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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실록 31권, 세종 8년 1월 18일 계축 1번째기사 1426년 명 선덕(宣德) 1년

참찬 탁신의 졸기

참찬 탁신(卓愼)이 졸하였다. 신(愼)의 자는 자기(子幾)요, 광주(光州) 출신이며, 고려의 간의 대부(諫議大夫)인 탁광무(卓光茂)의 아들이다. 나면서부터 영특하였고, 12세에 향교에 입학하였는데, 동무들이 장난을 치며 희롱하였으나, 은 꿇어앉아서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길을 걸어다닐 때에는 반드시 공수(拱手)하고 좌편으로 다녔다. 홍무(洪武) 기사년에 과거에 합격하였으나 부모가 늙었으므로 집에 돌아가서 부모를 봉양하였다. 임술년 10월에 아버지가 병이 들었는데, 그는 옷을 벗지 않고 옆에 모시고 있었다. 그리하여 광무(光茂)는,

"우리 집의 증삼(曾參)이라."

고 말하였다. 죽음에 이르러 상례를 모두 《문공 가례》대로 하였다. 공정 대왕(恭靖大王)이 왕위에 오르자 숨어 있는 인재를 찾았는데, 조정에서 효행으로 서로 추천하여 뽑아서 우습유(右拾遺)에 임명하였으나, 두어 달 후에 어머니를 모시고 고향에 돌아가기 위하여 벼슬을 사직하였는데, 1년이 넘어서 어머니의 상사를 당하였다. 상기를 마치고 용담 현령(龍潭縣令)에 임명되었다가, 들어와서 좌정언(左正言)이 되었고, 여러 번 옮기어 사헌부 장령이 되었고, 바로 집의(執義)에 승진되었다가, 말한 것이 문제가 되어 장형(杖刑)을 받고 나주(羅州)에 유배되었다. 얼마 후에 전농 정(典農正), 성균관 사성(成均館司成)에 임명되었다가 승정원 동부대언(同副代言)에 발탁되었다. 태종은 일찍 공정 대왕을 맞아들이어 곡연(曲宴)을 베풀었을 때에, 태종이 시를 지었더니 이 회답하여 올렸다. 태종은 손수 의 모자에 꽃을 꽂아 주며 이르기를,

"이 사람처럼 충성하고 정직한 사람은 없다."

하였다. 병신년에 권완(權緩)유사눌(柳思訥)이 죄를 지었을 때에, 은 겸하여 임금의 약(藥)을 맡아보고 있었기 때문에 또한 이 사건에 연좌되었다. 태종이 그 내용을 알지 못하고 있었다 하여 특별히 지신사에 임명하였으나, 법을 맡은 관원들이 그가 〈미리〉 알아 내고 살피지 못하였음을 탄핵하여, 마침내 이 때문에 면직되었다. 태종이 하루는 대언 등에게 이르기를,

"신(愼)이 만일 각 지방의 수재와 한재, 풍년과 흉년, 백성들의 잘 살고 못 사는 실정을 들은 바가 있거든 모두 상세히 보고하게 하라. 내가 민간의 실정을 듣는 일이 드물다."

하고, 불러서 경승부 윤(敬承府尹)에 임명하였다가 호조 참판으로 옮기고, 예조 참판과 예문관 제학을 거쳐서 신축년에 특진하여 의정부 참찬에 임명하였는데, 이때에 이르러 졸하니, 나이가 60세이다. 사림에서 모두 그를 애석히 여겼다. 부고가 들리니 3일 동안 조회를 정지하고, 시호를 문정(文貞)이라고 내렸다. 문(文)은 학문에 부지런하며 묻기를 좋아한다 함이요, 정(貞)은 청백하게 절조를 지킨다는 뜻이다. 은 의지가 강하고 바르며, 경학(經學)에 밝고, 음률(音律)과 무예(武藝)까지도 통하지 못하는 것이 없었다. 사람을 가르침에 있어서 반드시 효제충신(孝悌忠信)을 위주로 하였다. 그는 이르기를,

"《소학(小學)》은 곧 학자로서 먼저 공부해야 할 것이라."

하여, 배우러 오는 사람에게 반드시 이 책을 다 읽힌 다음에 다른 책을 가르쳤다. 평생에 살림을 모을 줄을 몰라 집안에 아무 것도 없었다.


  • 【태백산사고본】 10책 31권 5장 B면【국편영인본】 3책 3면
  • 【분류】
    인물(人物)

○癸丑/參贊卓愼卒。 子幾, 光州人, 高麗左諫議大夫光茂之子。 生而英秀, 年十二就庠, 儕輩狂戲, 危坐不睨, 行路必拱手由左。 洪武己巳, 登科, 以親老歸奉甘旨。 壬戌十月, 父疾, 不解帶侍側, 光茂稱爲吾家曾參, 及歿, 喪禮一遵《文公家禮》恭靖大王嗣位, 求遺逸, 朝廷以孝行交薦, 擢拜右拾遺, 數月, 以將母還辭職。 踰年遭母憂, 制盡, 拜龍潭縣令, 入爲左正言, 累遷司憲掌令, 尋陞執義, 以言事, 杖流羅州, 未幾, 拜典農正、成均司成, 擢承政院同副代言。 太宗嘗奉迎恭靖大王曲宴, 太宗製詩, 和進, 太宗手揷花於帽曰: "忠直莫斯人若也。" 丙申, 權緩柳思訥之得罪也, 以兼掌御藥, 亦逮連。 太宗不知情, 特拜知申事, 法司劾以失覺察, 竟坐免。 太宗一日, 謂代言等曰: "若聞四方水旱豐歉、民生休戚, 則悉以進啓, 今罕得聞民間事。" 召拜敬承府尹, 遷吏曹參判, 歷禮曹參判、藝文館提學。 辛丑, 超拜議政府參贊, 至是卒, 享年六十, 士林咸惜之。 訃聞, 輟朝三日。 諡文貞, 學勤好問文, 淸白守節貞。 剛正明經學, 至於音律武藝, 無所不通。 凡敎人必以忠信孝悌, 嘗謂《小學》乃學者先務, 有受業者, 必使讀了, 然後授他書。 平生不殖貨利, 門戶淡如也。 無子。


  • 【태백산사고본】 10책 31권 5장 B면【국편영인본】 3책 3면
  • 【분류】
    인물(人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