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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실록 29권, 세종 7년 9월 27일 계해 1번째기사 1425년 명 홍희(洪熙) 1년

사헌부에서 정원 이상의 구사를 거느린 자들을 탄핵하니 당하관들만 처벌하게 하다

사헌부에서 계하기를,

"병조 판서 조말생·참판 이각·참의 유연지(柳衍之)·형조 판서 신상(申商)·참판 김자지·총제 이천(李蕆)·원민생·전흥(田興)·황상(黃象)·지신사 곽존중·우대언 김맹성(金孟誠)·겸 지형조사 박고(朴翺)·판군기감사 최해산(崔海山)·중군 경력 신정리(申丁理)·부정 유급(柳汲)·공조 정랑 안구(安玖)·병조 정랑 정분·차유(車有)·좌랑 송은(宋殷)·이승문(李承門)·김유진(金由畛)이 정해 준 수효 외의 구사(丘史)를 많이 거느려서, 이미 신하로서 법을 받드는 뜻이 없고 또 나타난 사실을 덮어 숨기기만 하니, 율대로 죄를 매기기를 청합니다."

하니, 당상관은 논죄하지 말고 나머지는 율을 적용하여 아뢰도록 명하였다. 임금이 비록 당상관은 논죄하지 말라고 하였으나, 그들의 범람한 짓을 미워하며 대언들을 꾸짖으니 모두 부끄러워하고 두려워하였다. 이보다 앞서 임금이 각사(各司)에 노비(奴婢)를 뽑아 올리는 폐단을 없애고자 하여 참람하게 구사를 거느리는 잘못을 논란하고, 감독관에게 분부하여 영을 범한 자를 엄하게 다스리려고 하였다. 그러나, 좌·우 의정과 병조 판서가 흑 40여 명까지 거느려서, 항상 따르게 하는 외에 토목의 일을 시키고, 혹은 재산의 영리를 위하여 못할 짓이 없으므로, 이번에 헌사에서 영돈녕 유정현과 우의정 유관까지 아울러 탄핵하였던 것인데, 임금이 듣고 곧 묻지 말도록 명하였다. 관(觀)은 본디 성품이 깨끗하고 검소하여 벌이를 구하는 일이 없었고, 구사는 3번으로 나누어 교대로 거느리고 다녔다. 정현은 혹 여기저기 내보내어 장리(長利) 받기를 독촉하게 하고, 혹 돌을 져 나르게 하여 자기 종들보다 더 심하게 부렸다.


  • 【태백산사고본】 10책 29권 30장 A면【국편영인본】 2책 693면
  • 【분류】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 사법-탄핵(彈劾) / 신분-천인(賤人) / 인물(人物)

○癸亥/司憲府啓: "兵曹判書趙末生、參判李恪、參議柳衍之、刑曹判書申商、參判金自知、摠制李蕆元閔生田興黃象、知申事郭存中、右代言金孟誠、兼知刑曹事朴翺、判軍器監事崔海山、中軍經歷申丁理、副正柳汲、工曹正郞安玖、兵曹正郞鄭苯車有、佐郞宋殷李承門金由畛多率數外丘史, 旣無人臣奉法之意, 又情現隱諱, 乞依律科罪。"

命堂上官勿論, 其餘照律以聞。 上雖勿論堂上官, 惡其汎濫詰責, 代言等皆慙懼。 先是, 上欲除各司奴婢選上之弊, 論濫率丘史之非, 下敎于攸司, 深治其犯令者。 然左右議政、兵曹判書或率至四十餘名, 根隨之外, 或役土木, 或營財産, 無所不至。 至是憲司幷劾領敦寧柳廷顯、右議政柳觀。 上聞之, 卽命勿問。 性本淸儉, 無所營救, 其丘史, 分爲三番, 相遞率行。 廷顯則或分督長利, 或使之負石, 役之甚於奴僕。


  • 【태백산사고본】 10책 29권 30장 A면【국편영인본】 2책 693면
  • 【분류】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 사법-탄핵(彈劾) / 신분-천인(賤人) / 인물(人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