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군 사당을 별도로 세우고 신위를 남향하여 제사하게 하다
사온서 주부(司醞署注簿) 정척(鄭陟)이 글을 올리기를,
"지난 신축년 10월에 〈중국〉 조정에 보낼 말을 점고(點考)하라는 명을 받들어 의주에 가서 말 점고하는 일을 마치고 다음해 2월에 돌아오다가 평양에 들러서 기자 사당(箕子祠堂)을 배알하였습니다. 그런데 기자 신위는 북쪽에서 남쪽을 향해 있고, 단군(檀君) 신위는 동쪽에서 서쪽을 향해 있었습니다. 신이 평양부의 교수관(敎授官) 이간(李簡)에게 물으니, 그가 말하기를, ‘예전에 중국 사신이 평양에 와서 기자의 사당과 후손의 있고 없음을 묻고 기자의 묘소(墓所)에 가서 배알하였는데, 그 뒤에 나라에서 기자 사당을 문묘(文廟) 동편에 세우라고 명하였고, 또 단군으로 배향하라는 영이 있었으므로, 지금까지 이와 같이 하여 제향한다. ’는 것이었습니다. 신의 어리석은 소견으로 단군은 요(堯) 임금과 같은 시대에 나라를 세워 스스로 국호를 조선이라고 하신 분이고, 기자는 주(周) 나라 무왕(武王)의 명을 받아 조선에 봉(封)하게 된 분이니, 역사의 햇수를 따지면 요임금에서 무왕까지가 무려 1천 2백 30여 년입니다. 그러니 기자의 신위를 북쪽에 모시고, 단군의 신위를 동쪽에 배향하게 한 것도, 실로 나라를 세워 후세에 전한 일의 선후에 어긋남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신이 감히 어리석은 생각을 가지고 위에 아뢰고자 하였으나, 마침 아비의 상을 만나 미처 말씀을 올리지 못하였삽더니, 이제 신을 사온서 주부로 제수하시고 이어 의례 상정 별감(儀禮詳定別監)으로 임명하시었기에, 신이 이에 공경히 삼가 본조의 여러 제사 의식을 상고하오니, 향단군 진설도(享檀君陳設圖)에 ‘신위는 방의 중앙에서 남쪽을 향한다. ’고 하였습니다. 신이 전일에 뵈온 서향 좌차(坐次)는 이 도식(圖式)과 합치되지 않사오니, 만약 단군과 기자가 같은 남향으로서, 단군이 위가 되고, 기자가 다음이 되게 한다면, 나라를 세운 선후가 어긋나지 않을 듯하오나, 기자는 무왕을 위해서 홍범(洪範)을 진술하고 조선에 와서 여덟 조목을 만들어서 정치와 교화가 성행하고 풍속이 아름다워져서 조선이라는 명칭이 천하 후세에 드러나게 되었고, 그러기 때문에 우리 태조 강헌 대왕(康獻大王)께서 명나라 태조 고황제에게 국호를 정하는 일을 청했을 때, 태조 고황제는 조선이라는 명칭을 이어받기를 명하였던 것이고, 그 뒤로 중국 사신으로서 평양을 지나는 자가 혹 사당에 가서 배알하게도 된 것이니, 그런즉 명칭은 기자 사당으로 되어 있는데, 단군 신위를 모시는 것은 진실로 미편한 일입니다. 신이 또 들으니, 기자 사당에는 제전(祭田)이 있고 단군을 위해서는 없기 때문에, 기자에게는 매달 초하루와 보름마다 제물을 올리되, 단군에게는 봄 가을에만 제사한다 하옵니다. 현재 단군 신위를 기자 사당에 배향하게 되어서 한 방에 함께 계신데 홀로 단군에게는 초하루·보름 제물을 올리지 아니한다는 것은 또한 미안하지 않을까 합니다. 신의 생각에는 단군의 사당을 별도로 세우고, 신위를 남향하도록 하여 제사를 받들면 거의 제사 의식에 합당할까 합니다."
하니, 이 글을 예조에 내리어 그대로 이행하도록 명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0책 29권 29장 A면【국편영인본】 2책 693면
- 【분류】정론-정론(政論) / 농업-전제(田制) / 역사(歷史)
○司醞注簿鄭陟上書曰:
去辛丑年十月, 恭承朝廷易換點馬之命, 到義州點馬事畢, 翼年二月, 回至平壤, 謁箕子祠堂。 箕子之位在北向南, 檀君之位在東向西。 臣問於其府敎授官李簡, 曰: "昔朝廷使臣到此府, 問箕子祠堂與後嗣之有無, 往謁其墓。 其後國家命建祠堂於文廟之東, 又有檀君配享之令, 故迄今如此而享之也。" 臣愚因竊, 謂檀君與唐堯竝立, 而自號朝鮮者也, 箕子受武王之命, 而封朝鮮者也。 以帝王歷年之數, 自帝堯至武王凡千二百三十餘年矣。 然則箕子之坐北, 檀君之配東, 實有違於立國傳世之先後矣。 臣敢將愚抱, 欲達天聰, 適遭父喪, 未克上聞。 今除臣爲司醞注簿, 仍差儀禮詳定別監。
臣敬此謹按本朝諸祀儀式, 享檀君陳設圖云: "神位堂中南向。" 臣曩時所見西向之坐, 不合於此圖。 若使檀君、箕子竝坐南向, 而檀君居上, 箕子次之, 則立國之先後, 似不紊矣。 然箕子爲武王陳《洪範》, 在朝鮮作八條, 政敎盛行, 風俗淳美, 朝鮮之名聞於天下後世, 故當我太祖康獻大王之請國號也。 太祖高皇帝命襲朝鮮之號。 於是朝廷使臣凡過平壤者, 或往謁焉, 則名之以箕子祠堂, 而檀君作主, 誠爲未便。
臣又聞箕子有祭田, 而檀君無之, 故箕子每奠於朔望, 而檀君只祭於春秋。 今檀君旣配於箕子, 則幷坐一堂, 而獨不奠於朔望, 似亦未安。 臣愚以謂, 別建檀君祠堂, 南向奉祀, 則庶合祀儀。
命下禮曹, 如上書施行。
- 【태백산사고본】 10책 29권 29장 A면【국편영인본】 2책 693면
- 【분류】정론-정론(政論) / 농업-전제(田制) / 역사(歷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