金爲民)이 계하기를,
"삼가 제주의 공사간에 여러해 동안 폐단된 일을 가지고 조목으로 나열하여 아뢰나이다.
1. 신이 제주에 도임했을 때 고소하는 자가 구름 몰리듯 하였는데, 모두 토호(土豪)들의 불법적으로 양민을 점유하는 일들이었습니다. 물으면 모두 말하기를, ‘이 지방이 멀리 바다 밖에 있어서 수령의 기강이 해이하고, 토호들이 방자한 행동으로 제 마음대로 양민을 점유하여 봉족(奉足)이라 일컫고는 부리기를 노예와 같이 하므로, 양민의 아들로서 나이가 겨우 8, 9세만 되면 벌써 점유를 당하여 아비로서 자식이라 할 수가 없게 되고, 비록 관청에 호소한들 권세 있는 부호의 농간대로 안 되는 일이 없으니, 원통하고 억울함을 어떻게 해야 풀 수가 있겠습니까.’ 하오니, 청하건대 금방(禁防)을 엄중히 세우고 안무사(按撫使)로 하여금 철저히 조사하여, 만일 양민을 강제로 점유하여 봉족이란 명칭으로 노역시키는 자가 있거든 법에 의해서 단단히 응징하여 그 폐단을 제거할 것.
1. 제주는 토지가 본래 모두 모래와 돌이어서 농리(農利)가 풍족하지 못하므로 세궁민의 생계가 진실로 걱정이 되는데, 번번이 내려온 안무사(按撫使)가 6, 7월의 한창 농사철을 당하여 진상(進上)할 안롱(鞍籠)에 사용되는 장록비(獐鹿皮)를 칭탁하고서 농민들을 다 몰아내어 여러날 동안 사냥을 하기 때문에 백성들에게 농사철을 잃게 하여 그 폐단이 여간이 아니오니, 청하건대 외반(外班)에 전지하시와 녹비 안롱(鹿皮鞍籠)과 모장피 아다개(毛獐皮阿多介) 같은 것을 일체로 감면하여 그런 폐단을 고칠 것.
1. 민간에서 과일 나무를 가꾸는 것은 앞으로 그 이익을 얻어서 자손을 위한 계획으로 하는 것이며, 또 민가에서 과일을 거두지 못하게 금하는 것은 이미 분명한 법령이 있는데, 지방관이 민가의 감귤(柑橘)로써 진상한다고 칭탁하고 나무를 세어 장부에 기록하고, 열매가 겨우 맺을 만하면 열매 수를 세어 감독해서 봉하여 두고, 혹시 그 집 주인이 따는 일이 있으면 절도죄로 몰아대고 전부 관에서 가져가므로, 백성은 이익을 보지 못하여 서로가 원망하고 한탄하오니, 청하건대 수령들로 하여금 해마다 심게 하고 동내마다 심은 것을 인계 서류에 등록하게 하면 십 년 뒤에는 장차 이루 다 쓸 수가 없을 만큼 될 것이오니, 관은 민가에서 거두는 폐단이 없게 되고, 백성들은 죄를 받는 원망이 없게 될 것이오며, 만일 부득이 민가의 감귤을 가지고 진상할 경우에는. 그 값을 넉넉하게 주어 사람들이 모두 심고 가꾸기를 권장하고 원망하는 일이 없도록 할 것.
1. 중이 아내를 가지는 것은 법으로 정한 죄가 있어 《육전(六典)》에서 금하는 바이온대, 제주의 중들은 공공연하게 아내를 가지며 사사(寺社)를 자기 집으로 삼고, 제자들에게 일을 시켜 자기 처자 양육을 영위하면서 관청의 부역은 별로 없이 앉아서 배부르고 따뜻이 누리고 지내니, 육지의 중들이 또한 모두 소문을 듣고 깊은 물에 고기떼 모이듯이 몰려들어 그 모양을 따라 하되, 관에서는 예사로 알아서 또한 금하지 아니하여 실로 폐단스러운 풍속이 되었사오니, 청하건대 제주의 대처승을 일체로 조사하여 모조리 목자(牧子)로 만들거나 혹은 군대에 보충시키거나 할 것.
1. 제주의 교수관(敎授官)·교유(敎諭)·검률(檢律)이 비록 수령의 예는 아니지마는, 역시 다 조정에서 명을 받아 임금의 교화를 돕는 자이니, 당연히 염치를 길러서 선비다운 기풍을 보여 주어야 할 것인데, 혹자는 사사 물건을 가지고 돈을 벌고 말을 사는 등, 장사들과 더불어 이해를 다투는지라 섬 백성들에게 업신여김을 받으니 심히 부끄러운 일입니다. 금방(禁防)을 엄하게 세워 선비의 풍기를 깨끗하게 할 것.
