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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실록 23권, 세종 6년 3월 6일 임오 2번째기사 1424년 명 영락(永樂) 22년

예문 제학 윤회가 찬한 정선 공주의 묘지명

정선 공주 묘지명(墓誌銘)에 이르기를,

"정선 공주는 우리 태종(太宗)의 비(妃)이신 원경 왕태후(元敬王太后)의 막내따님이니, 여흥 부원군(驪興府院君) 문도공(文度公) 민제(閔霽)가 그의 외조(外祖)이다. 숭록 대부(崇祿大夫) 의산군(宜山君) 남휘(南暉)에게 출가하였으니, 의령 부원군(宜寧府院君) 충경공(忠景公) 남재(南在)의 손부(孫婦)이었다. 공주(公主)는 나면서부터 어질고 아름다웠으며, 덕과 용모가 아름다웠다. 이미 출가하여 남편을 순하게 받들며 시어머니 섬기기를 예로 하였고, 치가(治家)함에 부지런하고 검박하게 하여 조금도 귀한 세력이라 자긍(自矜)하지 아니 하였다. 아들 하나를 낳았으니, 원손(元孫)이요, 딸 하나도 있는데, 모두어리다. 영락 22년 정월 임인에 병환으로 돌아가니, 나이 21세였다. 모년 모월 모일에 모주(某州)의 모원(某原)에 장사하였다."

그 명(銘)에 이르기를,

"왕가의 파벌로서 무성한 오얏나무에 광채가 더하였다. 엄숙하고 화한 덕은 남편이나 집 사람들에게 마땅하게 하였다. 수(壽)는 비록 짧다 하나, 그 남은 것은 길도다. 좋은 돌에다 명(銘)을 새겨 오래도록 잊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예문 제학(藝文提學) 윤회(尹淮)가 찬(撰)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8책 23권 27장 A면【국편영인본】 2책 584면
  • 【분류】
    역사-사학(史學)

貞善公主墓誌銘, 其辭曰:

貞善公主, 我太宗元敬王太后之季女也。 驪興府院君文度 閔公, 其外祖也。 適崇祿大夫宜山君 南暉, 故相宜寧府院君忠景公之孫也。 公主生而淑婉, 德容雙美。 旣歸, 承其夫以順, 事其姑以禮, 其治家勤且儉, 未嘗以貴勢自矜。 生子男一人曰元孫, 女一人, 皆幼。 永樂二十二年正月壬寅, 以疾卒, 年二十一。 以某年某月某日, 葬于某州之某原。 其銘曰: 天潢演派, 穠李增華。 肅雍之德, 宜室宜家。 壽雖云短, 其存者長。 刻銘貞石, 以永不忘。

藝文提學尹淮所撰也。


  • 【태백산사고본】 8책 23권 27장 A면【국편영인본】 2책 584면
  • 【분류】
    역사-사학(史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