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열의 기일과 절차에 대한 의례
대열(大閱)의 의주(儀注)에,
"9, 10월 중에 도성 밖에서 대열(大閱)하되, 강일(剛日)051) 로 정한다. 기일 전 11일에 병조에서 대열하기를 아뢰어 교지를 받는다. 드디어 장수에게 명하여 군사를 간택하게 하고, 유사(有司)가 먼저 풀을 베고 터를 닦아서 마당을 만드는데, 방(方)이 1천 2백 보(步)에 네 군데 화문(和門) 【군문(軍門)을 화문이라고한다. 】 을 낸다. 또 그 안에다가 보병(步兵)·기병(騎兵)의 진영을 만들 곳을 마련하여, 두 진(陣)으로 나누어 동·서로 서로 향하게 하되, 중간 서로의 거리가 3백 보이며, 매 50보마다 표(標)를 한 줄로 세우는데, 모두 다섯 줄로 표마다의 거리가 각기 50보가 되게 하여, 군사들이 나아가고 멈추는 표준이 되게 한다. 또 따로이 북쪽 가에다 단[墠]을 남향으로 만들어서 거가(車駕)가 머물러 보는 곳이 되게 한다. 2일 전에 충호위(忠扈衛)에서 대차(大次)와 어좌(御座)를 그 가운데에 설정하고, 또 소차(小次)를 대차의 동쪽에 설치하되, 땅의 형편에 따라 설정한다. 왕세자의 막차는 소차의 남쪽에 동쪽으로 가까이 서향으로 설치한다. 통례문(通禮門)이 왕세자 이하 문무 백관이 절할 자리를 대차의 남쪽에 설치하기를 보통 의식과 같이 한다. 하루 전에 장수와 사졸들이 단소(壇所) 앞에 모이는데, 훤화(喧譁)를 금하고, 각 방위(方位)의 빛깔에 따라 기(旗)를 세워서 화문(和門)을 만들고, 기·북·갑옷·창 등의 위의(威儀)를 단소 아래에 모두 갖추게 한다. 대장 이하가 각기 통솔하는 것이 보통 의식과 같이 하되, 먼저 군사들에게 깃발[旌旗]로 지휘하는 방식과 【기를 눕히면 곧 꿇어앉고, 기를 들면 곧 일어난다. 】 쇠와 북으로 움직이고 정지하게 하는 방법을 【북을 울리면 곧 나아가고, 쇠를 울리면 곧 정지한다. 】 보고 듣게 가르친다. 대열하는 날 날이 밝기 전 10각(刻)에 군사가 모두 엄정하게 장비를 차리는데, 기병이나 보병이 모두 갑옷을 입고 각기 곧은 진(陣)을 하고서 기다리고, 장군과 대장은 각기 의식대로 기와 북이 있는 아래에 선다.
그날 밝기 전 7각에 북을 한 번 치면 일엄(一嚴)이 되는데, 유사가 아뢰어 궁전문과 성문을 열고, 밝기 전 5각에 북을 두 번 치면 재엄(再嚴)이 되는데, 판통례가 중엄(中嚴)임을 계청하여, 종실 이하 문무 여러 관원이 모두 갑주를 갖춘다. 유사(攸司)가 소가(小駕)의 의장(儀仗)을 베푸는데 보통 의식과 같이 한다. 밝기 전 2각에 세 번 북을 치면 삼엄(三嚴)이 되는데, 모든 시위 관원이 각기 그 연장과 복색을 차리고, 거가(車駕)가 움직인다. 왕세자 이하 문무 여러 관원이 시위하기를 보통 의식과 같이 한다.
거가가 단소에 이르면, 병조 판서가 갑주로 말을 타고 인도하여 도단소(都壇所) 북쪽 화문으로 들어가, 소차 앞에서 말에서 내려 막차로 들어가게 하고, 지통례가 왕세자를 인도하여 막차로 들어가게 하며, 통례문이 종실 이하 문무 여러 관원을 나누어 인도하여 대차의 남쪽으로 들어가서, 문관은 동쪽에, 무관은 서쪽에 서게 하되, 중심이 머리가 되게 하고, 관위를 달리 하여 여러 줄로 모두 북향하여 서게 한다. 지통례가 왕세자를 인도하여 【갑주를 갖춘다. 】 들어와서, 자리에 나아가 서게 하고, 전하가 금갑주를 입고 소차에서 나와 대차로 들어가서 자리[座]로 나아가는데, 산선(繖扇)과 의장과 호위가 보통 의식과 같다. 통찬이 ‘사배하라.’ 찬하면, 자리에 있는 자가 모두 사배한다. 중군장(中軍將)이 기를 눕히면, 군사들이 각기 그 진에서 북향하여 사배하고, 기를 들면, 기병은 말을 타고, 보병은 일어난다. 이것이 끝나면, 병조 판서가 동쪽편에 멈추어 서서 서향한다. 장위(仗衛)가 조금 물러나서 보는 길[觀路]을 통하게 하고, 시신(侍臣)들은 좌·우편으로 갈라서 대차 앞 동·서쪽에 북쪽을 위로 하여 서고, 왕세자 이하 문·무관 9품 이상은, 문관은 동쪽에, 무관은 서쪽에 시신(侍臣)들의 10보 밖에 여러 줄로 북쪽을 위로 하여 선다.