1. 향리(鄕吏)라는 것은 그 구실을 대대로 이어 전하여 그 고을과 함께 흥망을 같이하는 것이온대, 제주에서는 향리(鄕吏)는 일하지 않고 오로지 전리(典吏)에게 일임하니 향리를 두는 법에 어긋남이 있으며, 향리가 또한 예법을 알지 못할 뿐 아니라, 고을 안의 일을 하나도 아는 것이 없기에 신이 괴이하여 그 까닭을 물은즉, 고을 사람들이 모두 말하기를, ‘옛날에 안무사 조원(趙原)이 일시적인 편의로써 양민 가운데 글자 아는 사람 30여 명을 뽑아서 전리(典吏)라 명칭하고, 기록하는 벼슬아치의 구실을 대신하게 하던 것이 지금까지 고쳐지지 못하여, 아침에 전리가 되었다가 저녁에 진무(鎭撫)나 천호(千戶)가 되므로, 백성들이 다투어 하고자 하고, 향리는 다만 둔전(屯田)·어렵(漁獵)·흥판(興販) 등 잡역에 종사할 뿐이라. ’고 합니다. 신은 생각하건대 조원이란 사람이 제 마음대로 전리를 둔 것이 이미 불가한데, 그대로 지금까지 내려오면서 바다 풍속에 조종하기 어려운 사람으로 기록하는 구실아치를 만들고 아침에 갈았다가 저녁에 고치고 하니, 어떻게 함께 흥망을 같이할 수가 있겠습니까. 또 제주의 각 고을 향리 수가 6백여 인이 되는데, 그 가운데 어찌 글자 지식이 전리가 하는 일을 맡을 만한 자가 없어서 따로 전리를 두어서 봉족(奉足)보다 우대해 주고 병역에 갈 사람을 줄일 것입니까. 청하건대 다른 고을들의 예에 의하여 향리로 하여금 육방(六房)의 책임을 맡도록 하고 전리를 혁파하여 병역 인원에 충당하도록 할 것.
1. 제주의 지형이 동서로 1백 20여 리요, 남북으로 60여 리인데, 정의(旌義)와 대정(大靜)이 동과 서의 두 모퉁이에 있고, 목사(牧使)가 중앙에 있으니, 비록 토관(土官)이 없더라도 다스리기 어려울 것이 없는데, 따로 도진무(都鎭撫)와 동서도사(東西都司)와 좌우 도주관(左右都州官)을 설치하여 모두 관인(官印)을 받아 가지고 수령과 대등이 되게 하고, 또 둑소(纛所) 10을 두어서 각처에 있는 토관의 인원수가 70여 인에 달하는데, 각기 아전과 군졸을 거느리고서 권리를 펴고 세력을 빙자하여, 혹은 수령에게 아부하고 혹은 민생을 긁어 먹는데, 관은 많고 백성은 적어서 폐만 있고 이익됨은 없습니다. 그런데 좌우 도주관(左右都州官)만은 혹 성주(星主)·왕자(王子)라 일컫는 예로부터의 풍습이 있으니, 종전대로 두어도 좋겠으나, 나머지는 다 혁파하고 다른 고을의 예에 따라 각기 사는 고을에 분속시키고 모두 관인(官印)을 회수할 것이며, 도진무(都鎭撫)는 안무사가 적당하게 골라 정하되, 진무(鎭撫)의 수를 감하여 많아야 5, 6인에 불과하게 하여, 토호들의 백성을 침해하는 폐단을 억제할 것.
1. 제주의 풍속에 공사간의 계집종과 양민 집의 딸을 유녀(遊女)라고 명칭하여, 장부에 이름을 적어 놓고 관비(官婢)와 같이 부리기에 그 이유를 물은즉, 말하기를, ‘이것들이 장사아치를 만나면 음란한 행동으로 재리를 취하여 그 배필을 문란하게 하므로, 노역을 이렇게 시키는 것은 징계를 보이어 음란한 풍기를 금하기 위함이라. ’고 합니다. 신이 생각하건대 이들이 더러운 이름을 입기 전에는 오히려 남이 알까 두려워서 혹 행실을 고칠 수가 있지마는, 이름이 관청 장부에 실리게 된 바에는 터 놓고 행동하여 꺼림이 없게 되며, 또 동무들을 유인하기를 좋아하여 혹 감정을 품거나 혹 소문만을 듣고 아무의 딸이 아무 사람과 간통하였다 하여, 서로 끌어들이고 관에서도 또한 일 시키는 것을 달게 여기어 진짜 가짜를 구별하지 아니하고 유녀로 입적시키니, 이것은 음란한 풍기를 금하는 것이 아니라 일부러 권하는 것이 됩니다. 이제부터는 유녀의 장부를 없애버리고 유녀로 일컫는 것을 금할 것이며, 그들의 범행에 따라 법대로 죄를 주어 징계를 보이도록 할 것.
