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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실록 17권, 세종 4년 9월 4일 무오 1번째기사 1422년 명 영락(永樂) 20년

효령 대군이 견전을 거행하고 축관이 애책을 읽다

효령 대군 이보가 견전(遣奠)을 거행하는데, 축(祝)이 애책(哀冊)을 읽었다. 책에 말하기를,

"영락 20년 세차(歲次) 임인 오월삭(壬寅五月朔) 정사(丁巳) 초10일 병인에, 성덕 신공 태상왕(聖德神功太上王)이 신궁(新宮)에서 훙(薨)하시어 수강궁(壽康宮) 정전(正殿)에 빈(殯)하였다가, 9월 을묘삭 초6일 경신에 헌릉(獻陵)에 장사드리게 된 것은 예대로 할 것이다. 빈궁(殯宮)도 열게 되고, 삼막(縿幕)도 옮기게 되며, 백관들이 시종하는 데에 여러가지 의장도 성대하다. 새벽 이슬이 쓸쓸하게 보이는데, 산천마저 슬프게 되고, 사르르 부는 바람 초목도 설워하는 듯하다. 성상께서는 땅을 두드려 하늘에 호소하는데, 궁중의 거처하시던 데를 우러러 보면 계시는 듯할 뿐이며, 간(肝)이 부서질 듯 척추뼈가 물러날 듯 슬프도다. 천안(天顔)이여 길이 뵐 날이 없겠구나. 그래서 사신(詞臣)에게 명하여 바로 성대하신 덕을 선양시키나이다."

하고, 그 사(詞)에 이르기를,

"우리 동방(東方)은 왕씨(王氏) 때로부터 삼한(三韓)을 통일하여 거의 5백 년이나 되었는데, 임금은 혼몽하고 정치는 어지러워, 귀신도 원망하고 사람도 떠나게 되어, 하늘이 떳떳한 덕을 사랑하사, 그로 하여금 큰 터전을 만들게 하였도다. 공손하게 생각건대, 우리 임금은 밝게 천명(天命)을 알아 성조(聖祖)를 부익(扶翼)하며 백성들을 어루만져 안정시켰고, 명나라 임금의 명령에 의하여 그의 조정에 손노릇도 하시었다. 말씀하기를 간곡하게 하시어 접대 받기를 총애스럽고 영광스럽게 하시었다. 기회를 타서 어려운 일을 안정시키니, 종묘(宗廟)와 사직(社稷)은 이로부터 정해졌도다. 공정(恭靖)048) 을 지성스럽게 섬겨서 더욱 사랑과 공경을 두텁게 하였고, 계속하여 임금의 자리에 오르게 되자 진실로 지극한 정치를 넓히셨다. 은혜는 날짐승과 물고기까지 미쳤었고, 송덕하는 소리는 멀고 가까운 데에 떠올랐다. 이웃나라 사귀는데도 도리가 있고, 큰 나라 섬기는 데에는 더욱 삼가서 하시었다. 명나라 임금의 사랑함은 정성스러웠고, 조사(詔辭)도 다정하게 하였으며, 내려준 인장(印章)과 면복(冕服)은 광채가 찬란하였다. 섬 오랑캐들은 복종하게 되고, 국가는 태평하게 되어, 공이 선조에 빛나고, 덕은 뒷사람에게 남겨 주게 되니, 덕으로 말하면 성인이요, 공으로 말하면 신기롭다. 뛰어남이 전고(前古)에 없는 일이요, 능히 상천(上天)을 짝할 만하도다. 이러한 성대하고 아름다움을 거두어서 사책에 빛나는 것을 남길 것이다. 슬프고 서러워라. 도(道)로는 조화로 육성시키는 데 참예할 만하고, 밝은 것은 살피지 못할 데까지 비치며, 예(禮)도 일어나게 되고, 악(樂)도 제작하게 되었으며, 문치(文治)도 밝으려니와, 무략(武略)도 위엄스러웠다. 종시 20년 동안에 여러가지 정치에 부지런하시고 노고하시다가, 몸을 휴양하시려고 신성(神聖)한 아드님께 전하시었으나, 하늘을 무서워하고 백성을 걱정하는 정성은 일찍이 잠깐 동안이라도 성정(聖情)에 망각하시지 아니하였도다. 거의 높으신 연령으로 길이 영화스러운 봉양을 받으시리라 하였던 것이 어찌하여 하루 아침에 우연히 하찮은 병환에 걸리셔서 마침내 대점(大漸)하여 나으시지 못하시었으니, 망극(罔極)한 서러움만 남기게 되었도다. 슬프다, 신민(臣民)들이 박복하여 하늘의 태양이 길이 감추어지게 되었구나. 슬프고 서러워라, 종묘(宗廟)에 엄숙히 모시매, 예에 극진하였고, 보책(寶冊)을 올리매, 아름다움이 드날렸도다. 오직 성상(聖上)의 가슴에 맺힌 서러움은 궁도에 빠진 사람으로 돌아갈 데가 없는 것과 같도다. 궁액(宮掖)에는 먼지만 끼어 있고, 신민들은 눈물이 비오듯 하도다. 영이(靈轜)를 붙잡고 몸부림치는데, 산릉(山陵)만 바라보고 하늘을 원망하도다. 슬프고 서러워라, 생각하건대, 수명의 길고 짧은 것은 운수에 매인 것이니, 비록 성지(聖智)라 하여도 면할 수 없는 것이나, 오직 공덕(功德)의 지극히 큰 것은 일월같이 높도다. 슬프고 서러워라."

