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국왕의 사신 규주·범령 등 135명이 토산물을 바치다
일본 국왕의 사신 규주(圭籌)·범령(梵齡)과 도선주(都船主) 구준(久俊) 등 1백 35인이 대궐에 나아가서 토산물을 바치니, 임금이 인정전에 나아가서 예를 받은 뒤에, 규주와 범령은 대궐 안에 들어오도록 명하고, 구준은 대궐 밖에 있도록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너희들이 지난해에는 바닷길에 탈 없이 고국으로 돌아갔고, 이제 또 무사히 왔으니, 내 몹시 기쁘노라. 국왕이 나의 요청을 기다리지 않고 여러섬에 피로(被擄)된 사람을 찾아서 돌려보내 주니, 실로 희열(喜悅)하여 마지 않는다."
하니, 규주 등이 대답하여 아뢰기를,
"피로되었던 사람 중에 과군(寡君)137) 의 글속에 실려 있지 않은 자는 회례사의 말로써 찾아 보낸 것이옵니다."
하였다. 임금이 또 말하기를,
"국왕이 요구한바 대장경판(大藏經板)은 우리 나라에 오직 1본 밖에 없으므로 요청에 응하기 어렵고, 다만 밀교대장경판(密敎大藏經板)과 주화엄경판(註華嚴經板)과 한자대장경(漢字大藏經)의 전부를 보내려고 한다."
하니, 규주 등이 대답하기를,
"과군이 해마다 사람을 보내어 경을 청하는 것으로써 번쇄(煩瑣)하지나 않을까 염려하고 있으나, 한번 경판을 하사하시면 뒤에는 경판을 청구하는 번거로움은 없을 것이오며, 밀자(密字)는 과군이 본래 해독하지 못하오니, 만약 한자본을 하사하심을 얻는다면, 과군이 반드시 진심으로 감사하고 기뻐할 것이며, 신이 사절로 온 것도 함께 영광된 빛이 있을 것입니다."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한자판은 조종조로부터 서로 전하는 것이 다만 1본뿐이다. 만약 겹쳐서 여러벌 있다면 국왕에 대하여 굳이 아끼어 주지 않으려는 마음이 있겠느냐."
하니, 규주 등이 대답하여 아뢰기를,
"성상의 하교가 자상하시니 깊이 감사하고 깊이 감사하옵니다. 신들도 또한 잘 헤아려서 아뢰겠나이다."
하였다. 임금이 내관에게 명하여, 사신과 부사(副使)는 육조의 조계청(朝啓廳)에서 음식을 접대하게 하고, 그 나머지의 객인(客人)은 동랑(東廊)과 서랑(西廊)에서 접대하게 하였다. 임금이 대장경판은 무용지물인데, 이웃나라에서 청구한다 하여 처음에 이를 주려고 하매, 대신들이 논의하여 말하기를,
"경판은 비록 아낄 물건이 아니오나, 일본이 계속 청구하는 것을 지금 만약에 일일이 좇다가, 뒤에 줄 수 없는 물건을 청구하는 것이 있게 된다면, 이는 먼 앞날을 염려하는 것이 못됩니다."
