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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실록 31권, 세종 8년 2월 26일 경인 4번째기사 1426년 명 선덕(宣德) 1년

화재와 도둑이 종식되지 아니함을 걱정하여 의정부와 육조의 대신들과 논의하다

임금이 화재가 종식되지 아니함과 도둑이 없어지지 아니함을 걱정하여, 의정부와 육조의 여러 신하를 불러서 이르기를,

"옛 사실을 상고하면, 하늘에서 내리는 재난이 있고, 인간이 저지른 재난이 있다. 사람의 일이 아래에서 움직이면, 하늘의 재변이 위에서 나타나는 것은 정한 이치이다. 도둑을 방지하는 계책과 불을 끄는 방법에 대하여 각각 마음을 다하여 건의하라."

하니, 좌의정 이원(李原) 등이 건의하기를,

"화재를 당한 집이 가옥과 살림을 모조리 태워버렸는데, 그 의복·식량과 목재·기와 등을 모두 돈으로만 사들이기가 매우 어려울 것이니, 생활이 극히 딱합니다. 일반 사람들이 매매하는 것을, 연한을 정하여 잡물(雜物)을 겸용하도록 하게 하고, 경시서(京市署)에 명령을 내리어 물품을 가지고 매매하는 자에 대하여 문제를 삼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하였다. 이조 참판 성엄(成揜) 등은 건의하기를,

"동전을 사용하지 않는 자는 가산을 관청에서 몰수하므로, 살아갈 길이 없어 원한을 품어, 평화로운 분위기를 해치는 이유가 여기에 기인한 듯합니다. 이제부터는 가산이 관청에 몰수되었거나, 자신이 수군에 보충되었거나, 왕명에 의하여 장형을 받은 자를 제외하고, 다른 물품으로 매매했을 때에는 액수를 계산하여 동전으로 환산하여 3배를 추징하게 하소서."

하니, 명하기를,

"뒤에 따라 적당히 고려하여 실시하라."

하였다. 영돈녕 유정현(柳廷顯) 등이 건의하기를,

"1. 한양(漢陽)에 국도를 세운 지 지금 33년인데, 큰 재난이 오늘처럼 심한 적은 없었습니다. 이것은 반드시 무뢰배들이 농업에 힘쓰지 않고 일부러 남의 집에 불을 질러서 도둑질을 하려는 술책입니다. 금화 도감(禁火都監)의 제조(提調)로 하여금 각 부(部)를 나누어 맡아, 그 구역 안에 아무런 직업이 없으면서 의식이 풍족하며, 밤이면 술을 마시고 낮에는 잠을 자는 등, 그 행동이 의심스러운 자가 있으면, 각방(各坊)의 색장(色掌)으로 하여금 잡아 올리게 하여, 그의 본적지와 근본 내력과 생활비의 출처를 차근차근 세밀히 추궁하여, 진범(眞犯)을 잡아 도둑의 무리가 저절로 줄어들도록 할 것.

1. 다른 곳에서 떠들어와 살면서 농업·공업 또는 돈 생길 일을 하지 아니하면서 서울에서 놀고 먹는 무리에 대하여는, 한성부에서 주호(主戶)와 이웃 사람으로 하여금 관가에 고발하게 하여, 그의 내력을 물어가지고 제자리에 돌아가서 일에 복무하게 하며, 숨기고 고발하지 않는 자는 법에 의하여 처벌할 것.

1. 절도로서 세 번 이상 범죄한 자는 자자(刺字)하고, 사(赦)를 받아서 요행으로 면한 자는 죄상을 다시 심문하여 경기도 밖으로 쫓아 보내고, 그가 거주하는 지방 관청에서 복무할 역(役)을 정해 주고, 사찰을 계속하여 마음대로 출입을 허락하지 못하게 하며, 이상과 같은 사람을 은닉한 자는 법에 의하여 논죄할 것.

1. 도성 안에 못을 팔 수 있는 곳에는 파서, 물을 저장하여 둘 것.

1. 물을 저장하는 독은 중국의 예에 의하여 다섯 집마다 1개소씩 만들어 두고, 물을 저장하는 상황을 조사할 것."

이라 하였다. 황희 등은 건의하기를,

"옛 제도를 상고하여, 신에게 빌어서 재난을 방지하게 할 것이며, 그 한 가지로 봄철에 기우제를 지내는 것은 옛부터 제도가 있었으니, 상고하여 실시하도록 하소서."

