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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실록 26권, 세종 6년 10월 8일 기유 1번째기사 1424년 명 영락(永樂) 22년

상제와 영칙의를 사신에게 봉상 윤 정여를 보내어 묻게 하다

주서(注書) 이승손(李承孫)황해도 안성참(安城站)에서 돌아와, 곽존중(郭存中)이 사신과 문답한 서장을 바쳤다. 그 서장에 이르기를,

"사신 유경(劉景)존중에게 말하기를, ‘전하가 이미 원 재상(元宰相)을 보냈고, 이제 또 그대를 보내어 문안하니, 그 마음가짐이 지극하다. 속히 길을 떠나려고 하니, 맡아가지고 온 일을 속히 말하라.’ 하므로, 존중이 말하기를, ‘9월 초 1일 사신 왕현(王賢)을 호송한 지삼등현사(知三登縣事) 박득년(朴得年)요동에서 〈황태자의〉 영유(令諭)를 기록하여 돌아왔다. 전하는 대행 황제(大行皇帝)가 돌아갔다는 말을 듣고 여러 신하를 거느리고 곡하여 상례를 거행하고, 애통한 마음을 이기지 못하여 바로 진향·진위 두 사신을 보냈으며, 본월 15일에 자문 뇌진관(咨文賚進官) 조충좌(趙忠佐)요동에서 돌아옴으로 인하여, 다시 황제가 즉위(卽位)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또 하등극사(賀登極使)를 보냈는데, 중로에서 대인(大人)의 말을 듣고 모두 떠나지 못하고 머물러 있다. 신자(臣子)로서 군부(君父)의 상을 들었으므로 정의(情意)가 박절하여 듣는 대로 사신을 보낼 것이요, 차마 늦추지 못할 것이다. 세 사신이 이미 발정하였으니, 청컨대, 먼저 들여 보내고, 조칙(詔勅)을 열어 본 뒤에 다시 감격하다는 뜻으로 특별히 한 사신을 보내는 것이 두 가지 다 옳은가 한다.’ 하니, 이 이르기를, ‘황제의 성지(聖旨)에 조선은 비록 외국이나, 글을 읽고 친교를 맺을 나라이니, 조칙(詔勅) 두 사신이 일시에 발행한다 할지라도, 조선 경내에 들어가서는 각기 따로 갔다오라고 하였다. 진향(進香)·진위(陳慰)의 절차는 전일에 이미 말하였으며, 세 사신의 가고 머무르는 것은 마음대로 하라.’ 하고, 바로 나와 말[馬]에 올랐다. 부사(副使) 진선(陳善)은 이르기를, ‘우리들이 조정의 예를 무엇이고 모르는 것이 있는가. 이미 진향·진위사를 보내고, 또 사람을 보내어 주문(奏聞)하면, 어찌 중첩된 일이 아닌가. 우리들이 돌아가서 이 일을 아뢰면, 왕현요동에서 어찌 무사할 수 있는가.’ 존중이 말하기를, ‘요동 〈지방의〉 대소 신민들이 모두 소의(素衣) 소찬(素饌)하고 있는 것을 득년이 친히 본 일이요, 또 반포한 영유(令諭)를 등초하여 왔으므로, 본국에서도 알게 된 것이다. 전자에 북방을 평정한 일과 상서로운 일들도 모두 요동에서 듣고 사신을 보내어 진하한 전례가 있다.’ 하니, 이 이르기를, ‘길흉(吉凶)에는 완급(緩急)이 있다. 해야 할 일을 하지 아니하고, 하지 아니할 일을 하는 것은 모두 예가 아니다. 조선은 글을 읽어서 예를 아는 나라이니 예는 적중하여야 하고 지나치는 것은 옳지 못한 것이다.’ 존중이 말하기를, ‘그대의 말이 옳은 것 같으나 그르다. 황제의 빈천하였음을 듣고, 신자의 지극한 정으로 바로 진향·진위사를 보내는 것이 나의 의견으로는 적중하다고 생각한다.’ 사신이 이르기를, ‘그대의 말도 또한 옳은 것 같으나 그르다. 세 사신의 가고 머무르는 것은 마음대로 하라.’ 하고, 바로 나와 말[馬]에 올랐다."

하였다. 임금이 영돈녕(領敦寧) 유정현(柳廷顯)·좌의정 이원(李原)·우의정 유관(柳觀)·찬성 황희(黃喜)·대제학 변계량(卞季良)·이조 판서 허조(許稠)·참찬 탁신(卓愼)·예조 판서 신상(申商)·형조 참판 하연(河演)·호조 참판 목진공(睦進恭)을 불러 의논하게 하고, 바로 봉상 윤(奉常尹) 정여(鄭旅)를 보내어 상제(喪制)와 영칙의(迎勅儀)를 사신에게 묻게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9책 26권 7장 B면【국편영인본】 2책 629면
  • 【분류】
    외교-명(明)

○己酉/注書李承孫回自黃海道 安城站, 齎郭存中與使臣問答書以啓。 其書曰:

使臣(劉京)〔劉景〕 存中曰: "殿下旣遣宰相, 今又遣君問安, 其用心至矣。 欲速上馬, 委來事可速說。" 存中言: "九月初一日, 護送天使知三登縣朴得年敬錄令諭, 回自遼東, 殿下欽聞大行皇帝賓天, 率群臣哭臨行喪, 不勝哀慟迫切之情, 卽遣進香、陳慰兩使。 本月十五日, 咨文齎進官趙忠佐回自遼東, 復欽聞皇帝卽位, 又遣賀登極使, 中路聞大人命, 竝留不行。 臣子聞君父喪, 情意迫切, 宜以所聞先後, 不忍延緩。 三使旣已發程, 請先入送。 詔勑開讀後, 更以感激之意, 別遣一使, 意謂兩全。" 云: "皇帝聖旨: ‘朝鮮雖外國, 讀書且結親之國。 詔勑兩使, 雖一時發行, 入朝鮮境, 宜各行。’ 欽此。 出來進香陳慰節次, 前日已言之矣, 三使去留, 任意爲之。" 卽出上馬。 副使陳善云: "我等於朝廷之禮, 何事不知? 已遣進香、陳慰使, 又遣人奏聞, 豈不重疊!" 又云: "我等回還, 若奏此事, 王賢遼東, 豈得無事?" 存中曰: "遼東大小臣民, 皆素衣素饌, 得年之所親見。 又謄頒降令諭而來, 本國由此得聞。 前此賀平定北方及祥瑞等事, 皆聞於遼東, 遣使進賀, 已有故事。" 云: "吉凶有緩急, 得爲而不爲, 不得爲而爲之, 皆非禮也。 汝朝鮮讀書知禮, 禮貴得中, 過猶不及。" 存中曰: "大人之言, 似是而非。 聞皇帝賓天, 以臣子迫切至情, 卽行進香陳慰, 愚意此乃得中。" 使臣云: "汝言亦似是而非。 三使行止, 任自爲之。" 卽出上馬。

上召領敦寧柳廷顯、左議政李原、右議政柳觀、贊成黃喜、大提學卞季良、 吏曹判書許稠、參贊卓愼、禮曹判書申商、刑曹參判河演、戶曹參判睦進恭議之, 卽遣奉常尹鄭旅, 問喪制及迎勑儀於使臣。


  • 【태백산사고본】 9책 26권 7장 B면【국편영인본】 2책 629면
  • 【분류】
    외교-명(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