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언 등에게 공비의 어머니 안씨 일에 관해 말하다
대언 등을 명하여 들어와서 계사(啓事)하게 하였다. 임금이 조용히 이르기를,
"무술년(戊戌年)에 강상인(姜尙仁) 등의 공사(供辭)가 심온(沈溫)에게 관련되어 옥사가 이루어지니, 태종께서는 스스로 죽게 명하셨다. 의금부에서 연좌된 심온(沈溫)의 아우와 형인 심징(沈澄)·인봉(仁鳳) 등을 관천(官賤)에 소속시키기를 청하니, 태종께서 말씀하기를, ‘비자(妃子)의 백부와 숙부를 이렇게 처단할 수 없다. ’고 하셨다. 의금부에서 또다시 ‘죄인의 처자는 연좌하지 않을 수 없다.’ 하여 심온(沈溫)의 아내와 자녀를 천안에 기록하기를 청하였는데, 태종께서 말씀하시기를, ‘옳지 않다. ’고 하시면서, 이내 박은(朴訔)에게 이르기를, ‘의금부에서 심온의 아내와 자녀를 천안에 기록하기를 청하니, 이를 어떻게 처리하겠는가.’ 하셨다. 박은이 대답하기를, ‘자기의 죄도 아니고 또한 중궁(中宮)의 어머니이므로, 다른 연좌의 예(例)와 다르니 잡아와서 관천을 삼는 것은 옳지 못합니다.’ 하였으나, 그때에 유정현이 의금부 제조가 되어 연좌시키기를 굳게 청하므로, 태종께서 말씀하시기를, ‘잠정적으로 천안에 기록하겠지만, 그러나 천역은 시키지 말라. 후일에 마땅히 이를 고쳐야 될 것이다.’ 하셨다. 또 신하들이 의논하여 말하기를, ‘죄인의 딸은 왕후(王后)가 될 수 없다. ’고 하여, 공비(恭妃)를 요동시키고자 하니, 태종께서 말씀하시기를, ‘어허, 그게 무슨 말인가. 공비를 요동시킬 이치는 도무지 없다.’ 하셨다. 이때 마침 빈(嬪)과 잉첩(媵妾)을 두려는 의논이 있었으므로, 이 때문에 외인(外人)이 흉흉(洶洶)했는데, 나는 그 당시에는 듣지 못했으나 후에 상세히 이를 들었고, 태종께서 일찍이 한 방에 나와 있을 때에 대비도 자리에 모시고 나도 곁에 있었다. 대비께서 말씀하시기를, ‘공비의 어머니가 천안에 기록된 것은 매우 옳지 못하니, 모름지기 이를 고칠 것이다.’ 하셨고, 태종께서도 또한 말씀하시기를, ‘천인에 속하게 된 것은 옳지 못하니 마땅히 이를 고쳐야 될 것이다.’ 하셨다. 내가 물러나와 외차(外次)에 있으니, 태종께서 시녀에게 전하시기를, ‘공비(恭妃)의 어머니는 마땅히 천안에서 삭제해야 될 것이다.’ 하셨다. 그런데, 일이 시행되기 전에 태종께서 갑자기 세상을 떠나시고, 그 뒤에 나는 태종의 뜻을 상세히 알고는 있지만, 그러나 태종 때에 미처 시행하지 못했던 까닭으로 내가 감히 입을 열어 말하지 못하였다. 공비(恭妃)는 외조 안천보(安天保)에게 자랐으며, 또 그가 늙었을 때에는 사생(死生)을 알기 어려운 까닭으로, 갑진년 겨울에는 공비(恭妃)가 집에 가서 잔치를 베풀어 위로하였다. 이에 대신을 불러 자식과 어머니의 사이에 어떻게 이를 처리하겠는가를 의논하니, 대신들이 말하기를, ‘어머니는 비록 마땅히 보아야만 될 것이나, 왕비의 높은 몸으로 아래의 천인과 서로 보는 것은 의리에 통하지 않은 것이 있습니다.’ 