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효전에서 제사를 지내고 종묘에서 추향 대제를 행하다
고유(告由)하는 제사를 광효전에서 행하고 나서 신로(神輅)034) 가 떠나가니, 임금이 곤복과 면류관 차림으로 연(輦)을 타고 군신들을 거느리고 앞에서 인도하여 종묘에 이르러 부묘(祔廟)하고, 인하여 추향 대제(秋享大祭)를 행하고, 효령 대군 이보(李𥙷)를 시켜서 위판(位版)을 광효전에 봉안하고 추향(秋享)을 행하기를 의식과 같이 하였다. 그 종묘 일실(一室)의 축문에 말하기를,
"때는 이제 7월이라 간소한 의식을 올리나이다. 상제(喪制)가 3년을 마쳤으므로 부묘(祔廟)하는 예법을 거행하오니, 흠향하시고 돌보심을 내리사 효도하는 생각을 통촉하소서."
하였고, 이실(二室)의 축문에는 말하기를,
"예전 법전에 좇아 부묘하는 의식을 거행하옵는데, 가을을 당하여 제사 의식을 거행하오니, 영명하신 돌보심을 내리시어 효도의 생각을 흠향하옵소서."
하였고, 삼실(三室)의 축문에 말하기를,
"은덕이 깊으시와 후손에게 내리시어 실로 큰 기업(基業)을 열으셨나이다. 때마침 깨끗한 제사를 올릴 때라 부묘하는 예법을 거행하오니, 통촉하시고 흠향하시와 보호하심을 넉넉하게 내리옵소서."
하였고, 사실(四室)의 축문에는 말하기를,
"절후가 가을 제사를 당하였으므로 법식대로 제사를 올리오며, 새로 부묘하는 예절을 겸하여 의식을 거행하오니, 효도하는 생각을 통촉하시고 흠행하시와 돌보소서."
하였고, 오실(五室)의 축문에는 말하기를,
"첫가을이 이제 되었삽기에 깨끗한 제사를 올리오며, 옛법을 상고하여 새로 부묘함을 엄숙히 거행하오니, 우러러 바라옵기는 영령(英靈)이 굽어 살펴 돌보시와 흠향하심을 내려 주시옵소서."
하였고, 육실(六室)의 축문에는 말하기를,
"부묘하는 시기가 되었삽고 마침 제사지내는 때를 당하였기에, 옛 법칙에 따라 깨끗한 제사를 지내오니 흠향하시고 돌보시와 저의 효도의 생각을 편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였고, 다섯 공신(功臣)을 배향하는 교서에는,
"왕은 말하노니, 영특하고 위대한 재주가 모여서 일대(一代)의 큰 보필이 되었고, 훈공과 수고의 업적은 당연히 만년의 밝은 제사를 누릴 것이라. 이제 부묘하는 때를 당하였으니 어찌 공을 기념하는 전례를 거행하지 아니하리오. 문충공 하윤은 산악(山岳)의 정기를 타고 나서 하늘과 사람의 학문을 다한지라, 지혜는 기미를 밝게 살피고, 도량은 세상을 도울 수 있었다. 능히 계획하고 잘 판단하여 울연(蔚然)한 재보(宰輔)의 재목이요, 빛나며 옛되고 깊은 글은 문장의 으뜸이라. 일찍부터 황고(皇考)에게 마음을 바쳐 숨은 용(龍)을 못 속에서 일으키었다. 군진(君陳)035) 의 좋은 말과 좋은 계획으로 왕도(王道)를 빛나게 하였고, 산보(山甫)036) 의 단정한 거동과 태도로 조정(朝庭)의 사범이 되어, 기쁘고 노여움을 겉으로 나타내지 아니하니, 헐뜯고 칭찬하는 것이 소용이 없도다. 충무공(忠武公) 영무(英茂)는 타고난 성품이 충성되고 곧으며, 형모(形貌)와 마음이 크고 깊으니, 덕은 어질고 맑은 데에 근본하였으므로 백성을 편히 할 엄숙한 그릇이요, 재주는 장상(將相)을 겸하였으니 당당히 진국(鎭國)할 영재(英才)라. 고려의 운수가 이미 궁하였을 때를 당하여 하늘의 뜻 있는 바를 알고, 우리 황조(皇祖)를 추대하여 개국 창업의 공을 이루었고, 우리 태종을 모시어 융성하고 태평한 정치를 이루었으니 어찌 나라의 선비일 뿐이랴. 이른바 사직의 신하이다.