하니, 명하여 이상의 7개 항목을 담당한 관원으로 하여금 마련하여 실시하게 하였다. 대제학 변계량은 건의하기를,

"법을 세워 제도를 마련하는 것은 백성의 마음을 굳게 결속하여 국가의 주체를 유지하고, 영원히 정치가 잘 되며 오래도록 편안한 효과를 거두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나 새로운 법이 실시되는 데 대하여, 백성이 반드시 원망하며 백성의 마음이 화하지 못하면, 곧 하늘의 기후가 순조롭지 못하여 재난이 생기며 괴변이 생기어 그칠 줄을 모르게 됩니다. 그러므로 법을 실시하는 사람은 너무 급하게 서두르지 말고 오래 계속될 수 있기를 강구해야 합니다. 법이 아무리 지극히 잘 되었을지라도 그것을 실시함에 있어 그방법을 얻지 못하면 또한 실시될 수 없는 것입니다. 정자(程子)는 이르기를, ‘예로부터 정치를 마련하고 일을 실시함에 있어서 안팎으로 사람의 마음이 모두 옳지 못하였다고 하는 것은 결코 성공하는 일이 없다. ’고 하였으니, 정말 옳은 말입니다. 지금 화폐의 법을 마련한 것은 본시 백성들이 이용하기에 편리하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나 법을 실시함에 있어 조항이 지나친 것은 실로 의심할 만한 것이 있습니다. 백성의 필수품으로 식량이 없이는 하루라도 살 수 없는 것입니다. 근래에 흉년이 들어서 식량 때문에 백성들이 허덕이는 것이 과거보다 갑절이나 곤란한데, 이제 곧 백성으로 하여금 반드시 화폐만 사용하여 매매하도록 하고 있으나, 백성은 옛 습관에 젖어서 돈을 사용하는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매매할 때에 자기가 사고 싶은 것을 제대로 사들이지 못하고, 각기 있는 물품을 갖고 와서, 몰래 서로 매매하여 국가의 금령을 범하는 자가 얼마든지 있습니다. 대개 한 집에는 한두 사람, 혹은 서너 사람, 혹은 다섯, 일곱 사람도 되는데, 이제 한 사람이 금령을 위반했기 때문에, 그의 가산을 전부 몰수하여 온 집안 사람이 모두 굶게 되오니, 이것이 그 타당치 못한 것의 한 가지이며, 더구나 70세 이상 되었거나 병이 있는 사람은 당연히 속죄하게 해야 하는데, 이제 벌써 그의 가산을 몰수해 놓고 또 그 속죄금(贖罪金)을 징수한다면, 금령을 위반한 사람으로서 돈 한 푼이라도 얻어서 그 죄를 속(贖)하려 한들 어떻게 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이 또 크게 타당치 못한 것의 한 가지입니다. 바라옵건대 백성들로 하여금 돈이나 또는 일반 물품을 가지고 마음대로 매매하게 하여 그 생활을 영위하게 하고, 다만 속죄금을 받을 때와 관청에서 사들이는 물품은 반드시 동전(銅錢)을 사용하게 하면, 돈을 사용하는 법도 없어지지 아니하고, 백성의 마음도 화하게 되어, 재변이 저절로 없어질 것입니다."

하니, 임금이 이르기를,

"그 내용을 보니 취지는 좋다마는, 법을 세우는 것은 백성에게 미더움을 나타내는 것인데, 어찌 백성이 좋아하거나 싫어한다 하여 다시 변경하겠는가. 화폐의 법이 관청에서만 실시되고 민간에서는 실시되지 않는다면, 백성에게 미더움을 나타내는 것이 되지 못한다. 옛적에 세 발 장대[三丈之木]011) 를 세워 놓고 백성에게 신용을 보인 일도 있었으니, 지금 화폐법의 실시도 그것을 그만둔다면 그만두어버리거니와, 만일 이를 사용한다면 어찌 이렇게 분분히 변경할 수 있겠는가."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0책 31권 19장 A면【국편영인본】 3책 10면
  • 【분류】
    사상-토속신앙(土俗信仰) / 군사-금화(禁火) / 사법-법제(法制) / 사법-치안(治安) / 금융-화폐(貨幣) / 상업(商業) / 공업(工業)

  • [註 011]
    세 발 장대[三丈之木] : 중국 전국 시대의 상앙(商鞅)이 진 효공(秦孝公)에게 법령을 개정할 것을 권하여, 법의 초안을 작성하고 법령을 아직 선포하기 전에, 먼저 세 발 되는 장대를 남문에 세워 놓고, "이것을 북문에 옮겨 놓는 사람이 있으면 10금(金)을 준다."고 하였으나, 백성이 이상히 여겨 아무도 옮기는 사람이 없었는데, 다시 "50금을 준다."고 하였더니, 어떤 사람이 이를 옮겨 놓았으므로, 곧 50금을 주어서 백성에게 신의를 증명하였다.

