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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실록 19권, 세종 5년 3월 28일 기유 2번째기사 1423년 명 영락(永樂) 21년

전 좌군 도총제의 여칭의 졸기

전(前) 좌군 도총제(左軍都摠制) 여칭(呂稱)이 돌아갔다. 여칭의 자(字)는 중부(中父)이니, 그의 본관(本貫)은 경상도 함양(咸陽)이다. 고려 왕조에 벼슬하여 사헌 규정(司憲糾正)에 임명되고, 전라도 안렴사(按廉使)·전법 전리 총랑(典法典理摠郞)을 역임(歷任)하여, 밖으로 나가서 공주(公州)·나주(羅州) 두 주(州)의 목사(牧使)가 되었다. 우리 왕조 때에 와서 양광도(楊廣道)·경상도·전라도의 조전부사(漕轉副使)가 되고, 여러 번 천직(遷職)되어 판각문사(判閣門事)와 여러 조(曹)의 전서(典書)가 되고, 승추부 우군 동지총제(承樞府右軍同知摠制)와 강원도 도관찰사로 승진되어, 들어와서 참지의정부사(參知議政府事)가 되었다. 임오년에 태조가 북방으로 행차할 때에 은 동북면 도순문 찰리사(東北面都巡問察理使)가 되었는데, 태종은 그가 위태한 시기에 임하여 정도(正道)를 지켰다 하여, 전지(田地)와 노비(奴婢)를 주었다. 서북면 도순문 찰리사(西北面都巡問察理使)로 옮겨져서 병마 도절제사(兵馬都節制使)·개성 유후(開城留後)·형조 판서·지의정부사(知議政府事)를 겸하였다. 계사년에 사신이 되어 연경(燕京)에 가서 황제의 안부를 묻고 돌아왔다. 한가로이 있은 지 10년 만에 이 때에 와서 돌아가니, 연세가 73세이다. 부고(訃告)가 위에 들리니 조회를 3일 동안 폐하였고, 정평(靖平)이란 시호(諡號)를 내렸으니, 너그럽고 즐거이하여 고종명(考終命)한 것을 정(靖)이라 하고, 다스림에 과오(過誤)가 없는 것을 평(平)이라 한다. 은 나라를 위함에 부지런하고 근신하여 세미(細微)한 일까지도 정세(精細) 치밀(緻密)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아들은 둘이니, 여계(呂稽)여뇌(呂賚)이었다.


  • 【태백산사고본】 6책 19권 29장 A면【국편영인본】 2책 533면
  • 【분류】
    인물(人物)

○前左軍都摠制呂稱卒。 中父, 慶尙道 咸陽人。 仕高麗拜司憲糾正, 歷全羅道按廉使、典法典理摠郞, 出爲二州牧使。 及我朝, 拜楊廣慶尙全羅道漕轉副使, 累遷判閣門事諸曹典書, 陞承樞府右軍同知摠制、江原道都觀察使, 入爲參知議政府事。 壬午太祖北幸時, 爲東北面都巡問察理使。 太宗以臨危守正, 錫土田、臧獲, 遷西北面都巡問察理使兼兵馬都節制使、開城留後、刑曹判書、知議政府事。 歲癸巳, 奉使欽問起居于燕京而還, 閑居者十年, 至是卒, 享年七十有三。 訃聞, 輟朝三日。 諡靖平, 寬樂令終靖, 治而無眚平。 奉公勤謹, 至於細微之事, 無不精緻。 子二


  • 【태백산사고본】 6책 19권 29장 A면【국편영인본】 2책 533면
  • 【분류】
    인물(人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