익경공(翼景公) 정탁(鄭擢)은 타고난 기질이 참되고 순수하며, 마음 잡음이 충후하여 우뚝한 세족(世族) 후손이요, 위대한 유림의 종장(宗匠)이라. 개국할 때의 공훈은 역사에 넘쳐 있고, 천명(天命)을 보좌한 업적은 국가에 빛나 있다. 민심이 모두 우러러보니 공로는 후하게 갚는 것이 마땅하다.
양도공(襄度公) 천우(天祐)는 좌우에서 모시었으며 앞뒤로 분주하여 의로운 담(膽)과 충성스러운 간(肝)으로 종사를 부축하고, 영특한 자질과 날랜 기개로 간사하고 흉악한 무리를 섭복(讋服)시켰고, 힘을 다하고 충성을 다하여 훈공이 일찍부터 드러났고, 강한 것을 꺾고 침략을 막아서 국가의 운명이 편안하니, 특히 황고(皇考)의 알아주심을 받아서 종실 중에 신망이 있었다.
경절공(景節公) 이내(李來)는 꼿꼿하고 개결(介潔)함이 세속에 뛰어나고, 깨끗하고 쇄락(灑落)함이 진세(塵世)를 벗어나 정직한 의논과 충성된 말은 일찍이 가훈(家訓)을 받은 것이요, 맑은 풍도와 높은 절개는 옛사람보다 뛰어났다. 기미를 밝게 보고 충성을 바치며 대의를 따라 천명을 도왔으니, 공(功)이 당시에 더하여졌고, 덕이 후손에게 드리워질 것이다. 슬프다. 살았을 적에 그의 힘을 힘입어 기업을 성취하였은즉, 죽어서 마땅히 제사를 높이 하여 그 공을 갚는 것은 비단 국가의 좋은 법규일 뿐 아니라 실로 고금을 통한 의리라.
우리 황고께서 옛적 고려 말년에 우리 태조를 도와 집을 변하여 나라를 만드셨고, 즉위하신 뒤에는 다스리는 방법이 다 이루어져 모든 일이 밝아졌으니, 치공(治功)이 옛시대보다 뛰어나셨고, 예악(禮樂)과 문물(文物)이 찬연(粲然)하게 밝았도다. 품어 주시고 생각해 주시는 마음이 만세에까지 끼쳐 주셨으니, 비록 하늘이 거룩하신 덕을 복주신 바이지만, 또한 경들의 보필과 힘쓴 공으로 된 것이라. 나는 성취된 왕업을 그대로 받았을 뿐이니 경의 큰 업적을 아름답게 여기노라. 슬프다. 우리 황고께서 문득 승하하시어 울부짖은 지 얼마 아니되어, 벌써 추위와 더위가 지나가서 대상(大祥)과 담제(禫祭)도 이미 끝났으니, 3년의 기간도 구극(駒隙)과 같은 것이어서, 슬프고 사모하는 마음은 하늘이 끝날 때까지라도 한이 없을 것이라. 이에 길한 날을 가리어 종묘에 부묘하고, 인해서 경들을 배향하는 자리에 올려서 으뜸가는 훈공을 보답하니, 유명은 비록 다르나 감동되어 통하는 것은 가까우니, 진실로 만대에까지 흠향함에 참여하지 못한다면 어찌 능히 구천에까지 공을 갚는다 하리오. 아아, 계획이 있었고 설시(設施)함이 있어서 큰 공을 한 세상에 세웠으니, 올려 주고 흠향하게 하여 마땅히 천추에 혈식(血食)하게 하리라."
