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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실록23권, 세종 6년 2월 8일 갑인 1번째기사 1424년 명 영락(永樂) 22년

평양 부원군 김승주의 졸기

평양 부원군(平陽府院君) 김승주(金承霔)가 졸하였다. 승주전라도 순천부(順天府) 여수(麗水) 사람으로 정주 목사(定州牧使) 김유정(金惟精)의 아들인데, 너그럽고 중후하며 위의(威儀)가 있었다. 홍무(洪武) 경신(庚申)에 비로소 벼슬하여 흥위위 별장(興威衛別將)에 제수되었고, 갑자년에 군기 소윤(軍器少尹)이 되고, 기사년에 지풍주사(知豐州事)로 나갔다. 그 때 연변 주군(沿邊州郡)에 수어(守禦)가 소홀하여 왜구(倭寇)가 여러 번 침범하였으니, 백성이 산업을 잃게 되었다. 승주가 고을을 지킨 지 얼마 되지 아니하여, 가 또 들어와 도적질하였다. 이에 기회를 타서 응변(應變)하니 가 침범하지 못하였다. 고주(高州)로 옮겼다가 계유년에 전중 경(殿中卿)에 임명되고, 갑술년에 의흥 삼군부 첨절제사(義興三軍府僉節制使)가 되고, 형조 전서(刑曹典書)로 옮겨 예(例)에 따라 동북면(東北面)을 맡게 되었고, 그 이듬해에 그 도의 찰리사(察理使)가 되고, 호조·이조 전서(典書)를 지나서, 중추원 부사(中樞院副使)와 길주도 찰리사에 올라서 자헌계(資憲階)를 더하고, 경상도 병마 도절제사(兵馬都節制使)로 옮겼다가 건문(建文) 경진년에 추충 익대 좌명 공신(推忠翊戴佐命功臣)의 호(號)를 받고, 여산군(麗山君)에 봉함을 받았다. 의흥 삼군부 중군 동지총제(義興三軍府中軍同知摠制)로 천직되어 임오년에 참지승추부사(參知承樞府事) 여성군(麗城君)으로 강계도 도병마사(江界道都兵馬使)를 겸임하였고, 영락(永樂) 계미년에 참지의정부사(參知議政府事)가 되었고, 갑신년에 길주도 도안무찰리사(都安撫察理使)에 임명되었다. 을유년에 공조 판서로, 병술년에 지의정부사(知議政府事)로 옮기고, 정해년에 동북면 병마 도절제사(東北面兵馬都節制使)에 임명되었으며, 영흥 부윤(永興府尹)을 겸임하였다가 도순문찰리사(都巡問察理使)로 옮겼고, 인하여 병마 도절제사로 영흥 부윤을 겸임하였다. 무자년에 여산군(麗山君)에 임명되었고, 기축년에 야인(野人)이 경원(慶源)을 침략하여 진수(鎭守)와 변장(邊將)을 죽였고, 관군이 여러 번 싸워서 여러 번 패하니, 태종승주를 불러 말하기를,

"그 도의 장수들이 능히 도적을 억제하지 못하고 도리어 사졸(士卒)들만 상해당하게 되니, 내가 실로 마음 아프게 생각한다. 경이 그 곳에 가라."

하고, 좋은 말과 안팎 옷감을 내려주었다. 명을 받고 즉시 갔다가 그 다음 해에 참찬의정부사(參贊議政府事)가 되었고, 계사년에 서북면 도순문 찰리사(西北面都巡問察理使)로 병마 도절제사(兵馬都節制使)·평양 부윤(平壤府尹)을 겸임하였고, 갑오년에 병조 판서가 되고, 을미년에 숭정계(崇政階)로 올라 평양군(平陽君)으로 고쳐 봉하여, 판중군 도총제부사(判中軍都摠制府事)가 되었고, 정유년에 평양 부원군(平陽府院君)에 봉함을 받고 병환으로 집에서 돌아가니, 나이 71세이었다. 부고가 들리매, 3일 동안 조회를 폐하고, 조문과 부의를 보냈으며, 장사를 관에서 도와주었다. 시호는 양경(襄景)이라 하였으니, 장수로서 공로가 있는 것을 양(襄)이라 하고, 의(義)로 말미암아 절제가 있는 것을 경(景)이라 하였다. 아들이 다섯이 있으니, 김유량(金有良)·김유검(金有儉)·김유온(金有溫)·김유공(金有恭)·김유양(金有讓)이었다.


  • 【태백산사고본】 8책 23권 17장 B면【국편영인본】 2책 580면
  • 【분류】
    인물(人物) / 왕실-사급(賜給)

    ○甲寅/平陽府院君 金承霔卒。 承霔, 全羅道 順天府 麗水人也。 定州牧使惟精之子, 寬重有容儀。 洪武庚申始仕, 拜興威衛別將。 甲子, 拜軍器少尹。 己巳, 出知豐州事。 時沿邊州郡守禦虛疎, 倭寇屢侵, 民失産業。 承霔守邑未幾, 又來寇, 乃乘機應變, 不能侵, 遷高州。 癸酉, 拜殿中卿。 甲戌, 拜義興三軍府僉節制使, 遷刑曹典書, 例典東北面, 踰年, 授其道察理使。 歷戶吏曹典書, 陞中樞院副使、吉州道察理使, 加資憲, 移慶尙道兵馬都節制使。 建文庚辰, 賜推忠翊戴佐命功臣號, 封麗山君, 遷義興三軍府中軍同知摠制。 壬午, 參知承樞府事、麗城君江界道都兵馬使。 永樂癸未, 參知議政府事。 甲申, 拜吉州道都按撫察理使。 乙酉, 拜工曹判書。 丙戌, 遷知議政府事。 丁亥, 拜東北面兵馬都節制使兼永興府尹, 遷都巡問察理使, 仍兼兵馬都節制使、永興府尹。 戊子, 拜麗山君。 己丑, 野人侵掠慶源, 戕殺鎭守邊將, 屢戰屢敗。 太宗承霔曰: "其道將帥不能制寇, 反害士卒, 予實痛之。 卿其往哉!" 賜良馬、表裏, 於是受命而往。 越明年, 拜參贊議政府事。 癸巳, 拜西北面都巡問察理使兼兵馬都節制使平壤府尹。 甲午, 拜兵曹判書, 乙未, 陞崇政, 改封平陽君判中軍都摠制府事。 丁酉, 封平陽府院君, 以疾卒于第, 年七十一。 訃聞, 輟朝三日, 致弔致賻, 官庀葬事。 諡襄景, 甲冑有勞襄, 由義而制景。 子五: 有良有儉有溫有恭有讓


    • 【태백산사고본】 8책 23권 17장 B면【국편영인본】 2책 580면
    • 【분류】
      인물(人物) / 왕실-사급(賜給)