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천 부원군 이종무의 졸기
장천 부원군(長川府院君) 이종무(李從茂)가 졸하였다. 종무는 전라도 장수현 사람으로 젊어서부터 활을 잘쏘고 말을 잘 달렸다. 신유년에 아버지를 따라 강원도에서 바다의 도적을 토벌하여 공이 있으므로, 돌아와 정용 호군(精勇護軍)에 임명되고, 정축년에 옹진 만호(甕津萬戶)가 되었는데, 마침 왜구(倭寇)가 갑자기 들어와서 성을 포위하므로, 종무가 막아 싸웠으며, 첨절제사(僉節制使)로 승진되었다가 들어와서 상장군(上將軍)이 되었다. 경진년에 익대 좌명 공신(翊戴佐命功臣)의 호를 받고 통원군(通原君)에 책봉되었고, 의주(義州) 등지의 병마 절제사로 승진되었다. 영락(永樂) 병술년에 장천군(長川君)을 봉하고 우군 총제를 겸하였으며, 신묘년에 하정사(賀正使)로 명나라에 갔었고, 정유년에 의정부 참찬(議政府參贊)으로 판우군 도총제 부사가 되었고, 기해년에 대마도를 정벌할 때에 종무(從茂)로 삼군 도체찰사(三軍都體察使)를 삼아 주사(舟師)를 거느리고 가서 토죄(討罪)하고 돌아오니, 의정부 찬성사를 제수하였다. 얼마 후에 상원(祥原)으로 좌천되었다가, 경자년에 불리어 돌아와서 장천군(長川君)이 되었고, 이듬해에 부원군으로 승진되었고, 계묘년 가을에 사은사(謝恩使)로 북경에 갔다가 돌아와서 과천으로 좌천되고, 을사년에 다시 장천 부원군이 되었다가 이 때에 이르러 죽으니 향년 66세이다. 부고가 올라가니 내관을 시켜 조상하고, 또 부의를 하사하고 조회를 3일간 정지하였다. 시호를 양후(襄厚)라 하였으니, 갑주(甲胄)로 공로가 있음이 양(襄)이요, 생각함이 어둡지 아니함이 후(厚)이다. 성질이 순박하고 진실하였으며, 아들은 이승평(李昇平)·이덕평(李德平)·이사평(李士平) 셋이 있다.
- 【태백산사고본】 9책 28권 23장 A면【국편영인본】 2책 673면
- 【분류】인물(人物)
○長川府院君 李從茂卒。 從茂, 全羅道 長水縣人。 自少善射御, 辛酉, 隨父擊海寇於江原道有功, 還拜精勇護軍。 丁丑, 爲瓮津萬戶, 倭寇突入圍城, 從茂拒戰, 陞僉節制使, 入爲上將軍。 庚辰, 賜翊戴佐命功臣之號, 陞通原君, 義州等處兵馬節制使。 永樂丙戌, 封長川君, 兼右軍摠制。 辛卯, 以賀正使入朝, 丁酉, 拜議政府參贊、判右軍都摠制府事。 己亥, 征對馬島, 以從茂爲三軍都體察使, 領舟師討罪而還, 授議政府贊成事, 尋貶祥原。 庚子, 召還, 爲長川君, 踰年拜府院君。 癸卯秋, 以謝恩使赴京, 還貶于果川。 乙巳, 復爲長川府院君, 至是卒, 享年六十六。 訃聞, 命內臣致弔, 仍賜賻物, 輟朝三日。 諡襄厚, 甲冑有勞襄, 思慮不爽厚。 性朴實。 子昇平、德平、士平。
- 【태백산사고본】 9책 28권 23장 A면【국편영인본】 2책 673면
- 【분류】인물(人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