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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실록 28권, 세종 7년 5월 11일 경진 3번째기사 1425년 명 홍희(洪熙) 1년

사신 범령을 보내는 시권서와 여러 사람이 지은 시의 내용

일본국 범령을 보내는 시권서(詩卷序)에,

"일본은 부상(扶桑) 지역에 나라를 세우고, 정치는 간단하고 백성은 순백한지라, 그 풍속이 오로지 불교를 숭상하여, 도를 구하는 사람들이 매양 사명(使命)을 받들고, 인하여 열국(列國)을 유람하는 자가 앞뒤를 이어 끊어지지 아니하였으니, 당나라 송나라 이래로 조연(奝然)적조(寂照)·영독(榮督)의 무리가 그들이었다. 우리 전하께서 즉위하시던 당초에 예 상인(倪上人)우문계(祐文溪)의 일행이 서로 잇따라 들어오니, 이들이 또한 모두 운치 있는 중이었다. 이제 영 상인(齡上人)이 역시 법을 구하려고 임인년부터 을사년에 이르기까지 4년 동안에 사명을 띠고 우리 나라에 온 것이 세 번째라, 전하께서 그 의기를 아름답게 보시고 유사에 명하시어, 교외에서 맞이하여 위로하고 사관(使館)에서 등을 높여 대접하게 하시었다. 상인(上人)은 나이 젊고 학문이 깊으며, 형모(形貌)는 파리하나 정신은 영발하여 명랑하고 청수하니, 바라보면 산골에서 나온 얼음을 옥병에 담아 놓은 것 같았다. 하루는 그의 송천유처(松泉幽處)라는 편액(扁額)을 진신선생(縉紳先生)들에게 청하기를, ‘지난해 임인년에 특히 전자(篆字)로 써서 하사하심을 받아, 내가 진실로 진중하게 간직하거니와, 원컨대 한 말[一言]을 주시와 끝내 은혜가 되게 하소서.’ 하니, 이에 조정 안의 문사들이 모두 시(詩)를 짓고, 또 나를 시켜 서문(序文)을 쓰게 하니, 나는 생각하건대, 사람마다 좋아하는 것이 있으니 그 유(類)에 따라 다르다. 도연명(陶淵明)이 국화를 사랑함은 그 은일(隱逸)인 까닭이요, 내야(奈耶)가 버들을 사랑함은 다섯 가지 이익이 있는 까닭이요, 그 밖에 왕휘지(王徽之)의 대와 진나라 원공(遠公)의 연꽃은 모두 좋아하는 바가 있어서 그런 것이다. 이제 상인이 송천(松泉)으로 편액을 하였으니 과연 무엇을 취하였음일까. 만약 우리 유교의 말로 이를진댄, 소나무에는 날씨가 차도 뒤에 이운다는 성인의 말씀이 있고, 샘은 낮과 밤을 쉬지 않는다는 탄식이 있었으니, 알 수는 없으나 상인의 취한 바가 역시 이와 같은 뜻이었던가. 그렇지 않으면 불교는 청정한 도이니, 역시 유가 같음에 느낌이 있어 사랑함이었는가. 생각하건대, 천암만학(千巖萬壑)에 한 간의 절[蘭若]로 솔바람은 얼굴을 씻어 주고, 샘물은 마음을 깨끗하게 하여 뜨거운 번뇌를 선뜻 식혀주니, 한조각 청량(淸涼)한 경개를 말로는 이루 형용할 수 없도다. 저 솔의 푸르고 푸른 곧은 줄기가 눈을 이기고 서리를 업신여기며, 사시(四時)를 통하고 천년을 겪어도 가지를 갈지 않고 잎을 바꾸지 아니함을 볼진댄, 상인의 견고한 힘과 금강(金剛)같이 깨어지지 않는 절개가 있는 듯하고, 좔좔 흐르는 활수(活水)는 물구덩이 돌뿌리에 쏟아 부어 한 줄기가 천리를 갈 때, 물체에 막히지 않고 자취에 걸리지 않음을 보면, 이는 곧 상인의 진리의 근원을 활짝 열고 호연(浩然)하게 이성(理性)의 바다로 들어가는 묘리가 있는 듯하니, 상인의 취한 점이 여기에 있는 것인가도 싶도다. 내가 보건대, 상인이 사명을 받들고 우리 조정에 와서 언사[辭命]에 틀림이 없고 예절[聘享]에 법칙이 있어, 행동과 절차가 다 법도에 맞으니, 참으로 이름[名]은 묵(墨)이면서 행실은 유(儒)라고 할지로다.079) 우리 나라의 예약과 문물의 융성한 것과 이웃을 사귀고 먼 데를 친하게 하는 도리를 가지고 자기 나라에 전달하여, 두 나라 사이가 화목하고, 백성을 편히 쉬게 하여, 천만 세대에 이르도록 변함이 없게 할 것에 의심 없으니, 이에 이를 적노라. 홍희(洪熙) 원년 5월 모일 집현전 수찬(集賢殿修撰) 영가(永嘉) 권채(權採)는 쓰노라."

하였다. 또 시를 지은 사람이 수십 인인데, 그 중에 형재(亨齋) 이직(李稷)의 시에는,

"선사는 세상을 피하여, 서로 찾는 이가 끊어졌는데, 솔은 무성하고 샘은 달며, 땅이 더욱 깊숙하도다. 재(齋)를 마치니 조용히 샘물을 끓이고, 강경을 끝내고 쇄락하게 맑은 그늘을 바라보누나. 진리는 원래 증감(增減)이 없나니, 뚫어 앎이 어찌 고금(古今)이라 다르리오. 오문(五門)을 더욱 단련하여 높은 데 두면, 밝고 밝은 부처님의 마음으로 전함이 있으리."

