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상세검색 문자입력기
세종실록29권, 세종 7년 윤7월 1일 무술 1번째기사 1425년 명 홍희(洪熙) 1년

선위사 상호군 김시우가 아목하에서 돌아와 보고한 내용

선위사 상호군(宣慰使上護軍) 김시우(金時遇)아목하(阿木河)에서 돌아와 복명(復命)하기를,

"신이 처음 김성(金聲)의 군영(軍營)에 도착하니, 이 군문에 나와서 맞아들였습니다. 신이 가지고 간 물품을 주고 선온(宣醞)을 마시라고 하니, 이 말하기를, ‘내가 선위사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 사람을 시켜 동맹가첩목아(童猛哥帖木兒)양목답올(楊木答兀)을 청했는데, 그들이 오기를 기다려서 함께 마시겠소.’ 하는 것이었습니다. 신이 말하기를, ‘대인(大人)을 위해서 갖고 온 것인데 어찌 저들을 기다릴 것이오.’ 하니, 이 말하기를, ‘내가 초안(招安)091) 하는 목적으로 후한 예(禮)로써 대우하는 중인데, 음식이 왔는데 부르지 아니하면 저들이 반드시 나를 신(信)이 없다 할 것이오.’ 하였습니다. 조금 뒤에 맹가첩목아가 와서 드디어 취하도록 마시고, 이 사례하기를, ‘연전에 전하께서 특별한 은덕을 내리시고 지금에 또 후한 은혜를 입게 하시니 깊이 감사하오. 다만 전하께서 천천세(千千歲)를 누리시기를 축원하오.’ 하였습니다. 이어서 광초(廣綃) 1필을 주고, 종사관(從事官)·차사원(差事員)에게도 1필씩 주었으나, 신 등은 사양하고 받지 않았습니다. 돌아올 때에 맹가첩목아가 10리나 되는 곳에서 전별연(錢別宴)을 베풀었으며, 맹가첩목아가 말하기를, ‘소인(小人)이 태조(太祖)를 따를 때에 후한 은혜를 특히 입었는데 중간에는 실례한 것이 많았습니다. 또 전하의 깊은 은덕을 입어서 소인만의 목숨을 살렸을 뿐 아니라, 관하(管下)가 오직 혜택을 입어 지금까지 목숨을 이어 옵니다.’ 하면서 두 번 세 번 머리를 조아리며 말마디마다 정이 넘쳤습니다. 처음 전송차로 나올 때에 맹가첩목아가 말하기를, ‘김 지휘대명국(大明國)의 사신이고, 선위사는 전하의 사신인데, 나는 토민(土民)이니, 어찌 감히 내가 앞에 서겠소.’ 하면서, 신에게 앞서기를 사양하고 뒤에 따라 왔습니다. 신이 양목답올의 귀순 여부를 물으니, 이 말하기를, ‘지금은 미정(未定)이라. ’고 하였습니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0책 29권 10장 B면【국편영인본】 2책 683면
  • 【분류】
    외교-명(明) / 외교-야(野)

  • [註 091]
    초안(招安) : 도둑 따위를 불러 복종시켜 난리를 꾸미지 못하게 함.

○戊戌朔/宣慰使上護軍金時遇回自阿木河復命啓曰: "臣初至金聲營, 出軍門迎入。 臣授齎去贈物, 欲饋宣醞, 曰: ‘吾聞宣慰使先聲, 使人請童猛哥帖木兒楊木答兀, 待其來共飮。’ 臣曰: ‘爲大人來, 何必待彼?’ 曰: ‘吾爲招安, 待以厚禮。 至於飮食不召, 則彼必以予爲無信。’ 俄而猛哥帖木兒來, 遂飮至醉。 謝曰: ‘年前殿下特加恩恤, 今又蒙厚恩, 深感深感, 但願殿下千千歲耳。’ 仍贈給廣綃一匹, 從事官、差使員各一匹, 臣等辭不受。 及還, 猛哥帖木兒於十里程設餞。 猛哥帖木兒言: ‘小人從太祖時, 特蒙厚恩, 中間事多失禮, 又蒙殿下深恩, 非獨小人活命, 乃至管下專蒙恩澤, 迨今連命。’ 再三扣頭, 言辭繾綣。 初出餞時, 猛哥帖木兒言: ‘金指揮大明使臣, 宣慰使乃殿下使臣也。 吾旣土民, 豈敢先行?’ 讓臣先隨後而行。 臣問楊木答兀歸順與否, 曰: ‘當時未定。’"


  • 【태백산사고본】 10책 29권 10장 B면【국편영인본】 2책 683면
  • 【분류】
    외교-명(明) / 외교-야(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