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제에 《문공가례》를 엄히 지키도록 청하는 사간원 좌사간 유계문 등의 상소문
사간원 좌사간(司諫院左司諫) 유계문(柳季聞) 등이 상소하기를,
"신 등이 생각하건대, 불씨(佛氏)의 도(道)는 청정(淸淨) 과욕(寡慾)으로써 종지(宗旨)를 삼고, 경문(經文)을 외고, 복을 비는 것으로서 임무로 삼는 것입니다. 서역(西域)의 석가(釋迦)는 바리때[鉢]를 가지고 걸식(乞食)하고, 설산(雪山)에서 고행(苦行)하여, 드디어 그 도를 이룬 것입니다. 그러나 금이(金夷)029) 가 중국 땅을 밟은 것은 동한(東漢)의 명제(明帝)로부터 비롯하였는데, 이로부터 그 뒤에 역대의 군주가 부처를 섬기고 복을 구하였다가 도리어 화(禍)를 얻은 자가 사책(史冊)에 나타나 있으므로 이제 감히 췌언(贅言)하지 않사오나, 우리 동방의 일로 말씀드린다면, 호승(胡僧) 순도(順道)가 부진(符秦)으로부터 고구려(高句麗)로 들여왔고, 마라난타(摩羅難陀)가 진(晉)나라로부터 백제(百濟)에 가져왔으나, 마침내 두 나라의 멸망에는 보익(補益)함이 없었고, 신라(新羅)의 말엽에는 성안에 사찰(寺刹)이 태반이나 되었으나, 나라가 망하였고, 전조(前朝)에 와서는 보허(普虛)와 나옹(懶翁) 같은 이는 도를 얻었다고 일컬었던 것이오나, 또한 나라의 운명에는 보익함이 없었으니, 그 축리(祝釐)030) 로서 비보(裨補)한다는 설은 진실로 족히 믿을 것이 못되는 것입니다. 옛날 단군 조선(檀君朝鮮)과 기자 조선(箕子朝鮮)에는 모두 불씨의 축리가 없었으나, 그 지난 연수(年數)가 모두 1천에 이르렀으니, 일찍이 성조(盛朝)에서 이것을 버리고 저것을 취하리라고 이르겠습니까. 불씨의 법을 뿌리 뽑고, 불상(佛像)은 녹여 돈[錢]을 만들고, 중은 머리를 길러 군병에 충당하는 것이 가할 것입니다. 다만 〈그 도를〉 행한 지 이미 오래므로 갑자기 다 도태할 수 없으므로, 이에 오교(五敎)·양종(兩宗)을 줄여, 성안의 흥천사(興天寺)를 선종(禪宗)에 속하게 하시고, 흥덕사(興德寺)를 교종(敎宗)에 속하게 하시고는, 거기에 거주하는 승려의 정수(定數)를 1백 20으로 하고, 급전(給田)이 1백여 결(結)이요, 노비(奴婢)가 40구(口)인데다가 작위(爵位)까지 더하였으니, 그 덕이 지극히 우악(優渥)하시고, 은혜 또한 지극히 후하신 것이었습니다. 이제 판선종사사(判禪宗事事) 중호(中皓)와 장무(掌務)인 중덕(中德) 보혜(寶惠)와 대선사(大禪師) 조연(祖衍)과 판교종사(判校宗事) 혜진(惠眞)과 장무(掌務)인 대사(大師) 신위(信暐) 등이 비록 석가의 도제(徒弟)라 이르오나, 설산에서 고행한 유가 아니고, 성안의 절에서 편히 거처하면서 전토의 세(稅)로 배불리 먹고 있으니, 의당히 위로 국가의 뜻을 몸받고, 아래로 승려들의 일을 살피며, 힘써 승려를 모아 함께 거처하면서 마음을 다하여 주상의 〈복을〉 빌어서, 성은(聖恩)의 만분의 일이라도 보답을 도모하여야 할 것인데, 일찍이 이를 도모하지 않고 〈일신의〉 자봉(自奉)만을 힘써, 드디어 승려들로 하여금 사방으로 흩어지게 하여 절을 비게 하고 축리를 게을리하여, 각각 1백 20명이 거처할 곳에 그 궐원(闕員)이 1백 여명에 이르므로, 그 까닭을 핵실해 물으니, 모두 출입하는 것으로 대답하고 있으니, 〈이는〉 성상의 은덕을 저버리고, 〈저희들의〉 잘못을 가리움이 분명합니다. 