하였고, 부용정(芙蓉亭) 권홍(權弘)의 시는,

"가장 좋을사 영 상인이 깊은 골에 집을 잡았도다. 푸른 은솔길 옆에 그늘을 던지고, 맑은 샘은 바위 모퉁이에서 흐른다. 벽을 향하여 무상(無常)을 깨닫고 시를 구하니 만축(萬軸)에 이르도다. 치졸한 시를 억지로 써서 알아보는 눈만 괴롭게 하네."

하였고, 교은(郊隱) 정이오(鄭以吾)의 시는,

"대사가 본래 고요함을 사랑하여서 다시 이 좋은 지경을 점령했구나. 바위 위에 빽빽한 솔은 서로 포개어 있고, 돌 틈의 샘물은 달고도 차다. 검푸른 빛은 추위를 겪어도 씩씩하고, 쉬임 없이 좔좔 흐르는 것은 사람의 마음을 깨우치네. 세상 사람들은 산중의 이 경치를 모르는 것을 응당 불쌍히 여기리라. 옥을 부수는 소리 공중에 나르는 듯 맑은 그림자 달빛에 흩어진다. 해마다 바다 건너 놀러오니 건너가는데 손가락 튀기는 사이로세. 하늘 가에 외로운 배 돌아오기를 바라노라. 원숭이와 학도 모두 고개를 늘이누나."

하였다.

임금이 승문원사(承文院事) 권맹손(權孟孫)에게 명하여 시권(詩卷)을 가져다 주게 하고, 또 한강에서 전송하게 하니, 이는 맹손중태범령의 원접 선위사(遠接宣慰使)이었던 까닭이었다. 범령이 시를 받고 기뻐 감사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9책 28권 14장 B면【국편영인본】 2책 668면
  • 【분류】
    외교-왜(倭) / 어문학-문학(文學)

  • [註 079]
    참으로 이름[名]은 묵(墨)이면서 행실은 유(儒)라고 할지로다. : 이름은 묵적(墨翟)의 무리라 하지마는, 행실(行實)은 유교인(儒敎人)이라는 옛말인데, 범령(梵齡)이 불교의 중이지마는, 그의 행의(行儀)는 유교의 선비와 같다는 말임.

○送日本 梵齡詩卷序:

日本氏, 國於扶桑之域, 政簡民淳, 故其俗專尙浮屠, 參訪之人, 因奉使而遊列國者, 前後相望, 以來, 有若奝然寂照榮督之徒是已。 我殿下卽位之初, 有倪上人祐文溪之徒, 繼踵而來, 亦皆韻釋也。 今齡上人亦因求法, 自歲壬寅至乙巳四年之中, 奉使於我者三矣。 殿下嘉其義, 命有司郊勞館待加等。 上人年芳而學碩, 形臞而神腴, 粲粲淸立, 望之如出壑之氷, 盛之玉壺也。 一日, 以其所扁松泉幽處, 請於縉紳先生曰: "歲壬寅, 特蒙篆書之賜, 予固珍藏, 願贈一言以終惠焉。" 於是, 朝中文士咸詩之矣, 而俾予序。

予惟人有所好, 各從其類, 淵明之愛菊, 以其隱逸; 奈耶之愛楊, 以有五利, 其他徽之之竹、遠公之蓮, 皆有所好。 今上人以松泉自扁, 果何所取歟? 若以吾儒之說言之, 聖人於松有歲寒後凋之語; 於泉有不舍晝夜之嘆, 未識上人之所取, 亦猶是歟? 無亦以淸淨之道, 有感於類而愛之乎? 想夫千巖萬壑, 一間蘭若, 松風灑面, 泉水澄心, 頓除熱惱, 一段淸涼之境, 有不可以言語形容者焉。 觀其蒼蒼貞幹, 傲雪凌霜, 貫四時閱千秋而不改柯易葉, 則有上人得堅固力金剛不毁之節矣。 泠泠活水注玉涵, 雲根一派達千里, 無滯形拘迹, 則有上人洞開眞源, 浩入性海之妙矣。 上人所取 其在是歟? 予觀上人, 奉辭我朝, 辭命之不差, 聘享之有儀, 周旋升降, 皆中法度, 眞所謂墨名而儒行者歟! 將以我國家禮樂文物之盛、交隣懷遠之道, 達之於其國, 使兩國之間, 講好息民, 至于千萬世, 而不替也無疑矣。 是爲記。 洪熙元年五月日, 集賢殿修撰永嘉 權採書。

作詩者數十人。 亨齋 李稷詩:

禪師遁世絶相尋, 松茂泉甘地更深。 齋罷從容煎活水, 講餘瀟灑對淸陰。 眞如自是無增減, 參透何曾異古今? 益鍊五門高着眼, 明明佛祖有傳心。

芙蓉亭 權弘詩:

最愛齡上人, 卜居在深谷。 蒼松蔭道傍, 淸泉出巖曲。 向壁悟無生, 求詩至萬軸。 拙句强自書, 深愧煩良覿。

郊隱 鄭以吾詩:

師心本愛靜, 更此占佳境。 巖松鬱相重, 石泉甘且冷。 蒼蒼貫歲寒, 混混令人省。 應憐世上人, 不識山中景。 飛空碎玉聲, 帶月散淸影。 連年過海遊, 利涉彈指頃。 天涯望孤舟, 猿鶴亦延頸。

上命承文院事權孟孫, 將詩卷與之, 且餞于漢江孟孫中兌梵齡遠接宣慰使也。 梵齡受詩, 喜謝。


  • 【태백산사고본】 9책 28권 14장 B면【국편영인본】 2책 668면
  • 【분류】
    외교-왜(倭) / 어문학-문학(文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