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정전에 나아가 회시에 입격한 유생 남수문 등에게 책문하다
근정전(勤政殿)에 나아가서 회시(會試)에 입격(入格)한 유생(儒生) 남수문(南秀文) 등에게 책문(策問)하였다. 그 책문(策問)에,
"왕은 말하노라. 대개 듣건대 요(堯)·순(舜)의 지혜로서도 반드시 급무(急務)부터 먼저 한다는 것은 맹자(孟子)의 격언이니, 정치를 말하면서 급무를 먼저 하지 않는다면 모두 구차스러울 뿐이다. 지금 우리 국가는 태조 강헌 대왕(康獻大王)께서 하늘의 밝은 명령을 받아 비로소 큰 기업(基業)을 마련하였으며, 우리 태종 공정 대왕(恭定大王)께서는 신공(神功)과 성덕이 전고(前古)에 뛰어나, 중국을 섬기기를 예(禮)로써 하매, 황제가 그 지성을 가상히 여기고, 이웃 나라와 사귀는 데에도 도리가 있으매, 왜국(倭國)이 와서 복종하여 조정과 민간이 승평(昇平)하며, 백성이 편안하고 물질이 풍성한 지 대개 40년이 되었다. 나는 큰 공적을 계승하여 이른 아침부터 밤 늦게까지 공경하고 두려워하여 감히 편안하지 못하고, 장구하게 다스려지고 오래도록 편안할 도리에 이르기를 기대했는데, 함길도 경원(慶源)의 일만은 의논할 만한 것이 있다. 어떤 이는 말하기를, ‘공험진(公險鎭) 이남은 나라의 옛날 봉강(封疆)이니, 마땅히 군민(軍民)을 두어서 강역(疆域)을 지켜야 될 것이라. ’고 하고, 어떤 이는 말하기를, ‘경원군(慶源郡)은 삼면(三面)에서 적의 공격을 받게 되고, 인민이 적으므로 적군을 방어하기가 어려우며, 그 토지가 좁아서 백성들이 많이 살 수 없으니, 마땅히 경원(慶源)의 수비를 폐지하여 경성(鏡城)으로 옮겨야 될 것이라. ’고 하며, 어떤 이는 말하기를, ‘경원(慶源)에 군사를 둔 것은 태종의 성헌(成憲)이므로 변경하여 고칠 수 없는 것이다. ’라고 하는데, 이 세 가지 설(說)은 과연 어느 것이 이익이 되고, 어느 것이 손해가 되는가. 여연(閭延)·강계(江界) 등의 땅은 야인(野人)의 국경에 가까우므로, 〈그들이〉 왕래하면서 양식을 청구하지 않는 달이 거의 없으니, 장차 청구하는 대로 들어 주려면 관청에 저장된 것이 없으므로, 그들의 한정 없는 욕심에 응할 수 없으며, 저들이 만약 하고자 한 바를 이루지 못한다면 반드시 원한(怨恨)을 품어 변경의 흔단(釁端)을 만들 것이니, 어떻게 그들로 하여금 위엄으로 두렵게 하고 은혜로 생각하게 하여, 변방의 백성이 그전대로 편안하게 살 수 있게 하겠는가. 이것이 오늘날의 급무이므로 과인이 듣고자 하는 바다. 자대부(子大夫)들은 경사(經史)에 통달하여 다스리는 대체를 알고 있을 것이니, 당세(當世)의 할 일에 대하여 강론함에 익숙할 줄 안다. 각기 마음을 다하여 대답하고, 그밖에 시정(時政)의 잘 되고 잘못된 점과 민생의 기쁜 일과 근심되는 일도 또한 각기 진술하되, 숨김이 없도록 하여 내가 직언을 구하는 뜻에 보답하라."
하였다. 영의정 이직(李稷)과 대제학 변계량(卞季良)을 독권관(讀券官)으로 삼고, 지신사 곽존중(郭存中)과 부제학 김상직(金尙直)으로 대독관(對讀官)으로 삼았다. 모화루(慕華樓)에 나아가 무과(武科)의 회시(會試)에 입격(入格)한 구인관(具仁寬) 등에게 기사(騎射)·보사(步射)와 격구(擊毬)를 시험하고 궁궐로 돌아왔다.
- 【태백산사고본】 11책 32권 3장 B면【국편영인본】 3책 19면
- 【분류】외교-야(野) / 왕실-국왕(國王) / 외교-명(明) / 외교-왜(倭) / 군사-관방(關防) / 군사-군정(軍政) / 과학-지학(地學) / 인사-선발(選拔)
○御勤政殿, 策會試入格生南秀文等。 其策問曰:
王若曰, 蓋聞堯、舜之智, 必先急務, 孟子之格言也。 言治而不先急務, 皆苟而已。 今我國家, 太祖康獻大王受天明命, 肇造丕基。 惟我太宗恭定大王神功聖德, 卓冠前古, 事大以禮, 而帝嘉至誠。 交隣有道, 而倭邦賓服, 朝野昇平, 民安物阜, 蓋將四十年于玆矣。 予承丕緖, 夙夜祗懼, 不敢遑寧, 期至長治久安之道, 獨此咸吉 慶源之事, 有可議者焉。 或謂公險以南, 國之舊封, 宜置軍民, 以守疆域, 或謂慶源郡, 三面受敵, 而人民鮮少, 艱於禦侮, 顧其土地狹隘, 民不衆居, 宜罷慶源之守, 移於鏡城, 或謂慶源置兵, 太宗成憲, 不可更改。 是三說者, 果孰得而孰失歟? 閭延、江界等地, 隣於野人之境, 往來索糧, 殆無虛月。 將欲隨索隨與, 官無所儲, 無以應其溪壑之慾。 彼若不遂所欲, 必生怨恨, 以構邊境之釁, 何以使之畏威懷惠, 而邊民按堵歟? 此皆今日之急務, 寡人之所欲聞也。 子大夫通經史、識治體, 其於當世之務, 講之熟矣, 其各悉心以對。 其他時政之失、民生之休戚, 亦各陳之無隱, 以副予求言之意。
以領議政李稷、大提學卞季良爲讀券官, 知申事郭存中、副提學金尙直爲對讀官, 幸(慕館樓)〔慕華樓〕 , 試武科會試入格具仁寬等騎步射與擊毬, 還宮。
- 【태백산사고본】 11책 32권 3장 B면【국편영인본】 3책 19면
- 【분류】외교-야(野) / 왕실-국왕(國王) / 외교-명(明) / 외교-왜(倭) / 군사-관방(關防) / 군사-군정(軍政) / 과학-지학(地學) / 인사-선발(選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