대각(大角)을 세 번 불면, 중군장이 각기 비(鞞)를 들어 북을 치게 하면, 두 편 군사가 모두 북을 두드린다. 유사가 기를 눕히면, 기병은 말에서 내리고, 보병은 꿇어앉는다. 두 편 군사의 모든 장수와 상호군(上護軍) 이상이 중군 대장(中軍大將) 기고(旗鼓) 아래에 모이는데, 좌편 중군 대장은 기고의 동쪽에 서서 서향하고, 여러 군장(軍將)은 기고의 남쪽에 북쪽을 면하고 동쪽을 위로 하여 서고, 우편 중군 대장은 기고의 서쪽에 서서 동쪽을 면하고, 여러 군장은 기고의 남쪽에 서서 북면하고 서쪽을 상석으로 하여 서사(誓辭)를 듣는다.대장이 맹세하기를, ‘이제 대열을 시행하여 사람들에게 전투를 가르친다. 나아가고, 물러가고, 왼편으로 가고, 오른편으로 가는 것은 일체 군법과 같이 하여, 명령대로 하면 의당한 상(賞)이 있고, 명령을 어기면 의당한 형벌이 있을 것이니, 어찌 힘쓰지 않을 수 있겠는가. ’라고 맹세하기가 끝나면, 좌·우군의 사후(伺候) 각 두 사람이 탁(鐸)을 흔들고 나누어 순행(巡行)하며 여러 사람들에게 서사(誓辭)를 들려주고, 여러 상호군이 각각 그 서사를 그 부하들에게 두루 일러주고 나면, 북을 친다. 유사가 기를 들면, 기병은 말에 오르고, 보병은 일어나서 모두 행진하여 푯말에 이르면, 징[鉦]을 쳐서 기병·보병이 정지한다. 또 세 번 북을 치면, 유사가 기를 눕히고, 기병은 말에서 내리고, 보병은 꿇어앉는다. 또 치면 유사가 기를 들어, 기병이 말에 오르고, 보병이 일어나서, 기병은 달리고, 보병은 뛰어서 푯말에 이르면 거기에 정지하여 열을 정돈하고 자리를 정한다. 동서 양군이 오행(五行)의 서로 이기는 법칙에 따라 서로 진을 짜서 응전(應戰)하는데, 매양 진형(陣形)을 변할 때마다 각각 칼과 방패를 가진 군사 50명을 뽑아서 양군 앞에서 싸움을 돋우는데, 제1차, 제2차는 번갈아서 용감하고 겁내는 형상을 짓고, 제3차로 싸움을 돋울 때는 상대로 균형되는 형세를 짓고, 제4차, 제5차로 싸움을 돋울 때는 이기고 패하는 형상을 지어서, 다섯 진이 끝나면 양군이 모두 곧은 진형[直陣]을 한다. 또 세 번 북을 쳐서 유사가 기를 눕히면, 기병은 말에서 내리고, 보병은 꿇어앉는다. 또 북을 치고 기를 들면, 기병이 말에 오르고, 보병이 일어나서, 보병이 달리는 것을 기병이 쫓아가서, 좌·우군이 모두 중간 푯말에 이르러 서로 치는 것처럼 하다가 돌아가는데, 매양 물러갈 때에는 일행(一行)의 푯말에 이르기를 전과 같이 하여 그대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 【서로 치는 것처럼 할 때에는 모두가 칼날이 서로 미치지 아니할 뿐 아니라, 보병이 쫓고 물러갈 때에도 중간 푯말에서 20보를 지나서 그치고, 기병은 이 예에 들지 아니한다. 】 판통례가 꿇어앉아 대열(大閱)의 예(禮)가 끝났음을 아뢰어, 전하가 자리[座]에서 내려와 소차로 들어가서 금갑옷을 벗고, 왕세자도 막차로 돌아가서 갑옷을 벗고, 병조에서 교지를 받은 군사 외에는 백관이 모두 갑옷을 벗는다. 전하가 대차로 돌아가 자리[座]로 나아가면, 다상(茶床)을 받들어 올리기를 보통 의식과 같이 한다. 이것이 끝나면 판통례가 꿇어앉아 환궁하기를 계청하고 나서, 구부렸다 엎드렸다 일어나서 물러가고, 거가가 환궁하기를 올 때의 의식과 같이 한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8책 25권 29장 B면【국편영인본】 2책 624면
- 【분류】군사-병법(兵法)
- [註 051]강일(剛日) : 갑(甲)·병(丙)·무(戊)·경(庚)·임(壬)의 날을 강일(剛日)이라 하고, 을(乙)·정(丁)·기(己)·신(辛)·계(癸)의 날을 유일(柔日)이라 한다.