1. 제주는 땅은 좁은데 축산은 번성합니다. 가난한 백성의 전토가 한두 뙈기 밖에 안 되는데, 농작물의 싹과 잎이 조금 번성할 만하면 권세 있는 집에서 마소를 마음대로 놓아 먹이므로, 그 싹을 다 뜯어 먹어도 가난한 백성은 위엄을 무서워하여 감히 고소하지도 못하고, 비록 관에다 고소를 한대도 아무런 방도도 얻지 못하니, 이것도 쌓이고 쌓인 폐단입니다. 신이 생각하건대 마소를 놓아 먹여 백성의 곡식을 손상시킨 자는 그 집의 주인을 관직 고하를 막론하고 모두 법 조문과 교지에 따라 죄를 주어 백성의 고통을 구제해 줄 것.
1. 제주는 소산물이 많아서 달마다 진상할 때에 사사 물건을 끼어서 운반하고, 여러 마리의 말을 진상할 때도 사사 말을 많이 끼어 운반하므로, 역참(驛站)의 길을 번잡하게 하고 선비의 풍기를 더럽게 합니다. 신이 생각하건대 제주에서 물건이나 말을 진상할 때는 다른 도에서 진상할 때 검찰하는 예에 의하여 지나는 각 역의 관속과 찰방이 공문을 살피고 조사하여서, 만일 사사인 물건이 끼여 있을 경우에는 감사에게 보고 하여 죄로 논해야 할 것입니다."
하니, 정부와 육조에 내려 의논하기를 명하매, 모두 말하기를,
"계한 것이 당연하니 가히 그대로 시행함이 좋은데, 오직 토관(土官)을 파하여 제거하자는 한 가지 일만은 안무사(按撫使)에게 공문을 보내어서 재확인하여 계달한 뒤에, 다시 의논하여 시행할 일입니다."
하므로, 그대로 따랐다. 그 뒤에 안무사가 계하기를,
"동서로 있는 정해진(靜海鎭) 및 여러 곳에 천호(千戶) 넷을 가설하며, 도진무(都鎭撫)는 혁파하고 관인(官人)은 별로 쓰일 데가 없으니 또한 회수할 일입니다."
하매, 다시 정부와 육조에 내리어 의논하게 한 결과 모두 가하다고 하므로, 그대로 따랐다.
- 【태백산사고본】 12책 36권 22장 A면【국편영인본】 3책 77면
- 【분류】풍속(風俗) / 교통-육운(陸運) / 상업(商業) / 신분-중인(中人) / 신분-천인(賤人)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군사-군역(軍役) / 재정-진상(進上) / 재정-역(役) / 농업-과수원예(果樹園藝) / 농업-축산(畜産) / 농업-전제(田制) / 사상-불교(佛敎) / 금융-식리(殖利)
○濟州道察訪金爲民啓: "謹將濟州公私積年弊事, 條列以聞: 一, 臣到濟州, 告訴者如雲, 皆土豪影占良民事也。 問之則皆曰: "此地邈在海外, 守令紀綱陵夷, 土豪恣行, 自占良民, 稱爲奉足, 使之如奴隷, 故良民之子, 年才八九, 已爲所占, 而父不得爲之子, 雖訴於官, 未有不爲權豪所弄, 冤抑何由得伸?" 請嚴立禁防, 令按撫使推劾, 如有强占良民, 稱爲奉足役使者, 依律痛懲, 以除其弊。 一。 濟州土地, 本皆沙石, 農利不饒, 小民之生, 誠爲可慮。 每等按撫使, 當六七月正農之時, 托以進上, 鞍籠獐鹿皮, 盡驅農民, 累日田獵, 使民失時, 其弊不小。 請傳旨外班, 鹿皮鞍籠與毛獐皮阿多介等物, 一皆蠲免, 以革其弊。 一。 民家栽培果木, 所以將見其利, 而爲子孫計也。 且禁取民戶菓實, 已有著令。 州官以民戶柑橘, 托稱進上, 計株載籍, 纔結其實, 計箇監封, 或其主摘取, 論以竊用之罪, 盡取於官, 民不見利, 相與怨咨。 請令守令, 每年栽植等內所種, 錄於解由十年之後, 將不勝其用, 而官無斂民之弊, 民無受罪之怨。 若民戶柑橘, 不得已摘取進上, 優給其價, 則人皆勸於栽植, 而怨咨息矣。 一。 