하였다. 근일에도 이를 말하는 많은 사람들이 이르기를, ‘어머니와 자식의 사이가 이와 같이 서로 막혀 있을 수 없고, 또한 국후(國后)의 어머니로 천인이 된 것은, 그것이 은혜에 있어서나 의리에 있어서나 모두 옳지 못합니다. ’고 한다. 내가 대신을 불러 의논하게 하니, 대신들도 또한 위에서 말하는 사람의 말과 같았다. 또 정부와 육조에서 올린 글이 있는데, 말하기를, ‘안씨(安氏)는 천안에서 삭제해야 되고, 작첩(爵牒)을 돌려주고, 그 자녀들도 모두 천인을 면해야 될 것입니다.’ 하므로, 내가 이에 윤허했으니, 경 등도 그리 알라. 더구나, 어머니와 자식이 서로 보지 못한 것이 지금은 여러 해가 되었으니, 어찌 박절한 정리가 없겠는가. 이러므로 오는 6월 초1일에 공비(恭妃)를 안씨(安氏)의 집으로 가게 할 터이니, 모두 이를 알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1책 32권 20장 B면【국편영인본】 3책 27면
- 【분류】왕실-비빈(妃嬪) / 신분(身分) / 사법-탄핵(彈劾) / 정론(政論)
○命代言等入啓事。 上從容謂曰: "歲在戊戌, 姜尙仁等, 辭連沈溫, 獄成, 太宗乃命自盡。 義禁府以緣坐, 溫之弟兄沈澄、仁、鳳等, 請屬官賤。 太宗曰: ‘妃子伯叔, 不可以此斷之。’ 義禁府又以罪人妻孥, 不可不緣坐, 請將溫之妻及子女, 錄于賤案, 太宗曰: ‘不可。’ 仍謂朴訔曰: ‘義禁府請溫之妻及子女錄于賤案, 何以處之?’ 訔對曰: ‘非自己之罪, 且中宮之母, 非他緣坐之例, 沒爲官賤不可。’ 其時柳廷顯爲義禁府提調, 固請緣坐。 太宗曰: ‘姑錄賤案, 然勿使賤役, 後當改之。’ 又有臣下議以爲, 罪人之女, 不可爲王后, 欲搖動恭妃者, 太宗曰: ‘惡是何言? 恭妃萬無搖動之理。’ 時適有嬪媵之議, 用是外人洶洶, 予於當時, 未得聞焉, 後乃詳聞之。 太宗嘗御一室, 大妃侍坐, 予亦在側。 大妃曰: ‘恭妃之母, 錄于賤案, 深爲不可, 須改之。’ 太宗亦曰: ‘屬賤不可, 當改之。’ 予退居外次, 太宗使侍女傳曰: ‘恭妃之母, 當削賤案。’ 事未施行, 太宗遽爲賓天。 其後予雖備知太宗之志, 然太宗時未及施行, 故予未敢開說。 恭妃長於外祖安天保, 且其至老, 死生難知, 故歲在甲辰之冬, 恭妃往于第, 設宴慰之。 於是召大臣議: ‘子母之間, 何以處之?’ 大臣以謂: ‘母雖當見, 以王妃之尊, 下與賤人相接, 於義有所不通。’ 近日說者多以爲: ‘母子之間, 不可如此隔絶。 且以國后之母, 沒爲賤人, 其於恩義竝不可。’ 予召大臣議焉, 大臣亦如說者之言。 又有政府六曹上書以爲: ‘安氏當削賤案, 還給爵牒, 其子女竝免。’ 予乃允之, 卿等其知之。 且母子之不相見者, 于今累年矣。 豈無迫切之情乎? 是以來六月初吉, 令恭妃往于安氏之第, 幷知之。"
- 【태백산사고본】 11책 32권 20장 B면【국편영인본】 3책 27면
- 【분류】왕실-비빈(妃嬪) / 신분(身分) / 사법-탄핵(彈劾) / 정론(政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