하였다. 임금이 재전(齋殿)으로 돌아와 곤복과 면류관을 벗고 강사포와 원유관 차림으로 연(輦)을 타고 환궁하고, 채붕(彩棚)을 맺고 여러가지 놀이를 베풀고 성균관 학생과 교방(敎坊)에서 모두 가곡과 노래를 올렸다. 임금이 근정전에 나아가 하례를 받고, 인하여 존호를 올린 교서와 대사(大赦)하는 교지를 반포하였으니, 그 교서에,
"왕은 말하노라. 근본에 보답하는 데에는 부모를 높이는 것보다 클 것이 없고, 정치를 하는 데에는 효도를 세우는 것보다 더 할 것이 없다. 예전의 법을 상고하여 신민들에게 널리 고하노라. 공경하여 생각하건대, 우리 황비 원경 왕태후께서는 곤도(坤道)를 본받으시고 건도(乾道)에 짝이 되어 깨우치고 경계하시어 서로 돕는 도리가 있으셨고, 간신들에게 사사로이 청탁하는 마음이 없으셨다. 지난 무인년에 종통(宗統)이 장차 그릇되려는 때에 우리 황고(皇考)를 도우시어 불세(不世)의 대훈(大勳)을 이루시고, 중궁(中宮)의 자리를 바로하심에 미쳐서는 내치(內治)를 더욱 엄하게 하시어, 하주(河洲)037) 의 정숙하신 덕행을 드러내시고 위애(渭涘)038) 를 계승하시었다. 내가 조그마한 몸으로 큰 기업을 계승하여 바야흐로 사랑의 훈계를 받으려 하였더니, 애통하게도 갑자기 하늘에 오르셨으니, 특별한 칭호를 올리지 않고는 어찌 위대한 공을 밝힐 것이랴. 영락 22년 7월 초하룻날에 삼가 백관을 거느리고 옥책(玉冊)을 받들어 존호를 더 올려 창덕 소열 원경 왕태후라 하여, 문장으로 높이는 예식을 갖추어 아름다움을 들려드리는 심정을 펴볼까 하노라. 아아, 옥(玉)을 깎고 금을 이겨[泥金] 이미 바른 칭호를 받들어 책문(冊文)을 올렸으니, 친한 사람으로부터 먼 사람에게 미치게 하여 복(福)을 거두어 너희 백성들에게 주려고 기대하는 바이니, 너희 대중들은 나의 지극한 회포를 체득하라."
하고, 대사(大赦)하는 교지에 말하기를,
"왕은 말하노라. 상중에 있은 지 3년에 언뜻 대상과 담제의 기간이 지났고, 종묘에 흠향하기 1만 년의 첫번 제향을 거행하였으니, 높은 의식을 태실(太室)에 올렸고 밝은 칭호를 명정(明廷)에 선포하였노라. 공경하여 생각하건대, 우리 황고 태종 공정 성덕 신공 문무 광효 대왕은 영특하고 밝으심은 하늘이 주셨고, 어질고 효성스러우심은 나면서부터 아신 것이라. 우리 태조를 도우시어 집을 키워서 나라를 만드셨고, 무(武)로는 화란(禍亂)을 평정하시고, 문(文)으로는 태평을 이루셨으니, 훌륭한 공과 높으신 덕은 백왕(百王)의 으뜸이라. 황비(皇妣) 창덕 소열 원경 왕태후는 위(位)를 중궁(中宮)에 바로하시어 동쪽 나라의 어머니가 되셔서, 덕으로는 이미 주(周)나라를 이룩한 이039) 와 짝하고, 공으로는 갑(甲)을 끌어 올린 데에 빛이 있다. 삼종(三宗)이 머리로 무일편(無逸篇)040) 에 칭도되고, 강원(姜嫄)을 생민시(生民詩)에 노래하였으니,041) 지금을 예전과 비교하면 세상은 달라도 합하는 것은 같은지라, 내가 조그만 몸으로 큰 기업을 계승하여 지키게 되니, 항상 효도할 것을 생각하여 공경하여 법칙을 따를 따름이다. 영락 22년 7월 12일 을유에 곤복을 입고 면류관을 쓰고, 공손히 황고·황비의 신주를 받들어 태묘에 부(祔)하여 모시고, 깨끗한 의식을 베풀어 향기로운 제물을 바쳤노라. 공이 있으신 분은 조(祖)라 하고, 덕이 있으신 분은 종(宗)이라 하여 큰 복조를 무궁토록 하고, 자리에서 뵈옵는 듯 소리를 듣잡는듯 엄숙하게도 신령이 계신 것 같은지라, 예절이 갖추어졌으매 신령의 뜻이 가만히 합하시리라.
선대를 받드는 날을 당하여 의당 백성에게 미치는 은혜를 줄 것이라. 가히 국내에 대사할 것이니, 영락 22년 7월 12일 새벽으로부터 그 이전에 반역을 음모한 대역죄라든가, 조부모·부모를 때리고 죽였다든가, 아내나 첩이 남편을 죽였다든가, 노비가 상전을 죽였다든가, 요망한 방술로 저주하여 고의로 살인하였다든가, 강도질한 것이라든가, 자식이 아비를, 아내가 남편을, 종이 상전을 죽이려고 음모하다가 미수하였으나, 정상이 현저한 것을 제하고는 이미 발각되었거나 아직 발각되지 않았거나, 이미 판결되었거나 아직 판결되지 아니한 죄를 모두 다 용서하여 물시(勿施)한다. 만일 사면(赦免)하는 교지 이전의 일을 고발해 말하는 자가 있다면 그 죄를 고발한 자에게 적용하리라. 아아, 공경을 극진히 하고 예절을 다함은 곧 근본을 보답하는 정성을 펴는 것이니, 인정(仁政)을 베풀어 새로운 정치를 하고자 함이니라."
