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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실록 23권, 세종 6년 2월 7일 계축 2번째기사 1424년 명 영락(永樂) 22년

사찰의 전토와 사사(寺社) 등의 개혁에 관한 사헌부 대사헌 하연 등의 상소문

사헌부 대사헌 하연(河演) 등이 상소하기를,

"신 등이 들으니 구담(瞿曇)씨정반왕(淨飯王)의 세적(世嫡)으로 군부(君父)를 버리고 작위(爵位)도 사절하여 머리를 깎고 산중에 거처하여 그 도를 이루게 되었는데, 그 뒤 역대(歷代)에서 혹 믿기도 하고 혹 배척하기도 하였다 하며, 제양(齊襄)양무(梁武)는 오로지 불법에 친압하여 혹하기만 하였으나, 전토(田土)를 주거나 작질(爵秩)을 올려 준 것은 없었으며, 전조(前朝)에서도 이 법을 혹신(酷信)하여 촌락이나 도읍에 정사(精舍)를 지어 놓고, 유승(遊僧)들이 교화하고 꾀어서 시주(施主)하기를 한없이 하여, 전토(田土)와 노비(奴婢)까지 딸려 주어 극진히 봉양하였고, 또 작자(作者)에 대한 시선(試選)하는 법으로 종문(宗門)에 작질(爵秩)을 세워 그들로 하여금 욕심을 채우게 하며, 그 뜻을 편하게 하였으나, 그 스승의 가르침에는 등져 버린 것입니다. 성조(盛朝)에 이르러서 정도(正道)가 소명(昭明)하게 되자 거짓과 망령스러운 것은 저절로 헐어지게 되었습니다. 우리 태종께서는 하늘이 내신 성인이시어 간사한 것을 버리시되 의심이 없으셔서, 사우(寺宇)도 삭제(削除)시키고 장획(臧獲)도 거두어 들였으니 진실로 옛날에도 없는 성대한 공렬(功烈)이나, 오직 시선(試選)과 작질(爵秩)의 번거로움과, 전토(田土)로 봉양하는 폐단만이 구습(舊習)대로 따라가게 하여 지금까지 혁파하지 못하였습니다.

신 등은 그윽이 생각하건대, 동포인 적자(赤子)들도 굶는 것을 면하지 못하는데, 놀고 먹는 승려들이 가만히 꾀어 먹을 것을 앗아가는 것부터 벌써 사리에 어긋나는 일인데, 또 무엇 때문에 전토를 주어서 자봉(自奉)하는 데에 풍족하게 하겠습니까. 이번에 흥천사(興天寺) 중이 그들의 시선(試選)을 당하여 감히 유밀과(油蜜果)를 사용하였으며, 금령을 범하여 술을 마셨으며, 분향하면서 도를 닦는 중의 인원수를 감하여, 그 남는 것으로 답청(踏靑)의 오락과 중양(重陽)의 비용에 써서 방자하게도 망령된 행동을 하고, 금법을 꺼리지 아니하고 가벼이 국법을 범하여, 그 문초 받을 때에는 서로 해치기를 꾀하여 참소하여 그들의 사장(師長)을 헐뜯으니, 자못 청정(淸淨)의 가르침을 잃었으며, 제 자신을 반성하여 착하지 못하니, 어찌 마음을 닦고 법을 세워 국가에 도움이 되겠습니까.

사사(寺社)의 전토(田土) 수효로써 사는 중의 인원수를 비교하여 보면, 영통사(靈通寺)의 밭이 2백 결인데, 살고 있는 중의 인원수는 겨우 7명이요, 운암사(雲巖寺)의 밭이 2백 결인데, 살고 있는 중의 수는 겨우 4명이며, 흥덕사(興德寺)의 밭이 2백 50결인데, 살고 있는 중의 수는 겨우 20명이며, 흥복사(興福寺)의 밭이 1백 40결인데 살고 있는 중은 10명이니, 이것으로 본다면 그 나머지 다른 사사(寺社)도 또한 이와 같을 것입니다. 이것은 중외 사사(中外寺社)에 분속(分屬)된 1만 1천 1백여 결의 좋은 밭을 어디에 그대로 버려 둔 것인지 진실로 개탄할 일입니다.

어떤 자는 말하기를, ‘중은 능히 세상에 이익을 주는 것이므로 없어서는 아니 될 것이라 하나, 삼대(三代) 이상은 진실로 불법이 없었으나, 임금은 밝고 신하는 충성하였으며, 나라의 복조도 길었거니와 연대도 오래 갔습니다. 그 후 요흥(姚興)석륵(石勒)은 심혈을 경주하여 불타를 스승으로 섬겼으나, 도징(圖澄)이 능히 조(趙)나라를 보존시켜 주지 못하였고, 나한(羅汗)진(秦)나라 망하는 것을 구원하지 못하였으니, 옛일을 징험하여 보아도 저와 같고, 지금을 증거 삼아 보아도 이러하니, 중은 국가에 이익됨이 없고 세상에 누(累)만 끼치는 것이 고금이 같습니다. 당(唐) 고조(高祖)도 역시 사문(沙門)을 미워하여 서울에다 다만 절[寺] 두 군데와 관(觀) 두 군데만 남겨 두고, 지방에는 주(州)마다 두 군데만 두고 나머지는 모두 폐지하였으니, 그 천하의 넓음과 사해(四海)의 큰 것으로도 오히려 이와 같거늘, 하물며 우리 나라는 국토가 편벽되고 작은데, 어떻게 사우(寺宇)를 많이 둘 수가 있으며, 전토(田土)를 많이 붙여 줄 수가 있겠습니까. 엎드려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태종의 뜻을 잘 계승하셔서 우리 도(道)를 넓히시고 이단(異端)은 배척하시어, 서울에 다만 세 군데만 두게 하고, 유후사(留後司)에 한 군데, 여러 도에는 두서너 군데에 지나지 아니하게 하고, 그 밖에는 모두 없앨 것이며, 그리고 남겨 둔 여러 사찰에는 중 가운데 계행(戒行)에 연숙(鍊熟)한 자로 주장하게 할 것이며, 이익을 탐하거나 행실이 추악한 자는 하나라도 참여함이 없도록 하고, 인하여 시선(試選)의 법까지 폐지하여 승직(僧職)에 비답을 내리지 말 것이며, 승록사(僧錄司)까지 모두 개혁하여 청정(淸淨)의 도를 수행하게 하고, 밝게 여래(如來)의 가르침과 같게 하면 오직 국가의 다행일 뿐 아니라, 승도(僧道)에 있어서도 다행할 일입니다."

