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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실록 23권, 세종 6년 3월 23일 기해 5번째기사 1424년 명 영락(永樂) 22년

예문 제학 윤회가 찬한 왕녀의 묘지명

왕녀 묘지명(王女墓誌銘)에 말하기를,

"영락 22년 갑진 2월 경자에 우리 주상 전하의 맏딸이 병으로 졸(卒)하였으니, 연령이 겨우 13세이다. 특히 공주(公主)의 칭호를 주시고, 올해 4월 신유에 고양현(高陽縣) 북쪽 산리동(酸梨洞) 언덕에다 장사한다. 공주는 나면서부터 현숙하고 완순(婉順)하며, 자태와 용모가 단정하고 개결(介潔)하였다. 총명하고 슬기롭기가 범인과 달랐으며, 자라서는 장중(莊重)하고 말이 적었고, 즐거워하고 성냄이 얼굴빛에 나타나지 아니하였다. 양궁(兩宮)께서 자애하기를 더욱 두터이 하였으며, 궁액(宮掖) 가운데에서 모두 공경하고 우러러보아, 엄숙하면서 화목한 행실이 있어 길이 귀척(貴戚)들의 의범이 될 것을 기대하였더니, 불행하게도 나이가 계(筓)할 때도 미치지 못하고 급거히 양궁(兩宮)의 슬픔을 끼치었으니, 진실로 천도(天道)란 앎이 없는 것이라 하겠다. 아아, 슬픈 일이로다."

하고, 명(銘)에 말하기를,

"애처롭다 현철한 아가씨여,

일찍부터 태교(胎敎)를 받으시어

덕도 있고 용모도 뛰어났으며,

능히 삼가하며 효도하였는데,

천도가 창망(蒼茫)하여

어느덧 유명을 달리 하였도다.

국인(國人)들의 슬픔을

어찌 다함이 있으리오.

길한 땅으로 점을 치고

좋은 날로 정했으니,

이미 굳고 또 정밀하여

만세토록 갈무려 계실 곳이라."

하였으니, 예문 제학(藝文提學) 윤회(尹淮)가 찬(撰)한 것이었다.


  • 【태백산사고본】 8책 23권 37장 A면【국편영인본】 2책 589면
  • 【분류】
    역사-사학(史學)

○王女墓誌銘曰:

永樂二十二年甲辰二月庚子, 今我主上殿下之長女, 以疾卒, 年甫十有三歲矣。 特贈公主, 以是年四月辛酉, 葬于高陽縣酸梨洞之原。 公主生而淑婉, 姿容端潔, 聰慧異常。 稍長, 莊重寡言, 喜慍不見于色, 兩宮慈愛尤篤。 宮掖之中, 咸致敬慕, 期以肅雍之治, 永爲戚畹之儀, 不幸年未及䈂, 遽貽兩宮之慟悼, 信乎天道之無知也。 嗚呼悲夫! 銘曰: 嗟嗟淑媛, 夙承胎敎。 有德有容, 克愼克孝。 天道蒼茫, 奄爾不淑。 國人之哀, 曷其有極? 卜地之吉, 揆日之良, 旣固且密, 萬世之藏。

藝文提學尹淮所撰也。


  • 【태백산사고본】 8책 23권 37장 A면【국편영인본】 2책 589면
  • 【분류】
    역사-사학(史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