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희가 사신에게 국조 공후에 대한 제사에 대해 묻다
참찬(參贊) 황희(黃喜)가 양선(楊善)에게 묻기를,
"《사림광기(事林廣記)》에 국조(國朝) 공후(公侯)로서 선대에게 제사지내는 의식은, 작헌(酌獻)한 뒤에 절한다고 하였는데, 《홍무예제(洪武禮制)》에 주현(州縣) 사직의(社稷儀)는 이미 참신(參神)이나 송신(送神)에는 절[拜]이 있으나, 작헌(酌獻)한 뒤에는 배례(拜禮)가 없다 하니, 같지 않은 것은 무슨 까닭이오."
하니, 선(善)이 말하기를,
"선대에 제사지내는 것은 외신(外神)과는 같지 아니하오, 종묘 칠실(宗廟七室)에 작헌한 뒤에 총배례(摠拜禮)가 있고, 공후의 선대에 제사지낼 때에도 작헌한 뒤에 또한 총배례가 있소. 작헌한 뒤의 총배례는 서인(庶人)에게까지 통하는 것이오. 사직(社稷)은 궐내(闕內)에 있어, 동궁 전하(東宮殿下)를 시켜 제사를 거행하고, 작헌(酌獻)한 뒤에 배례(拜禮)는 없고 다만 참신(參神)과 송신(送神)할 때에 절할 뿐이오."
하였다. 《가례(家禮)》 연복(練服)의 제도를 물으니, 선(善)이 말하기를,
"잘 알지 못하오."
라고 하였다. 중국에서 현행하는 상제(喪制)를 물으니, 말하기를,
"초상(初喪)에는 극히 굵은 생포(生布)로 의관(衣冠)을 만들고, 소상에는 숙백포(熟白布)로 관(冠)을 만들고, 다음가는 굵은 생포(生布)로 옷을 만들며, 바로 27개월이 되면 두 가지 굵은 베옷과 연관(練冠) 및 중의(中衣)는 모두 불사른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7책 20권 10장 A면【국편영인본】 2책 538면
- 【분류】외교-명(明)
○參贊黃喜問於楊善曰: "《事林廣記》國朝公侯祀先儀, 酌獻後有拜禮; 《洪武禮制》州縣社稷儀, 只有參神送神拜, 酌獻後無拜禮, 其不同何?" 善曰: "祭先與外神不同。 宗廟七室, 酌獻後有摠拜禮; 公侯祭先, 酌獻後亦有摠拜禮。 酌獻後摠拜禮, 通乎庶人。 社稷在闕內, 令東宮殿下行祭, 酌獻後無拜禮, 只有參神送神拜。" 問《家禮》練服之制, 善曰: "未詳。" 問中國見行喪制, 曰: "初喪用極麤生布爲衣冠, 至小祥用熟白布爲冠, 用次等麤生布爲衣, 直到二十七月, 將兩件麤布衣幷練冠及中衣, 盡燒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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