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해도 백령진의 아전·관노비를 새로 설치한 영강진에 옮기고 강령진이라 일컫다
황해도 백령진(白翎鎭)이 일찍이 문화현(文化縣)에 합쳐져 있었는데, 그 고을의 아전(衙前)·관노비(官奴婢)를 새로 설치한 영강진(永康鎭)에 옮겨 소속시키고, 강령진(康翎鎭)이라 일컫게 하였다. 처음에 백령진(白翎鎭)이 해도(海島)로서 주위 1백 80여 리(里)에 비옥(肥沃)한 땅이어서, 고려 때에 현(縣)을 설치하고 진장(鎭將)과 부장(副將)을 두어 다스리게 하였다. 그 후에 수로(水路)가 험저(險阻)하여 왜구(倭寇)에게 침략당해도 능히 스스로 보전하지 못하므로, 온 고을이 육지로 나와서 문화(文化)·신천(信川) 두 고을의 사이에 우거(寓居)해 있었는데, 경인년에 진(鎭)을 혁파(革罷)하고 문화현(文化縣)에 합쳐졌다. 이때에 와서 백령(白翎)의 아전들이 그 본현(本縣)이 인몰(湮沒)하여 알려지지 않음을 민망히 여겨, 새 진(鎭)에 소속되어 고을 칭호라도 보존하기를 청하였다. 이에 감사가 아뢰므로, 강령(康翎)이라 일컫게 하였으니, 백성들의 소원에 따른 것이었다.
- 【태백산사고본】 11책 35권 8장 A면【국편영인본】 3책 58면
- 【분류】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과학-지학(地學) / 외교-왜(倭) / 군사-관방(關防)
○黃海道 白翎鎭, 曾合於文化縣, 其官人吏官奴婢, 移屬新設永康鎭, 稱爲康翎鎭。 初, 白翎鎭在海島, 周圍一百八十餘里, 其地沃饒, 高麗時置縣, 設鎭將副將以治之。 厥後以水路險阻, 爲倭寇所侵, 不能自保, 擧邑出陸, 寓於文化、信川兩邑之間。 歲至庚寅, 革鎭而合(屢)〔屬〕 於文化縣, 至是白翎人吏等悶其本縣湮沒無聞, 求屬新鎭, 以存官號, 於是監司以聞, 以康翎稱之。 從民願也。
- 【태백산사고본】 11책 35권 8장 A면【국편영인본】 3책 5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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