○大閱儀注:
九月十月中, 大閱於都外, 用剛日。 前期十一日, 兵曹請大閱承敎, 遂命將帥揀軍士。 有司先芟萊除地爲場, 方一千二百步, 四出爲和門。 【軍門謂之和門。】 又於其內, 爲步騎軍營域處所, 分兩陣東西相向, 中間相去三百步。 每五十步立標爲一行, 凡五行標間, 相去各五十步, 爲軍士進止之節。 又別墠地於北廂, 南向爲車駕停觀之所。 前二日, 忠扈衛設大次及御座於其中, 又設小次於大次之東, 隨地之宜, 王世子次於小次之南近東西向。 通禮門設王世子以下文武群官拜位於大次之南如常儀。 前一日, 將帥及士卒集於墠所, 禁止喧譁, 依方色立旗爲和門, 旗鼓甲仗威儀悉備。 於墠所大將以下, 各有統帥如常式。 將帥先敎士衆, 望聽旌旗指揮之蹤、 【旗臥卽跪, 旗擧卽起。】 金鼓動止之節。 【聲鼓卽進, 鳴金卽止。】 大閱日未明十刻, 軍士皆嚴備, 騎徒皆貫甲, 各爲直陣以相俟, 將軍及大將, 各依儀立於旗鼓之下。 其日未明七刻, 槌一鼓爲一嚴, 有司啓開宮殿門及城門。 未明五刻, 槌二鼓爲再嚴, 判通禮啓請中嚴, 宗室以下文武群官皆具甲冑, 攸司陳小駕儀仗如常儀。 未明二刻, 槌三鼓爲三嚴, 諸侍衛之官, 各服其器服。 車駕動, 王世子以下文武群官侍衛如常儀。 車駕至墠所, 兵曹判書甲冑乘馬, 奉引入自都墠北和門, 至小次前下馬入次。 知通禮引王世子入幕次, 通禮門分引宗室以下文武群官入大次之南, 文東武西, 中心爲頭, 異位重行, 俱北向。 知通禮引王世子 【具甲冑】 入就位。 立定, 殿下被金甲出小次, 入大次卽座, 繖扇、仗衛如常儀。 通贊唱四拜, 在位者皆四拜。 中軍將偃旗, 軍士各於其陣, 北向四拜, 擧旗, 騎乘馬徒起訖。 兵曹判書停立於東廂西向, 仗衛小退, 以通觀路, 侍臣依左右廂, 立於大次之前, 東西北上, 王世子以下文武九品以上, 文東武西, 在侍臣之外十步, 重行北上。 立定, 吹大角三通, 中軍將各以鞞令鼓, 二軍俱擊鼓。 有司偃旗, 騎下馬立徒跪。 二軍諸帥上護軍以上, 集於中軍大將旗鼓之下, 左廂中軍大將立於旗鼓之東西面, 諸將立於旗鼓之南, 北面東上, 右廂中軍大將立於旗鼓之西東面, 諸軍將立於旗鼓之南, 北面西上以聽誓。 大將誓曰: "今行大閱, 以敎人戰, 進退左右, 一如軍法。 用命有常賞, 不用命有常刑, 可不勉之?" 誓訖, 左右軍司侯〔伺候〕 各二人, 振鐸分巡以誓衆。 諸上護軍各以誓辭, 遍告其所部, 遂聲鼓, 有司擧旗, 騎上馬徒起皆行, 及表擊鉦, 騎徒乃止。 又擊三鼓, 有司偃旗, 騎下馬徒跪, 又擊, 有司擧旗, 騎上馬徒起, 騎驟徒趨及表乃止, 整列位定。 東西軍依五行相勝之法, 互爲陣以應之。 每變陣, 各選刀楯之士五十人, 挑戰於兩軍之前。 第一第二挑戰, 迭爲勇怯之狀; 第三挑戰, 爲適均之勢; 第四第五挑戰, 爲勝敗之形。 五陣畢, 兩軍俱爲直陣。 又擊三鼓, 有司偃旗, 騎下馬徒跪, 又聲鼓擧旗, 騎上馬徒起, 騎從徒走, 左右軍俱至中表, 相擬擊而還。 每退至一行表如前, 遂復其初。 【凡相振擊, 皆不得以刃相及, 凡步士逐退, 過中表二十步而止, 騎士不在此例。】 判通禮跪啓大閱禮畢, 殿下降坐, 入小次釋金甲, 王世子還幕次釋甲, 兵曹承敎軍士外, 百官皆釋甲。 殿下還大次卽座, 進茶床如常儀畢, 判通禮跪, 啓請還宮, 啓訖俛伏興退, 車駕還宮如來儀。
- 【태백산사고본】 8책 25권 29장 B면【국편영인본】 2책 624면
- 【분류】군사-병법(兵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