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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실록23권, 세종 6년 3월 21일 정유 4번째기사 1424년 명 영락(永樂) 22년

불교의 개혁에 관한 예문 봉교 양봉래 등의 상소문

예문 봉교(藝文奉敎) 양봉래(梁鳳來) 등이 상소하기를,

"신 등이 일찍이 듣건대, 덕을 심기는 길게 하기를 힘쓰고, 악을 제거하기는 뿌리부터 하라고 하였습니다. 무릇 잡초를 제거하려는 자가 그 뿌리를 없애지 않으면 오히려 또 덩굴이 뻗어 아름다운 곡식을 해치게 되는 것이니, 하물며 불씨(佛氏)는 넓게 이치에 가까운 비슷한 말로 우리의 어리석은 풍속을 속이고 꾀이려 하며, 우리의 하늘에서 받은 상도(常道)를 혼란하게 하니, 만일 김매듯이 그 근본을 끊어 다스리지 아니한다면, 그것이 다시 불 일어나듯 할 것은 이세(理勢)로 보아 반드시 그렇게 될 것입니다. 우리 성조(聖朝)에서 비록 ‘크게 그 수효를 감손할 것이고 전부 혁파하지는 못한다.’ 하시므로, 신 등이 참람함을 무릅쓰고 위에 말씀을 올린 지가 오래 되었습니다. 근자에 집현전(集賢殿)에서 상소하여 그 해독을 극진히 말하여 고금의 사례를 들어 심히 간절하고 지극한 말로 청하기를, ‘전국에 있는 승려들을 모두 귀속(歸俗)시켜서 길이 그 뿌리를 끊어버리라. ’고 하였습니다. 소장이 올라가니 전하께서는 좋은 말이라고 칭찬하시니, 신 등은 즐거움을 이길 수 없어 신성한 영단이 있기를 바라고 있은 지가 여러 날인데, 전하께서는 즉시 윤허하시지 아니하시고 다만 각종(各宗)의 사사(寺社)의 수를 줄인다고만 하시니, 신 등은 결망(觖望)되었나이다. 옛날에 부열(傅說)고종(高宗)에게 고하기를, ‘알기가 어려운 것이 아니고 행하기가 어렵다.’ 하였으니, 선(善)한 말을 듣는 것이 귀하다는 것은 장차 실행하기 때문인데, 전하께서 비록 집현전의 말을 좋게 여기셨으나 마침내 시행하시지 아니하시니, 전하로서는 좋은 것을 알아 주신 아름다움만은 있게 되고, 여러 신하들이 좋은 말을 드렸다는 미명만은 있으나, 실지가 아무 것도 없어서 선정(善政) 선치(善治)에 보탬이 없게 되었나이다.

그윽이 생각하건대, 불씨(佛氏)의 폐해는 한(漢)·수(隋)·당(唐) 이래로 사책에 실려 있으니 반드시 조목을 들어 나열할 것은 없고, 우선 근대의 일만 가지고 말한다면, 전조 태조가 깊이 쌓인 폐단을 징계하여, 후대(後代)의 군신(群臣)들이 사사로이 원찰(願刹) 짓는 것을 금지하였는데, 그 때 공신 최응(崔凝) 등이 그 법을 제거하자고 청하였으나, 태조는 말하기를, ‘신라 말년에 불씨(佛氏)의 설이 사람마다 골수에 젖어 있으므로, 사생 화복(死生禍福)이 모두 부처가 하는 짓이라 하였으나, 이제 삼한(三韓)이 겨우 통일되어 인심이 진정되지 못하였으니, 만일 급작히 혁폐하였다가는 반드시 반측(反側)할 자가 생길 것이라.’ 하고, 바로 훈계(訓戒)를 지어 말하기를, ‘마땅히 신라(新羅)를 거울삼아서 불사(佛寺)를 많이 짓다가는 망하기에 이른다.’ 하였으니, 이것은 후세에 점차로 없애어 가라고 시사한 뜻입니다. 그 뒤에는 없애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 교를 믿음이 일신 월성(日新月盛)하여 재력을 다하여 사원(寺院)을 많이 지어서 어떠한 변괴든지 있게 되면 문득 불사(佛事)를 하게 되니, 이것을 소재 도량(消災道場)이라고 하는데, 반승(飯僧)이 날마다 자못 3만명으로 헤아리게 되었으니, 심지어는 백고좌(百高坐)를 궁중(宮中)에 설치하고 임금이 친히 제자례(弟子禮)를 올리게 되어도 마침내 복을 얻기는 커녕 난망(亂亡)에 이르렀으니, 가령 태조가 그 근본을 다 뽑아 없애었다면 후세에 혹신(酷信)하는 폐단이 이 정도에 이르지는 아니하였을 것이니, 이는 근대의 밝은 거울이 될 것입니다.