고 하기 때문에, 임금이 그 청구에 응할 수 없다고 답한 것이다. 그 일본 국왕의 서간에 이르기를,
"일본 국왕은 삼보(三寶)의 제자 도전(道詮)을 보내어 재차 조선 국왕 전하(朝鮮國王殿下)께 글을 받들어 올리나이다. 전사(專使)가 돌아오매, 필요한 장경(藏經)이 회례사와 더불어 같이 이르니, 기쁘고 위안됨을 어찌 다 말씀하오리까. 더욱이 또 보배로운 물품을 공경히 영수하오니, 감사하고 또 부끄러운 마음이 한이 없나이다. 이에 사자(使者)의 청하는 바를 좇아 피로된 사람을 곳곳에서 탐색하여 돌려보내옵고, 이제 거듭 전사(專使) 규주 지객(圭籌知客)과 부사 범령 장주(梵齡藏主)를 보내어 별달리 진달하는 바 있사옵니다. 이 일이 비록 농(隴) 땅에 오르매, 촉(蜀) 땅을 바라보는 것 같사오나, 인국(隣國)과 우호(友好)를 닦으려고 할진대, 어찌 숨김이 있겠습니까. 듣자오니 귀국에 장경판(藏經板)이 하나뿐이 아니라 하니 정히 한 장경판을 요청하여 이곳에 받들어 안치하여, 신봉하는 무리들로 하여금 임의로 인쇄 보시(布施)하여, 만약 치우침없이 고르고 한결같은 자애로움을 미치어 자기와 타인의 구별을 잊고 법보(法寶)를 반포하여 그 이익을 널리 한다면, 어찌 복의 근원을 깊이 하고 수의 멧부리를 증가하게 하는 일단(一端)이 아니겠습니까. 진실로 소청하는 바와 같이 얻게 된다면 길이 우호의 의(誼)가 될 것입니다. 변변치 못한 토산물을 별폭(別幅)과 같이 갖추었고, 냇물이 밀어 닥치듯이 이르는 상서(祥瑞)를 많이 맞으시고, 또 하늘이 주시는 복을 받으시기를 감히 바랍니다. 별폭 경사류제(經史類題) 20권, 백련위(白練緯) 50단(段), 침향(沈香) 30근, 백단(白檀) 50근, 단목(丹木) 1천 근, 호초(胡椒) 30근, 감초(甘草) 50근, 곽향(藿香) 20근, 동(銅) 2백 50근."
이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7책 22권 24장 A면【국편영인본】 2책 569면
- 【분류】외교-왜(倭) / 무역(貿易)
- [註 137]과군(寡君) : 일본 국왕을 지칭하는 말.
○壬申/日本國王使臣圭籌、梵齡, 都船主久俊等一百三十五人詣闕獻土宜, 上御仁政殿受禮訖, 命圭籌、梵齡入殿內, 久俊在殿外。 上曰: "爾等去年海路無恙回國, 今又無事而來, 予甚喜焉。 國王不待予請, 刷還諸島擄去人口, 良用嘉悅。" 圭籌等對曰: "被擄人內, 其不載寡君書中者, 以回禮使之言刷還者也。" 上又曰: "國王所求大藏經板, 我國唯有一本, 難以塞請, 但欲以密敎大藏經板、註華嚴經板、漢字《大藏經》全部送之。" 圭籌等對曰: "寡君以爲, 年年使人請經, 恐爲煩瀆, 一賜經板則後無請經之瀆。 密字, 寡君本不解看, 若蒙賜漢字本, 則寡君必誠感悅, 臣之爲使與有光焉。" 上曰: "漢字板, 祖宗相傳唯一本耳。 若疊有之, 向國王敢有吝惜心乎?" 圭籌等對曰: "上敎詳密, 深謝深謝。 臣等亦更商量以啓。" 上命內官饋使副于六曹朝啓廳, 其餘客人, 分饋于東西廊。 上以大藏經板無用之物, 而隣國請之, 初欲與之, 大臣等議曰: "經板雖非可嗇之物, 日本之求無已, 今若一一從之, 後有求其不可與之物, 則非所以慮遠也。" 故上以難於塞請答之。 其國王書曰:
日本國奉三寶弟子道詮再奉書朝鮮國王殿下。 專使回, 所需《藏經》, 與回禮使同到, 喜慰可言哉? 矧又祗領珍貺, 感愧無量。 玆從使者之所請, 搜索被擄人於處處以歸之。 今重遣專使圭籌知客、副使梵齡藏主, 別有所陳, 此事雖似得隴望蜀, 要修隣好, 寧可秘情? 聞貴國藏經板非一, 正要請一藏經板, 安之此方, 使信心輩任意印施。 若能運平等之慈, 忘自他之別, 頒法寶以博其利, 則豈非深福源、增壽岳之一端耶? 苟得如所請, 永以爲好也。 不腆土宜, 具如別幅, 敢冀茂迎川至之祥, 卽膺天錫之祉。 別幅: 經史類題二十卷, 白練緯五十段, 沈香三十斤, 白檀五十斤, 丹木一千斤, 胡椒三十斤, 甘草五十斤, 藿香二十斤, 銅二百五十斤。
- 【태백산사고본】 7책 22권 24장 A면【국편영인본】 2책 569면
- 【분류】외교-왜(倭) / 무역(貿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