하니, 정부(政府)와 육조(六曹)에 내려 의논하게 하였다. 여천 부원군(驪川府院君) 민여익(閔汝翼)과 형조 판서 권진(權軫)·참찬 안순(安純)·판서 오승(吳陞)·총제(摠制) 전흥(田興)·참판 이명덕(李明德)·최사강(崔士康)·참의 심도원(沈道源) 등이 모두 도태시키고 폐지하라고 하였으나, 유독 허조는 아뢰기를,

"개혁하여도 점차로 하여야 하며, 사사(寺社)는 도태시킬지언정 승선(僧選)·승비(僧批)·승록(僧錄) 세 가지 일은 천천히 해야 합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불법을 이미 이단(異端)이라 하면 그것이 나라에 이익이 없는 것도 필연적이나, 이 법이 세상에 행한 지가 오래 되어, 어떻게 사람마다 그것이 이단(異端)이어서 쓸데없는 것이라는 것을 실지로 알려 주겠는가. 나도 또한 급작스럽게 개혁할 수는 없는 일이라 생각한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8책 23권 15장 A면【국편영인본】 2책 578면
  • 【분류】
    사상-불교(佛敎) / 역사-고사(故事) / 인사-선발(選拔)

○司憲府大司憲河演等上疏曰:

臣等竊聞, 瞿曇氏淨飯王之世嫡, 棄君父辭爵位, 斷髮居山, 乃成其道。 厥後歷代或信或斥。 齊襄 專事昵惑, 然未有錫土田、陞爵秩者也。 前朝酷信, 里陌闤闠, 皆立精舍。 游僧化誘, 舍施無限, 納土田、屬臧獲, 極其奉養。 又立作者試選之法、宗門爵秩之事, 使之窮其欲、逸其志, 而背其師敎, 至于盛朝, 正道昭明, 僞妄自毁。

惟我太宗, 天縱生知, 去邪勿疑, 削除寺宇, 遂收其臧獲, 誠曠古所無之盛烈也。 獨試選爵秩之煩、土田奉養之弊, 因循舊習, 尙未盡革。 臣等竊謂, 同胞赤子未免餓莩, 遊手緇流陰誘奪食, 旣背於理, 又何給田, 以優自奉乎? 今者興天寺僧當其試選, 敢用油蜜之果, 犯令飮酒, 擅減焚修僧額, 竊其贏餘, 以供踏靑之娛、重陽之費, 肆欲妄行, 不憚科禁, 輕犯憲章。 及其劾問, 謀欲相害, 讒口嘵嘵, 詆毁師長, 殊失淸淨之敎。 反身不善, 烏有修心作法, 裨益於國家哉?

肆以寺社土田之數, 考覈居僧之額, 靈通之田二百結, 而居僧纔七; 雲巖之田二百結, 而居僧纔四; 興德之田二百五十結, 而居僧纔二十; 興福之田一百四十結, 而居僧一十。 由是觀之, 其他寺社, 亦皆類此。 是則中外寺社, 分屬一萬一千一百餘結之良田, 委之何地。 誠可慨念。

或者有曰: "僧能利世, 不可無。"則三代以上, 固無佛法, 然而君明臣忠, 祚長年久。 彼姚興石勒傾心師事, 然而圖澄不能存; 羅汗無救亡。 徵之於古而如彼, 證之於今而若此, 僧之無益於國, 有累於世, 古猶今爾。 高祖亦惡沙門, 京師只留寺二所、觀二所, 諸州各留二所, 餘皆罷之。 其以天下之廣、四海之大, 尙且如此, 況我國壤地偏小, 豈宜多置寺宇, 濫屬土田乎? 伏望殿下, 善繼太宗之志, 恢弘斯道, 排斥異端, 其於京師只留三所, 留後司一所, 諸道不過二三所, 餘皆革除。 其留諸所, 擇僧中之練行者俾主之, 貪利麤行者毋或與焉。 仍罷試選之法, 勿下僧職之批。 僧錄之司, 竝宜革之, 以修淸淨之道, 以明如來之敎, 非惟國家之幸, 亦於僧道幸甚。

下政府、六曹議之。 驪川府院君 閔汝翼、刑曹判書權軫、參贊安純、判書吳陞、摠制田興、參判李明德崔士康、參議沈道源皆以爲可汰可罷, 獨許稠曰: "革之宜漸, 寺社可汰。 僧選、僧批、僧錄三事可徐之。" 上曰: "佛法旣爲異端, 其無益於國必矣。 然此法久行於世, 安得令人人遽知其異端無用之實乎? 予亦以爲未可遽革也。"


  • 【태백산사고본】 8책 23권 15장 A면【국편영인본】 2책 578면
  • 【분류】
    사상-불교(佛敎) / 역사-고사(故事) / 인사-선발(選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