하였다. 종묘 가을 제사의 헌관과 여러 집사 및 영녕전(永寧殿)의 헌관과 여러 집사들에게 의정부에서 연회를 내렸다.
- 【태백산사고본】 8책 25권 5장 B면【국편영인본】 2책 612면
- 【분류】왕실-의식(儀式) / 왕실-사급(賜給) / 의생활(衣生活) / 어문학-문학(文學) / 사법-행형(行刑) / 역사-고사(故事)
- [註 034]신로(神輅) : 신주를 모시는 수레.
- [註 035]
군진(君陳) : 주나라 때의 어진 신하.- [註 036]
산보(山甫) : 주나라 때의 어진 신하.- [註 037]
하주(河洲) : 《시경》에서 부부의 화합을 찬미한 시.- [註 038]
위애(渭涘) : 《시경》에서 주나라 왕비를 찬미한 시.- [註 039]
주(周)나라를 이룩한 이 : 주(周)나라를 건국한 문왕(文王)의 어머니인 태임(太姙)과 그의 비(妃) 태사(太姒)를 말함.- [註 040]
무일편(無逸篇) : 은(殷) 나라의 중종(中宗)·고종(高宗)·조갑(祖甲)이 정사에 부지런하였던 것을 찬미한 것임.- [註 041]
강원(姜嫄)을 생민시(生民詩)에 노래하였으니, : 생민시(生民詩)는 주나라가 건국한 뒤에 그들의 조상을 찬송한 시인데, 그들의 조상은 강원(姜嫄)이라는 여자가 들에 나갔다가 거인(巨人)의 발자국을 밟고 임신하여 후직(后稷)을 낳았다 하는데, 이것을 찬미한 노래가 생민시임.○乙酉/行告祭于廣孝殿。 祭訖, 神輅進發, 上服袞冕乘輦, 率群臣前導, 至宗廟祔廟, 仍行秋享大祭。 令孝寧大君 (補)〔𥙷〕 奉安位版於廣孝殿, 行秋享竝如儀。
其宗廟一室祝文曰:
時維七月, 庸薦菲儀。 制終三年, (奚)〔爰〕 擧祔禮。 冀垂歆顧, 庶諒孝思。
二室曰:
聿遵舊典, 庸擧祔儀。 (奚)〔爰〕 値新秋, 式陳祀事。 庶垂英顧, 歆允孝思。
三室曰:
德深垂裕, 實啓丕基。 時値精禋, 庸擧祔禮。 庶諒歆允, 優錫保持。
四室曰:
節屆秋嘗, 式陳禋祀。 禮兼新祔, 爰擧褥儀。 冀諒孝思, 優垂歆顧。
五室曰:
孟秋方屆, 庸薦精禋。 舊典是稽, 聿嚴新祔。 仰惟英鑑, 俯借顧歆。
六室曰:
祔期載屆, 適當嘗祭之辰。 舊章是遵, 庸擧精禋之典。 庶其歆顧, 綏我孝思。
其配享五功臣敎書:
王若曰, 英偉之(之)才, 萃爲一代之碩輔; 勳勞之績, 當享萬世之明禋。 玆當躋祔之辰, 盍擧記功之典? 惟文忠公 河崙氣鍾山岳, 學際天人。 智足以燭微, 量可以輔世。 能謀善斷, 蔚然宰輔之材; 蒼色淵光, 展也文章之伯。 嘗注意於皇考, 起潛龍於在淵。 君陳之嘉謀嘉猷, 黼黻王道; 山甫之令儀令色, 軌範朝端。 喜怒不形, 毁譽徒然。
惟忠武公 英茂稟性忠直, 器宇宏深。 德本仁淸, 肅肅安民之器; 才兼將相, 堂堂鎭國之英。 方麗運之已窮, 知天命之所在, 翊戴我皇祖, 遂成開創之功。 左右我太宗, 聿致隆平之治。 豈惟邦家之彦? 所謂社稷之臣。
惟翼景公 鄭擢稟氣眞純, 秉心忠厚, 巍然世族之冑, 偉矣儒雅之宗。 開國之勳, 溢於史策; 佐命之績, 耀於邦家。 民心飽於具瞻, 勳勞宜於厚報。
惟襄度公 天祐服事左右, 奔走後先。 義膽忠肝, 扶持宗社。 英姿銳氣, 讋服奸兇。 竭力盡忠, 勳名夙著; 折衝禦侮, 國步以寧。 特受皇考之知, 蔚有維城之望。