이미 그 스승의 축리의 가르침을 배반하고, 또 법을 세운 본의를 어기니, 그야말로 정로(正路)를 황폐하게 하는 가시덤불이요, 성문(聖文)의 죄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옛날의 논의하는 자가 말하기를, ‘후하게 하는 자에게 박하게 하면, 박하게 하지 않는 곳이 없어, 그 종말에 가서는 아비도 없고, 임금도 없는 데에 이르러, 비록 육도(六道)와 만행(萬行)이 갖추어 원만하더라도 또한 그 불충(不忠)과 불효(不孝)의 형벌을 속(贖)하여 면할 수 없을 것입니다. 또, 도로써 물욕을 제어하기 어렵기 때문에 비록 석가와 같은 어진이도 반드시 설산에 들어가서 6년간을 고행한 연후에야 그 도를 이루었다. ’고 하였습니다. 현재 양종(兩宗)에 거처하는 자는 성안의 사찰에서 배불리 먹고, 시정(市井)의 여염집을 왕래하면서 항상 여색(女色)과 더불어 난잡하게 거처하고 있으니 어찌 능히 도로써 물욕을 제어하며, 그 도를 정수(精修)하겠습니까. 엎드려 바라옵건대, 전하께옵서 저 중호·보혜·혜진·조연·신위 등을 유사(有司)에 내리시와 법에 의하여 죄를 과(科)하게 하시고, 〈선종·교종의〉 양종을 혁파하고, 선직(選職)을 폐지하며, 40세 이상의 승도로 하여금 산수(山水) 좋은 곳으로 나가 거하게 하여 불도를 닦게 하고는 그 전토를 삭감하여 군수(軍需)를 보충하고, 그 노비를 빼앗아 잔폐(殘弊)한 역(驛)에 예속하도록 하소서. 그 밖에 도반승도(道伴僧徒)들이 온 세상 백성을 속여 미혹시키고, 심지어는 어리석은 백성으로 하여금 가세를 기울여 파산(破産)에 이르게 하면서도, 부처에게 재올리는 승도들은 누워서 받고 편히 앉아서 먹으니, 백성을 해롭힘이 너무 심하옵니다. 오형(五刑)031) 에 속하는 것이 3천 가지에 이르오나, 그 죄가 불효보다 큰 것이 없고, 또 불효의 죄는 부모의 과실을 고하는 것보다 큰 것이 없는데, 지금 사람들은 어버이가 죽으면, 크게 불공을 베풀고서 매양 죄 없는 부모를 죄가 있는 것처럼 부처와 시왕(十王)032) 에게 고하고, 그 죄를 면하기를 비니 그 불효함이 이보다 큰 것이 없습니다. 설사 부처와 시왕이 있다 하더라도 어찌 한 그릇 밥의 공양으로 죄 있는 사람을 용서할 이치가 있사오리까. 그 허탄함이 또한 심합니다. 그 지각 없는 백성은 족히 말할 것이 못되나, 밝고 지혜 있다고 이르는 자도 또한 속임과 꼬임에 미혹되어 죄를 두려워하고 복을 사모하여 수륙재(水陸齋)를 베풀고 친히 정례(頂禮)033) 를 행하니, 진실로 마음 아픈 일입니다. 신 등이 마음속으로 두려워하기를 이것이 다만 명목없는 허비일 뿐아니라, 이 불도의 행함도 또한 이로 말미암아 폐하게 될 것입니다. 원컨대, 40세 이하의 각 사찰의 도반승도는 모두 머리를 기르게 하고, 다시 머리를 깎지 못하게 하여 그 근본을 금하게 하며, 무릇 대소 인민의 상제(喪祭)의 예를 한결같이 《문공가례(文公家禮)》에 의하여 불공을 베풀지 말도록 하고, 이를 여기는 자는 엄중히 법으로 다스리도록 하소서."
하니, 명하기를,
"〈이 소는〉 형조에 내리게 하고, 중호 등은 율을 상고하여 아뢰도록 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9책 27권 13장 B면【국편영인본】 2책 650면
- 【분류】정론-정론(政論) / 사상-불교(佛敎) / 사상-토속신앙(土俗信仰) / 풍속-예속(禮俗)
- [註 029]금이(金夷) : 불상(佛像).
