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실록 20권, 세종 5년 6월 24일 계유 1번째기사
1423년 명 영락(永樂) 21년
신장·김상직·어변갑·정인지 등을 춘추에 겸직시키다
경연에 나아갔다. 임금이 말하기를,
"내가 《강목(綱目)》을 보니, 옛날 기사(記事)는 어찌 그와 같이 자세하며 구비하였는가. 《여사(麗史)》를 보면 너무나 소략하다. 이제 오직 사관(史官) 한 사람이 다만 조계(朝啓)할 때에 돌려가며 참석하여 일을 기록하니, 국가의 일을 어찌 다 알아서 기재하겠는가. 국가의 일을 다 아는 자는 오직 대언사(代言司)일 뿐이다."
하니, 좌대언(左代言) 곽존중(郭存中)이 계하기를,
"신들은 사무가 번잡하여 일을 기록할 겨를이 없습니다."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집현전(集賢殿) 관원이 항상 궐내에서 벼슬하니, 또한 기사할 수 있으리라."
하고, 바로 신장(申檣)·김상직(金尙直)·어변갑(魚變甲)·정인지(鄭麟趾)·유상지(兪尙智)를 명하여 모두 춘추(春秋)를 겸직시켰다.
- 【태백산사고본】 7책 20권 27장 A면【국편영인본】 2책 546면
- 【분류】왕실-경연(經筵) / 역사-편사(編史) / 인사-임면(任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