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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실록 35권, 세종 9년 1월 22일 신해 2번째기사 1427년 명 선덕(宣德) 2년

충주 땅으로 넘어 들어간 음죽현에 속한 무극역을 원래대로 하게 하다

경기 감사가 음죽 현감(陰竹縣監) 임목(林穆)의 정문(呈文)에 의거하여 계하기를,

"현(縣)에 속한 무극역(無極驛)충주(忠州) 땅으로 넘어 들어가서, 현(縣)과 일식(一息)의 거리에 떨어져 있고, 또한 큰 내가 막혀 있으므로 여름철에 빗물이 넘쳐 흐르면 건너기가 어렵게 되어, 모든 사신의 행차를 영접 전송하고 대접하는 데 그 시기에 미치지 못하여 관리들이 책망을 당한 것이 적지 않습니다. 또 관리들이 역(驛)에 있다가 물에 막혀 돌아가지 못하면, 그 접대비(接待費)를 부득이 촌민(村民)에게서 거두어야 하며, 더구나 왜객(倭客)의 왕래가 끊어지지 않으므로, 많은 짐바리를 현(縣)의 백성이 충주(忠州) 땅 40여 리(里)를 건너가서 여러날 운반하게 되매, 사람과 말이 피곤하니, 이와 같은 것은 모두 여러 해의 큰 폐단이므로 염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역(驛)의 사면은 모두 충주(忠州)의 촌락이니, 청컨대 역리(驛里)의 민호(民戶) 96 호와 전지(田地) 3백 13결(結) 96짐[卜]을 현(縣)의 부근 충주의 땅과 서로 바꾸어 정속(定屬)시킬 것입니다. 만약에 ‘개의 어금니처럼 서로 들어간 것이 다만 이 현(縣)뿐만이 아니므로 다시 고치기가 쉽지 않다. ’고 한다면, 분행(分行) 이상 각역(各驛)의 예(例)에 의거하여 일수(日守)를 적당히 더 정하고, 역의 늠료(廩料)로써 손님을 접대하고, 일수로 하여금 영접하고 전송하게 하여, 본현(本縣)의 폐단을 제거하고, 객인의 짐바리를 운반하는 일은 역에 가까운 충주 사람으로 하여금 일을 합쳐 짐을 싣게 하여 현민(縣民)의 곤란을 덜어 줄 것입니다."

하니, 명하여 정부와 여러 조(曹)에 내려 함께 의논하게 하였다. 좌의정 이직(李稷)과 우의정 황희(黃喜) 등이 의논하기를,

"일수(日守)를 더 정하는 것과 역의 늠료(廩料)로써 손님을 접대하는 것은 감사의 계한 바에 의거하고, 왜인의 짐바리는 얼음이 얼 때를 제외하고는 모두 수로(水路)를 따라 내왕하게 하여, 그전대로 하는 것이 편리할 것입니다."

하니, 그대로 따랐다.


  • 【태백산사고본】 11책 35권 9장 A면【국편영인본】 3책 58면
  • 【분류】
    교통-육운(陸運)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과학-지학(地學) / 외교-왜(倭) / 재정-국용(國用)

京畿監司據陰竹縣監林穆呈啓: "縣屬無極驛, 越入忠州之地, 距縣一息, 且隔大川, 夏月雨水漲溢, 則過涉爲難, 大小使臣行次迎送支待, 未得及期, 官吏受責不細。 又官吏在驛阻水未還, 則其供億, 不得已斂於村民, 且倭客往來絡繹, 數多輜重, 縣民越忠州之地四十餘里, 累日轉輸, 人馬困弊。 若此者, 皆積年巨弊, 不可不慮。 驛之四面, 皆忠州村落, 請將驛里民戶九十六、田三百十三結九十六卜, 與縣附近忠州之地, 相換定屬。 如曰犬牙相入, 非獨此縣, 未易更改, 則依分行以上各驛例, 日守量宜加定, 以驛廩供客, 以日守迎送, 以除本縣之弊。 客人輜重轉輸, 以近驛忠州之人同力駄載, 以減縣民之困。" 命下政府諸曹同議。 左議政李稷、右議政黃喜等議: "日守加定與驛廩支客, 依監司所啓。 倭人輜重, 氷凍時外, 皆從水路來往, 仍舊爲便。" 從之。


  • 【태백산사고본】 11책 35권 9장 A면【국편영인본】 3책 58면
  • 【분류】
    교통-육운(陸運)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과학-지학(地學) / 외교-왜(倭) / 재정-국용(國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