- [註 030]
축리(祝釐) : 제사하며 복을 비는 것.- [註 031]
오형(五刑) : 먹물로 자자(刺字)하는 묵형(墨刑), 코를 베는 의형(劓刑), 발뒤꿈치를 베는 비형(剕刑), 불알을 까는 궁형(宮刑), 목을 베는 대벽(大辟).- [註 032]
시왕(十王) : 저승에 있다는 진광왕(秦廣王)·초강왕(初江王)·송제왕(宋帝王)·오관왕(伍官王)·염라왕(閻羅王)·변성왕(變成王)·태산왕(泰山王)·평등왕(平等王)·도시왕(都市王)·오도전륜왕(五道轉輪王)의 10왕.- [註 033]
정례(頂禮) : 불전에서 이마를 땅에 대고 가장 공경하는 뜻으로 하는 절.○司諫院左司諫柳季聞等上疏曰:
臣等竊謂, 佛氏之道, 以淸淨寡欲爲宗, 誦經祝釐爲務。 西域釋迦持鉢乞食, 苦行雪山, 乃成其道, 而金夷之蹂中國, 始於漢 明。 自是厥後, 歷代人君事佛求福, 反更得禍者, 著在史冊。 今不敢贅, 以吾東方之事言之。 胡僧順道自符秦而入高句麗, 摩羅難陁自晋而到百濟, 終無補於二國之亡。 新羅之季, 城中佛寺太半, 而國隨以亡, 及至前朝, 有如普虛、懶翁號稱得道, 而亦無補於國祚, 其祝釐裨補之說, 誠不足信。 惟昔檀君之朝鮮、箕子之朝鮮, 俱未有佛氏之祝釐, 而歷年皆至一千, 曾謂盛朝而捨此取彼哉? 彼佛氏之法, 拔其根株, 鑄佛像而爲錢, 長僧髮而充軍可也。 但行之已久, 未遽盡汰。
玆者省五敎、兩宗, 以城中興天寺屬禪宗, 興德寺屬敎宗, 居僧定額一百二十, 給田一百餘結、奴婢四十口, 加之以爵位, 德至渥也, 恩至厚也。 今判禪宗事事中皓、掌務中德寶惠、大禪師祖衍、判(校)〔敎〕 宗事惠眞、掌務大師信暐等, 雖云釋迦之徒, 非雪山苦行之比, 安處城中之寺, 飽食土田之稅, 宜當上體國家之意, 下察僧中之事, 務令聚僧, 群居作法, 盡心祝上, 圖報聖恩之萬一。 曾不是圖, 自奉是務, 遂令緇流四散曠寺, 懶於祝上, 各於一百二十員居處, 闕員至於百餘。 覈問其故, 俱以出入爲答, 其負聖恩, 而飾非文過明矣。 旣背本師祝釐之敎, 又違立法之本意, 眞所謂正路之蓁蕪、聖門之罪人也。 故古之議者有曰: "於所厚者薄, 無所不薄, 其流至於無父無君。" 雖六道萬行, 具足圓滿, 亦無以贖其不忠不孝之刑矣。
且以道制欲者爲難, 故雖以釋迦之賢, 必入雪山, 六年苦行, 然後以成其道。 今之居兩宗者, 飽食城中之寺, 往來市井之家, 常與女色雜處, 豈能以道制欲, 而精修其道哉? 伏望殿下, 將中皓、惠眞、寶惠、祖衍、信暐等, 下有司按律科罪, 革兩宗, 罷選職, 令四十以上僧徒出居山水勝處, 俾修其道, 削其土田, 以補軍需; 奪其奴婢, 以屬殘驛。
其他道伴僧徒虛張設齋之法, 誣惑擧世之民, 至使愚民傾家破産, 供佛齋僧, 偃然而受, 安坐而食, 其爲民之蟊賊甚矣。 夫五刑之屬三千, 而罪莫大於不孝, 不孝之罪, 莫大於告父母過失。 今人親死, 則廣設佛事, 輒以無罪之父母爲有罪, 而告佛與十王, 祈免其罪也, 其不孝莫大焉。 假使佛與十王在, 安有享一器之食而赦有罪之人乎? 其爲虛誕, 亦已甚矣。 若夫無知之民則無足道也, 號爲明智者, 亦惑於誑誘, 畏罪慕福而設水陸聖齋, 親自頂禮, 誠爲痛心。 臣等竊恐此非獨無名之費, 斯道之行, 亦由是而廢矣。 願四十以下各寺道伴僧徒, 竝令長髮, 毋更剃髮, 以錮其本。 凡大小人民喪制之禮, 一依《文公家禮》, 不作佛事, 違者痛繩以法。
命下刑曹, 中皓等, 照律以啓。
- 【태백산사고본】 9책 27권 13장 B면【국편영인본】 2책 650면
- 【분류】정론-정론(政論) / 사상-불교(佛敎) / 사상-토속신앙(土俗信仰) / 풍속-예속(禮俗)
- [註 0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