우리 태종 대왕은 하늘이 주신 용지(勇智)의 자품을 받으셨고, 날로 넓고 밝으신 학문을 새롭게 하시어 깊이 그 폐단을 아시고 사사(寺社)를 도태하고 전민(田民)을 삭감하여, 뒷사람에게 점차로 혁폐할 단서를 보여주었으니, 그 일을 염려하심이 깊고 멀었으며, 우리 전하께서는 천성이 총명하시고 학문이 고금에 으뜸이시어 무릇 시위(施爲)하시는 일이 멀리 삼대(三代)를 법삼았고 가까이 태종(太宗)을 계술(繼述)하셨으니, 실로 만세의 성자 신손(聖子神孫)이 본받을 바인데, 어찌하여 불씨(佛氏)의 탄망(誕妄)한 것을 밝게 아시면서 인순(因循)하고 구차하시어 모두 탕척(盪滌)하시지 못하십니까.

신 등은 생각하건대, 뒷세상에서 반드시 말하기를, ‘우리 조상은 하늘이 내신 성군으로 건강(乾剛)하신 영단이 있으시며, 조정에 있는 여러 신하도 그 폐단을 극진히 상주(上奏)하였으나 오히려 그대로 좇지 못한 것을 보면, 불교가 가히 없앨 수 없다는 것을 믿을 수가 있겠다. ’고 할 것이니, 그렇다면 어찌 후세의 숭배하는 폐단이 전조의 말기와 같지 아니할 것을 바라겠나이까. 하물며 지금 세자 저하(世子邸下)는 바야흐로 학문에 뜻을 두시니 반드시 이단(異端)을 배척하고 우리 도를 밝혀서 어렸을 때부터 바른 길로 교양하실 것을 생각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옛날 당나라 한유(韓愈)원도(原道)를 지어 불(佛)·노(老)의 그릇됨을 배척하면서 말하기를, ‘요행하게도 삼대(三代) 뒤에 나오게 되어서 우(禹)·탕(湯)·문(文)·무(武)·주공(周公)·공자(孔子)에게 내침을 당하지 아니하였으며, 또 불행하게도 삼대(三代) 전에 나오지 아니하여 ····주공·공자에게 바로 잡히지 못하였다. ’고 하였으니, 이제 전하는 몸소 ···의 학(學)과 ··주공의 도를 갖추셨으니, 이 때에 전부 파하시지 아니하신다면 신이 홀로 전하만을 위하여 애석하게 여길 뿐 아니라, 후세를 위하여 더욱 유감스럽게 여기는 바입니다. 엎드려 바라오니 전하께서는 특히 근일의 여러 신하의 청을 윤허하시어, 길이 이적(夷狄)의 허탄하고 망령된 법을 없애어 제왕(帝王) 성리(性理)의 학문을 밝혀 자손 만대의 법이 되게 하셨으면 다행함을 이길 수 없겠나이다. 신 등의 직분이 언관(言官)이 아니므로 극히 참람되고 넘친 줄을 아오나, 요행히도 사필(史筆)로써 가깝게 모시고 있어 차마 입을 다물고 있을 수가 없으므로 이 기회에 감히 작은 소견으로 삼가 죽기를 무릅쓰고 아뢰오니, 엎드려 성상의 재단만 기다리겠나이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8책 23권 34장 B면【국편영인본】 2책 588면
  • 【분류】
    사상-불교(佛敎) / 역사-고사(故事) / 정론(政論)