僧徒娶妻, 律有定罪, 而《六典》所禁, 濟州僧徒, 公然娶妻, 以寺社爲家, 役其弟子, 營其妻子之養, 略無公家之役, 坐享飽煖, 陸地僧徒亦皆聞風, 如魚之聚淵, 靡然俱效。 州官視爲常事, 亦莫之禁, 實爲弊風。 請濟州對妻僧徒, 一皆推刷, 定爲牧子, 或補軍額。 一, 濟州敎授官敎諭檢律, 雖非守令之例, 亦皆受命於朝, 以佐王化者也。 宜養廉恥, 以示士風, 或將私物, 殖貨買馬, 與商爭利, 取侮於海島之民, 深爲可恥。 嚴立禁防, 以礪士風。 一, 鄕吏世傳其役, 與本邑同休戚者也。 濟州不役鄕吏, 專任典吏, 有乖置吏之法。 吏亦非徒不諳禮法, 官中之事, 一無所知, 臣怪問其故, 鄕人皆曰: "昔者按撫使趙原, 以一時之便, 擇良民識字者三十餘人, 稱爲典吏, 以代記官之役, 至今不革, 朝爲典吏, 暮爲鎭撫千戶, 民爭欲之, 鄕吏則只役於屯田漁獵興販等雜事而已。" 臣謂趙原擅置典吏, 已爲不可, 因循至今, 以海俗難制之人, 爲之耳目, 而朝更夕變, 安有與同休戚之望哉? 且濟州各官鄕吏之數, 至於六百餘人, 其中豈無識字可任典吏之役者, 而別置典吏, 優給奉足, 以減軍役之民哉? 請依他州郡例, 令鄕吏, 掌六房之任, 革典吏, 以充軍額。 一, 濟州之地, 東西百二十餘里, 南北六十餘里。 旌義、大靜, 居東西二隅, 牧官在其中, 雖無土官, 豈難治哉? 而別置都鎭撫、東西都司、左右都州官, 皆受印信, 與守令竝立。 又置十纛所, 各處土官之額, 至於七十餘人, 各率衙前吏卒, 席權藉勢, 或附守令, 或剝民生, 官多民小, 有弊無益。 然左右都州官, 則或稱星主王子之遺風, 仍舊猶可也, 餘皆革除, 依他郡例, 分隷所居各官, 竝收印信。 都鎭撫, 則按撫使隨宜擇定, 減鎭撫之數, 多不過五六人, 以抑豪悍侵民之弊。 一, 濟州之俗, 以其公私婢子與良家之女, 稱爲遊女, 記名於簿, 使之如官婢。 問其所由則曰: "此輩見商賈人, 淫奔徼利, 以亂其配。 役之如此者, 所以示懲戒、禁淫風也。" 臣謂此輩未被汚名, 尙畏人知, 或可改行, 及其載名官簿, 恣行無忌, 且好引朋類, 或挾恨、或風聞, 指稱某女奸某人, 互相援入, 官亦甘心於役使, 不卞眞僞, 籍於遊女, 是非唯不禁淫風, 乃勸之也。 願自今除遊女案, 禁稱遊女, 隨其所犯, 依律斷罪, 以示懲戒。 一, 濟州土地窄, 而畜産繁, 貧民之田, 不過一二畝, 及其苗葉稍盛, 權豪之家, 恣放牛馬, 盡喫其苗, 而貧民畏威, 不敢告訴。 雖告於官, 反不得路, 此亦積弊也。 臣謂放牛馬、損民穀者, 其家長, 不論職秩高下, 竝依律文及敎旨坐罪, 以救民瘼。 一, 濟州多所産, 每朔進膳之時, 兼帶私物, 進馬之時, 多挾私馬, 以煩驛路, 以汚士風。 臣謂: "濟州進膳與馬, 依他道進上檢察例, 所過各驛丞及察訪, 驗文搜探, 如有私挾, 傳報監司論罪。" 命下政府六曹議之, 皆曰: "所啓當矣, 可如啓施行。 唯土官革除一事, 行移按撫使, 商確啓聞後, 更議施行。" 從之。 於是(安)按〔撫〕 使啓: "東西靜海鎭及各所加設千戶四, 可革都鎭撫, 印信別無所用之處, 亦可收取。" 更下政府諸曹議之, 僉曰: "可。" 從之。
- 【태백산사고본】 12책 36권 22장 A면【국편영인본】 3책 77면
- 【분류】풍속(風俗) / 교통-육운(陸運) / 상업(商業) / 신분-중인(中人) / 신분-천인(賤人)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군사-군역(軍役) / 재정-진상(進上) / 재정-역(役) / 농업-과수원예(果樹園藝) / 농업-축산(畜産) / 농업-전제(田制) / 사상-불교(佛敎) / 금융-식리(殖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