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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실록21권, 세종 5년 9월 24일 임인 4번째기사 1423년 명 영락(永樂) 21년

일본 축전주 태수 등원만정 등이 토산물을 바치다

일본국 축전주 태수(筑前州太守) 등원만정(藤源滿貞)과 그 막하(幕下)인 비주 자사(備州刺史) 지상 대장씨종(砥上大臧氏種)좌위문대랑(左衛門大郞) 등이 사람을 시켜 토산물을 바쳤다. 만정(滿貞)이 예조에 글을 올렸는데, 그 글에,

"본조(本朝)에서 귀국(貴國)에 사신을 보냈는데, 답례(答禮)하는 전사(專使)가 4월 4일에 석성(石城)의 나루에 이르러, 드디어 재부(宰府)의 사제(私第)에 오시어 글을 내려 관선(官船)으로 호송(護送)하라는 일을 알리니, 어찌 감히 명령을 받들지 않겠습니까. 관선(官船)이 본국으로 돌아오는 날에 사례하여, 답하는 정성을 쓰겠습니다. 먼저 서신과 방물(方物)을 바쳐 바닷 길에 탈이 없는 경사를 보이오니, 하정(下情)이 자세히 도달되어 들리게 되면 다행이겠습니다. 유황(硫黃) 2천 5백 근, 단목(丹木) 4천 5백 근, 청자분(靑磁盆) 70개, 백자완(白磁椀) 크고 작은 것 20개, 양향(良香) 13근, 진피(陳皮) 16근, 정향피(丁香皮) 65근, 벼루[硯] 2개, 금화수협(金畫手篋) 1개, 화근(火筋) 2쌍, 의상(倚箱) 1개, 부태상(付太箱) 화근(火筋) 2쌍, 패도(佩刀) 5개, 동(銅) 1백 50근을 바칩니다."

라고 하였다. 예조 참의 성개(成槪)가 그 서신을 답하였는데, 그 서신에,

"바친바 예물(禮物)은 삼가 이미 수납(收納)하였소. 아울러 회례사(回禮使)의 배가 석성(石城)의 나루에 이르렀는데 관선(官船)을 내어 호송(護送)한다고 말하니 감사합니다. 지금 토산물인 정포(正布) 1천 6백 50필로써 성의를 표시하오나, 변변치 못하여 부끄럽습니다."

라고 하였다. 대장씨종(大藏氏種)이 예조에 서신을 바쳤는데, 그 서신에,

"제가 귀국(貴國) 풍화(風化)의 아름답다는 말을 듣고 돌보아 생각하여 마지 않은 지가 오래 되었습니다. 그러나, 과군(寡君)이 저로 하여금 본주(本州)의 크고 작은 정사(政事)를 모의(謀議)하게 하므로, 이른 아침부터 밤 늦게까지 편안히 거처할 여가가 없었으니, 이런 까닭으로 능히 예(禮)를 따라 어리석은 정성으로 문안(問安)하지 못하고 천 리 밖에서 한갓 우러러보는 마음만 쓸 뿐입니다. 방금 과군(寡君)이 귀국에 사신을 보내어 예물(禮物)을 교환하오니, 제가 진실로 원하는 바입니다. 변변치 못한 토산물인 단목(丹木) 4백 근, 유황(硫黃) 4백 근, 장도(長刀) 4자루, 곽향(藿香) 8근, 주석[錫] 27근, 주완(朱椀) 70개, 패도(佩刀) 4개로써 성의를 표합니다."

라고 하였다. 예조 좌랑 성염조(成念祖)가 서신에 답했는데, 그 서신에,

"태수(太守)를 따라 성심을 다하여 수호(修好)하니, 진실로 기쁘게 생각하오. 바친바 예물(禮物)은 위에 아뢰어 수납(收納)하도록 하였소. 인하여 토산물인 정포(正布) 1백 50필을 돌아가는 사신에게 부쳐 보내오."

라고 하였다. 대랑(大郞)은 서신과 함께 토산물인 단목(丹木) 3백 근, 호초(胡椒) 1백 10근, 유황(硫黃) 1천 근, 빈랑자(檳榔子) 50근, 연소(鉛燒) 8근을 바쳤다. 예조 좌랑 성염조가 이에 답서(答書)하기를,

"바친바 예물(禮物)은 위에 아뢰어 수납(收納)하도록 하였소. 전자에 회례사(回禮使)에게 과해량미(過海糧米) 30석을 전인(專人)으로 전해 보냈음은 매우 기쁘게 생각하오. 지금 또 양미(糧米) 1백 석을 귀국 사신에게 부쳐 보내어 회례사(回禮使)에게 전해 주기를 희망하오. 토산물인 정포(正布) 1백 80필을 영수(領受)하기 바라오."

라고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7책 21권 18장 B면【국편영인본】 2책 557면
  • 【분류】
    외교-왜(倭) / 무역(貿易)

    日本國 筑前州太守(滕源滿貞)〔藤源滿貞〕 及其幕下備州刺史砥上大藏氏種左衛門大郞等使人獻土物。 滿貞奉書于禮曹曰:

    本朝行聘於貴國, 答聘之專价, 四月四日到石城之津, 遂枉騶駕於宰府之私第。 賜書告以官船護送之事, 豈敢不奉命哉? 官船歸朝之日, 可致謝答之忱焉。 先奉書幷方物, 聊申海路無恙之慶耳。 下情得備達明聞則是幸。 硫黃二千五百斤, 丹木四千五百斤, 靑磁盆七十箇, 白磁椀大小二十箇, 良香十三斤, 陳皮十六斤, 丁香皮六十五斤, 硯二枚, 金畫手篋一箇, 火筯二雙, 倚箱一箇, 付太箱火筯二雙, 佩刀五腰, 銅一百五十斤。

    禮曹參議成槪答書曰:

    所獻禮物, 謹已收納。 幷諭回禮使船到石城之津, 撥官船護送, 爲感爲謝。 今將土宜正布一千六百五十匹表意, 惟不腆是愧。

    大藏氏種奉書于禮曹曰:

    僕聞貴國風化之美, 而眷慮不已者久矣。 然寡君使與謀本州大小之政事, 夙夜靡遑寧處, 以故未能循禮問, 獻愚懇, 千里之外, 徒馳仰而已。 方今寡君行聘於貴國, 僕固所願也。 不腆土宜, 丹木四百斤、硫黃四百斤、長刀四把、藿香八斤、錫二十七斤、朱椀七十箇、佩刀四腰表誠。

    禮曹佐郞成念祖答書曰:

    能從太守, 輸誠修好, 良用爲喜。 所獻禮物, 轉啓收納。 仍將土宜正布一百五十匹, 就付回价。

    大郞修書, 仍獻土物, 丹木三百斤、胡椒一百十斤、硫黃一千斤、檳榔子五十斤、鉛燒八斤。 禮曹佐郞成念祖答書曰:

    所獻禮物, 轉啓收納。 前者回禮使處過海糧米三十石, 專人傳送, 喜喜。 今又將糧米一百石, 付貴价送去, 希回禮使處傳送。 土宜正布一百八十匹照領。


    • 【태백산사고본】 7책 21권 18장 B면【국편영인본】 2책 557면
    • 【분류】
      외교-왜(倭) / 무역(貿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