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국 사신 규주와 범령이 가지고 있던 산수도 및 도호의 찬과 시를 구하다
규주와 범령이 가지고 있던 산수도(山水圖) 및 도호(道號)의 찬(讚)과 시(詩)를 구하니, 직집현전(直集賢殿) 어변갑(魚變甲)이 지은 산수도찬(山水圖讚)에 이르기를,
"층층이 솟은 뫼는 만 길이요,
흐르는 물은 천 구비라.
구름과 아지랭이는 나뭇가지에서 일고,
다락과 높은 집은 바위에 섰도다.
보일듯 말듯
방호(方壺)인가 봉래(蓬萊)인가.
상인(上人)의 참된 생각
천기(天機)를 앗아 왔네.
그린 솜씨 묘한 재주
정미함을 캘 수 없다.
아아,
이것이 이른바
마힐(摩詰)의 그림을 보고
그 속에 시(詩)가 들어 있다 함이로다."
직집현전(直集賢殿) 유상지(兪尙智)의 산수도시(山水圖詩)에 이르기를,
"연기 서린 물과 구름 낀 산이 옅고 짙은데,
여기저기 누각들은 나무 속에 쌓여 있네.
돌길을 돌고 돌아 찾을 곳은 어디냐.
뾰족 솟은 봉우리 사이로 굴러 들어가리라."
집현전 교리(集賢殿校理) 유효통(兪孝通)의 시(詩)에 이르기를,
"손님이 찾아와서 산수도를 보이는데,
언뜻 보니 아아 방호산이 여기로다.
층층으로 섰는 뫼는 천첩 구름속에 숨어 있고,
옛 절은 아득하게 두어 그루 고목 사이에 섰구나."
집현전 부제학(集賢殿副提學) 신장(申檣)의 시(詩)에 이르기를,
"검푸르게 우거진 나무 숲 층층이 덮여 있고,
만경창파 물머리에 일엽편주(一葉片舟) 떠 있구나.
절벽과 먼 뫼는 은은히 비치는데,
보면서 오노라니, 아아, 여기가 단구(丹丘)이었던가 하노라."
집현전 직제학(集賢殿直提學) 김상직(金尙直)의 죽헌시(竹軒詩)에 이르기를,
"궁벽한 땅에 고요히 사노라니,
헌창을 열어놓고 대숲과 마주 보네.
맑고 여윈 그 자태를
눈 서리인들 어찌하리.
저 달이 떠오르면 금빛으로 체[篩]질하고,
바람이 불어오면 구슬소리 알연(戛然)하였다.
스님이 보낸 임과 마주 앉아서,
무심히 오손도손 속삭여 보네."
신장(申檣)의 매창시(梅窓詩)에 이르기를,
"옥 같은 고운 송이 눈[雪]을 뚫고 방긋 웃네.
맑고 맑은 네 모습은 꽃 가운데 으뜸이다.
저무는 해 차거운 마음 뉘라서 알아 줄까.
오직 높으신 그 임만이 꼭 오셔야 하리."
어변갑(魚變甲)의 설암시(雪庵詩)에 이르기를,
"허공에 솟은 설악 몇 층이더냐.
암자 안에 고승은 벽만 보고 있더라.
맑은 정신 깨끗한 기골 마음은 안 매이니,
끓고 찌고 골치 아픈 인간 세상 아니 보리."
집현전(集賢殿) 부교리(副校理) 안지(安止)의 화관음찬(畫觀音讚)에 이르기를,
"푸른 물구비 한 구비에
천첩 돌벼랑 둘려있고,
흰 옷 입고 미소짓는 참된 모습
소[淵]처럼 맑고 달처럼 밝도다.
몸은 여기에 있으나
마음은 어디에도 없도다.
여러 중생들아, 다 오너라.
괴로움 뽑아 주고 즐거움 피게 하리."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8책 23권 9장 B면【국편영인본】 2책 575면
- 【분류】어문학-문학(文學) / 외교-왜(倭)
○圭籌、梵齡求所持山水圖及道號讃與詩, 直集賢殿魚變甲作山水圖讃曰:
層巒萬仞, 流水千回。 雲嵐樹梢, 樓閣巖隈。 隱映出沒, 方壺、蓬萊。 上人意匠, 逈奪天機。 模寫之妙, 莫究其微。 嗚呼! 豈所謂觀摩詰之畫, 畫中有詩者歟?
直集賢殿兪尙智山水圖詩曰:
烟水雲山淡又濃, 參差樓閣樹重重。 盤回石徑無尋處, 轉入岧嶢第幾峰。
集賢殿校理兪孝通詩曰:
有客來携山水圖, 乍看無乃寫方壺。 層巒隱見雲千疊, 古寺微茫樹數株。
集賢殿副提學申檣詩曰:
樹林蓊鬱蔭層樓, 萬頃波頭一葉舟。 絶壁遙岑相隱映, 看來却訝在丹丘。
集賢殿直提學金尙直竹軒詩曰:
地僻居仍靜, 開軒對竹林。 自將淸瘦態, 不受雪霜侵。 月上篩金色, 風來戞玉音。 高師遣有相, 讌坐樂無心。
申檣梅窓詩曰:
玉蘂嬋姸冒雪開, 淸標宜作百花魁。 歲寒心事誰相識? 唯有高人出定來。
魚變甲雪庵詩曰:
雪岳凌空聳幾層? 庵中面壁一高僧。 神淸骨冷心無累, 不瞰人寰熱腦蒸。
集賢殿副校理安止畫觀音讃曰:
蒼灣一曲, 翠壁千疊。 素衣眞相, 淵澄月白。 身在於斯, 心則無着。 於諸衆生, 發苦與樂。
- 【태백산사고본】 8책 23권 9장 B면【국편영인본】 2책 575면
- 【분류】어문학-문학(文學) / 외교-왜(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