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릉도에 들어갈 때 표류했던 수군 평해인 장을부 등이 일본국으로부터 돌아오다
무릉도(茂陵島)에 들어갈 때 바람에 표류하였던 수군(水軍)인 평해(平海) 사람 장을부(張乙夫) 등이 일본국 으로부터 돌아와서 말하기를,
"처음에 수군 46인이 한 배에 타고 안무사(安撫使) 김인우(金麟雨)를 수행하여 무릉도를 향해 갔다가, 갑자기 태풍이 일어나 배가 부서지면서 같은 배에 탔던 36인은 다 익사(溺死)하고, 우리들 10인은 작은 배에 옮겨 타서 표류하여 일본국 석견주(石見州)의 장빈(長濱)에 이르렀습니다. 언덕에 올라갔으나, 주리고 피로하여 걸을 수가 없으므로, 기어서 5리 남짓한 곳에 이르렀을 때 샘을 만나 물을 마시고 피곤하여 강가에 쓰러졌더니, 한 왜인(倭人)이 고기 잡으러 왔다가 보고 한 절[寺]로 데리고 가서 떡과 차[茶]와 죽(粥)과 장(醬)을 주어 먹게 한 뒤에 순도로(順都老)에게 데리고 갔습니다. 순도로가 우리들의 옷을 보고 말하기를, ‘조선 사람이로구나. ’하고 두세 번 한숨지어 한탄하고, 양식과 웃옷과 바지를 주었습니다. 30일 동안을 머물렀는데, 날마다 하루 세 번씩 음식 대접을 하였으며, 떠날 때에는 큰 잔치를 베풀고 잔을 들어 친히 권하면서 말하기를, ‘너희들을 후하게 위로하는 것은 곧 조선의 전하(殿下)를 위하기 때문이다. ’고 하고, 여행 중의 양식 1백 석을 주고, 사람 20인을 보내어 호송(護送)하였습니다. 대마도(對馬島)에 이르러서 또한 1개월을 머물렀는데, 도만호(都萬戶) 좌위문대랑(左衛門大郞)이 세 번 연회를 열어 위로하면서 말하기를, ‘너희들을 위하는 것이 아니라, 전하를 존경하여 이렇게 할 뿐이다. ’고 하였고, 또한 사람을 보내어 호송하여 주었습니다."
하였다. 돌아올 때는 석견주(石見州) 장빈(長濱)의 인번수(因幡守)가 예조(禮曹)에 글을 보내어 말하기를,
"금년 9월에 귀국인 10명이 풍랑에 표류하여 여기에 이르렀으므로, 즉시 배를 수리하게 하고 호송하여 대마도 도만호(都萬戶)에게 돌려보내어 그 곳에서 다시 호송하게 합니다. 겸하여 환도(環刀) 2자루, 단목(丹木) 1백근, 주홍색(朱紅色) 네모반[四面盤] 20개, 호초(胡椒) 10근을 바칩니다."
하였다. 좌위문대랑도 예조에 글을 보내어 말하기를,
"지금 석견주(石見州) 장빈(長濱)의 인번수(因幡守)가 소인(小人)이 귀국과 교통(交通)하고 있는 것을 알고 풍랑에 표류한 귀국인 10명을 송환하여 소인으로 하여금 다시 귀국에 호송하게 하였으므로, 즉시 배를 수리하게 하여 호송합니다. 자세한 사연은 선주(船主)에게 전하였습니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0책 30권 28장 B면【국편영인본】 2책 708면
- 【분류】외교-왜(倭) / 무역(貿易) / 과학-지학(地學)
○茂陵島入歸時, 飄風船軍平海人張乙夫等回自日本國言: "初, 船軍四十六人乘坐一船, 隨按撫使金麟雨向本島, 忽颶作船敗, 同船三十六人皆溺死。 我等十人移坐小舠, 飄至日本國 石見(洲)〔州〕 長濱登岸, 飢困不得行, 匍匐至五里餘, 得泉飮水, 因倒江邊, 有一倭因漁來見, 率歸一僧寺, 與餠茶粥醬以食之, 領赴順都老, 順都老見我等衣曰: ‘朝鮮人也。’ 嗟嘆再三, 給口糧、衣袴, 留三十日, 日三供頓。 臨送設大宴, 執盞親勸曰: ‘厚慰爾等, 乃爲朝鮮殿下耳。’ 給行糧百石, 差人二十護送, 至對馬島, 亦留一月。 都萬戶左衛門大郞三設宴勞之曰: ‘非爲爾等, 敬殿下如此耳。’ 又差人護送回來。"
石見(洲)〔州〕 長濱 因幡守致書禮曹曰:
今年九月, 貴國人十名, 飄風到此, 卽時治船護送, 回付對馬島都萬戶轉送。 兼進環刀二柄、丹木一百斤、朱紅四面、盤二十、胡椒十斤。
左衛門大郞致書禮曹曰:
今石見(洲)〔州〕 長濱 (因蟠)〔因幡〕 守知小人交通貴國, 送還飄風貴國人十名, 令小人轉送, 卽令修船護送。 細在船主。
- 【태백산사고본】 10책 30권 28장 B면【국편영인본】 2책 708면
- 【분류】외교-왜(倭) / 무역(貿易) / 과학-지학(地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