    ○藝文奉敎梁鳳來等上疏曰:

    臣等嘗聞, 樹德務滋, 除惡務本。 夫去草者不去其根, 則猶且滋蔓, 以害嘉穀, 況以佛氏闊宏近理之說, 誑誘我愚俗, 汨亂我天常, 若不鋤治, 以絶其根本, 則其爲復熾, 勢之必至也。 在我聖朝, 雖曰大損, 未能頓革, 臣等欲將狂僭, 仰徹宸旒久矣。 近者集賢殿上疏, 極陳其害, 援古質今, 辭甚切至, 請以闔境僧尼, 盡令歸俗, 永絶其根。 疏上, 殿下稱善, 臣等不勝欣抃, 顒望神斷有日矣。 殿下不卽兪允, 只令減省各宗寺社, 臣等觖望。 昔傅說告于高宗曰: "非知之艱, 行之惟艱。" 所貴乎聞善者, 將以行之也。 殿下雖善集賢之言, 竟未施行, 則殿下有知善之美, 群臣有納誨之名, 而無其實, 將無補於善政善治矣。 竊惟佛氏之害, 歷以來, 載在簡策, 不必條陳, 姑以近代之事言之。 前朝太祖深懲積弊, 禁後代群臣私作願刹, 其時功臣崔凝等請除其法, 太祖以謂: "新羅之季, 佛氏之說, 入人骨髓, 人皆以爲死生禍福, 悉佛所爲。 且今三韓甫一, 人心未定, 若遽革之, 必生反側。" 乃作訓曰: "宜鑑新羅多作佛寺, 以底於亡。" 此則示後世漸次除治之意也。 厥後非惟不能除治, 反崇信其敎, 日新月盛, 殫竭財力, 多置寺院, 凡有變怪, 輒作佛事, 名曰消災道場。 至於飯僧, 以三萬計者, 殆無虛月, 甚者, 設百高坐於宮中, 親執弟子之禮, 卒不獲福, 而遂至亂亡。 假令太祖盡拔根本, 則後世酷信之弊, 不至此極矣。 此近代之明鑑也。

    惟我太宗大王以天錫勇智之資、日新緝熙之學, 深知其弊, 而汰寺社、削田民, 以示後來漸革之端, 其慮事深長矣。 恭惟我殿下, 天性聰明, 學冠古今, 凡所施爲, 遠法三代, 近述太宗, 實萬世聖子神孫之所取則也。 奈何灼知佛氏誕妄之實, 而因循苟且, 未盡盪滌乎? 臣等以爲, 後世必曰: "我祖以天縱之聖、乾剛之斷, 在朝群臣極陳其弊, 而猶不聽從, 佛敎之不可無也信矣。" 然則安知後世崇奉之弊, 不似前朝之季乎? 矧今世子邸下方志于學, 必當斥異端、明斯道, 蒙以養正之秋也, 不可不慮也。

    韓愈《原道》, 以斥佛老之非曰: "幸而出於三代之後, 不見黜於周公孔子也, 其亦不幸而不出於三代之前, 不見正於周公孔子也。" 今殿下躬之學、周公之道, 不於此時頓革其弊, 則臣不獨爲殿下惜, 尤爲後世而憾焉。 伏望殿下, 特允近日群臣之請, 永絶夷狄誕妄之法, 以明帝王性理之學, 爲子孫萬世之法, 不勝幸甚。 臣等職非言官, 極知僭踰, 然幸忝載筆, 獲近耿光, 不忍含默, 屬玆機會, 敢以管見, 謹昧死以聞, 伏惟聖裁。


    • 【태백산사고본】 8책 23권 34장 B면【국편영인본】 2책 588면
    • 【분류】
      사상-불교(佛敎) / 역사-고사(故事) / 정론(政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