○上軫念火災未息、盜賊未弭, 召議政府、六曹諸臣謂曰: "稽之於古, 有天災者, 有人災者, 大抵人事感於下, 則天變應於上, 理之常也。 弭盜之術、救火之方, 其各盡心以陳。" 左議政李原等議: "被災之家, 燒盡家舍財産, 其衣食材瓦, 專以錢文, 貿易甚難, 生理可惜。 凡人買賣, 限年兼用雜物。" 命令京市署, 用雜物貿易者, 姑宜勿問。 吏曹參判成揜等議: "不用銅錢者, 家産沒官, 生理無路, 懷怨傷和, 恐由於此。 今後除家産沒官、身充水軍, 依敎決杖。 買賣他物, 計數折以銅錢, 三倍追徵。" 命隨後量宜施行。 領敦寧柳廷顯等議: "一, 建都漢陽, 于今三十三年, (大)〔火〕 災未有如今日之甚。 此必無賴之徒, 不事農業, 故燒人家, 因而爲盜之術也。 令禁火都監提調, 分授各部, 有里內無營産, 而衣食豐饒, 夜飮晝寢爲可疑者, 令各坊色掌捕告, 鄕貫根脚及衣食從來, 徐徐細推, 則眞犯可得, 而賊徒自縮矣。 一, 從他處來接, 不爲農工興利等事, 留京遊食之徒, 漢城府令主戶及隣里人告官, 問其來歷, 還本定役, 隱匿不告者, 依律論罪。 一, 竊盜三犯刺字, 遇赦幸免者, 推考畿外黜送, 令所止官定役考察, 毋令出入。 前項人容隱者, 依律論罪。 一, 都城內擇穿池可當處, 開鑿貯水。 一, 貯水盆甕, 依中國例, 每五家一所造置, 考察貯水。" 黃喜等議: "古典相考, 祈禳救災, 一春節祈雨, 古有典則, 相考施行。" 命已上七條, 令主掌官磨鍊施行。 大提學卞季良議: "立法創制, 所以固結民心, 維持國體, 以收長治久安之效也。 然新法之行, 民必怨(恣)〔咨〕 。 民心不和, 則天氣不順, 出災出異, 無所不至, 故行法者, 不可太急, 期於攸久。 法雖盡善, 行之不得其道, 亦不可行。 程子謂: ‘自古興治立事, 未有中外人情交謂不可, 而能有成者。’ 眞至論也。 今立錢幣之法, 本爲便於民用也。 然行法過條, 實有可疑者焉。 生民所需, 不可一日而無食, 比因年險, 民艱於食, 又倍於前, 今乃使民凡所貿易, 必以錢幣。 雖然民狃舊習, 不喜用錢, 買賣之際, 不償所願, 各將所有, 潛相貿易, 以犯官禁者, 比比有之。 夫一家之人, 或一二或三四, 以至五七。 今以一人犯禁之故, 籍沒其産, 一家之人, 皆至於饑, 此其未便者一。 又況七十以上及疾病者, 當令贖罪, 今旣沒其産, 又徵其贖, 犯禁之人, 雖欲得一錢以贖其罪, 得乎? 此其大不便者一也。 乞令斯民, 將錢幣若雜物, 隨意貿易, 以養其生, 唯收贖及官家所鬻, 必用銅錢, 則錢法不廢, 而民心召和, 災變自消矣。" 上曰: "觀其辭旨, 意則美矣。 然立法, 所以示信於民也。 豈可以民之好惡, 而更改乎? 錢幣之法, 獨行於官府, 而不行於民間, 則非所以示信於民也。 古者立三丈之木, 以取信者有之。 今錢法之行, 可已則已, 如其用之, 何若是其紛更乎?"


  • 【태백산사고본】 10책 31권 19장 A면【국편영인본】 3책 10면
  • 【분류】
    사상-토속신앙(土俗信仰) / 군사-금화(禁火) / 사법-법제(法制) / 사법-치안(治安) / 금융-화폐(貨幣) / 상업(商業) / 공업(工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