惟景節公 李來耿介拔俗, 瀟灑出塵。 讜議忠言, 早承家訓; 淸風高節, 超出古人。 炳幾摛忠, 徇義佐命。 功加于時, 德垂後裔。
嗚呼! 生而資其力, 以成其業, 則死當躋其祀, 以酬其功。 非惟國家之良規, 實乃古今之通義。 惟我皇考, 昔在麗季, 翊我太祖, 化家爲國。 及其卽位, 治具畢張, 庶事咸熙, 治功軼古。 禮樂文物, 粲然大明; 燕翼貽謀, 垂裕萬世。 此雖天祚盛德之致, 亦由卿等輔相惠迪之功。
予惟仰成, 嘉乃丕績。 嗟我皇考, 奄至禮陟, 攀號未幾, 寒暑易更, 祥禫已終。 三年之制, 有同駒隙, 哀慕之念, 終天不窮。 爰擇吉辰, 用祔淸廟。 仍爲卿等躋于配位, 以答元勳。 幽明雖殊, 感通伊邇。 苟不與享於萬世, 安能報功於九泉? 於戲! 有猷有爲, 奏膚功於一世; 以妥以侑, 當血食於千秋。
上還齋殿, 釋袞冕, 服絳紗袍、遠游冠, 乘輦還宮。 結彩棚陳雜戲, 成均學生及敎坊皆獻歌謠, 上御勤政殿受賀禮, 仍降上尊號敎書及宥旨。 其敎書:
王若曰, 報本莫大於尊親; 爲治無加於立孝。 式稽古昔, 誕告臣民。 恭惟我皇(妃)〔妣〕 元敬王太后靜體坤元, 明儷乾健。 有儆戒相成之道; 無險詖私謁之心。 在歲戊寅, 値維城之將毁, 佐我皇考, 集不世之大勳。 逮夫正位中宮, 益嚴內治, 彰河洲之淑德, 嗣渭涘之徽音。 予以眇躬, 載纉鴻業, 方仰承於慈訓, 痛遽促於神游。 匪薦殊稱, 曷昭盛烈? 於永樂二十二年七月初一日, 謹率百寮, 奉玉冊加上尊諡曰彰德昭烈元敬王太后。 備擧彌文之禮, 用伸歸美之情。 於戲! 檢玉泥金, 旣已正名而奉冊; 由親及遠, 尙期斂福以錫民。 咨爾有衆, 體予至懷。
其宥旨:
王若曰, 宅憂三祀, 奄經祥禫之期; 廟食萬年, 肇擧蒸嘗之享。 展上儀於太室, 敷渙號於明廷。 恭惟我皇考太宗恭定聖德神功文武光孝大王英明天縱, 仁孝生知。 佐我太祖, 化家爲國。 武定禍亂, 文致太平。 隆功峻德, 卓冠百王。 皇(妃)〔妣〕 彰德昭烈元敬王太后位正中宮, 母儀東土。 德已媲乎興周, 功有光於提甲。 三宗首稱於《無逸》, 姜嫄播詠於《生民》。 以今況古, 異世同符。 予以眇躬, 嗣守丕基。 永言孝思, 恪遵彝典。 於永樂二十二年七月十二日乙酉, 躬服袞冕, 祗奉皇考皇(妃)〔妣〕 神主祔于太廟。 陳有楚之儀, 奉惟馨之薦。 祖有功、宗有德, 衍洪祚於無疆; 見乎位、聞乎聲, 肅威靈之如在。 庶彌文之具輯, 粤神意以潛孚。 屬値奉先之日, 宜推及物之恩, 可大宥境內。 自永樂二十二年七月十二日昧爽以前, 除謀叛、大逆、歐殺祖父母ㆍ父母、妻妾殺夫、奴婢殺主、蠱毒魘魅、謀故殺人, 但犯强盜, 子之於父、妻之於夫、奴之於主, 謀殺未成, 情跡已著外, 已發覺、未發覺, 已決正、未決正, 咸宥除之。 敢以宥旨前事相告言者, 以其罪罪之。 嗚呼! 致敬盡禮, 聿伸報本之誠; 發政施仁, 期底惟新之治。
賜宴宗廟秋享大祭享官、諸執事及永寧殿享官、諸執事于議政府。
- 【태백산사고본】 8책 25권 5장 B면【국편영인본】 2책 612면
- 【분류】왕실-의식(儀式) / 왕실-사급(賜給) / 의생활(衣生活) / 어문학-문학(文學) / 사법-행형(行刑) / 역사-고사(故事)
- [註 0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