라고 하였다. 재궁(梓宮)을 받들고 수강궁(壽康宮) 문을 나와 유거(柳車)에 태우고 길흉(吉凶)의 의장(儀仗)이 차례로 앞을 인도하는데, 임금은 종친을 거느리고 울면서 따라 도보로 궁문에 나와 소연(素輦)을 타고, 백관들도 도보로 따라 흥인문(興仁門)에 나오게 되고, 서울에 남아 있을 백관과 기로(耆老)와 승도(僧徒)와 생도(生徒)와 회회(回回)는 각기 문밖에서 하직드리는데, 곡하는 소리가 들에 진동하였다. 마전포(麻田浦)에 이르러 부교(浮橋)를 타고 물을 건넜다. 산릉(山陵)에 이르러 재궁(梓宮)을 받들어 장전(帳殿)에 모시고, 임금은 상차(喪次)로 들어갔다.


  • 【태백산사고본】 6책 17권 18장 A면【국편영인본】 2책 497면
  • 【분류】
    왕실-의식(儀式) / 어문학-문학(文學) / 역사-전사(前史)

○戊午/孝寧大君 (補)〔𥙷〕 行遣奠, 祝讀哀冊。 冊曰:

永樂二十年歲次壬寅五月朔丁巳初十日丙寅, 聖德神功太上王薨于新宮, 殯于壽康宮正殿, 九月乙卯朔初六日庚申, 葬于獻陵, 禮也。 殯宮斯啓, 縿幕將移, 百寮侍從, 萬仗葳蕤。 曉露殘兮山川慘; 酸風動兮草木悲。 聖上叩地號天, 仰宸扆兮如在; 摧肝毁脊, 悼天顔兮永隔。 爰命詞臣, 式宣盛德。 其詞曰: 粤自東方, 爰自王氏。 統一三韓, 幾五百祀。 主昏政亂, 神怨人離。 天眷懿德, 俾造丕基。 恭惟我后, 灼知天命。 扶翼聖祖, 撫安萬姓。 欽承帝命, 用賓王庭。 敷奏懇款, 接遇寵榮。 炳幾靖難, 宗社是定。 祗事恭靖, 益敦愛敬。 比纉洪業, 式洪至治。 恩及飛潛, 頌騰遐邇。 交隣以道, 事大彌謹。 帝眷丁寧, 詔辭繾綣。 印章有赫, 冕服斯煌。 島夷賓服, 家國平康。 功光先祖, 德垂後人。 維德之聖, 維功之神。 夐越前古, 克配上天。 斂此盛美, 垂耀簡編。 嗚呼哀哉! 道參化育, 明燭幽微。 禮興樂作, 文昭武威。 始終二紀, 勤勞庶政。 庶于頤養, 傳之神聖。 畏天憂民之誠, 未嘗頃刻弛于聖情。 庶幾遐齡, 永享榮養。 奈何一朝偶嬰微恙, 遂大漸而不愈, 貽罔極之哀號? 嗟臣庶之薄祐, 致天日之永韜。 嗚呼哀哉! 嚴祖庭兮盡禮, 獻寶冊兮揚徽。 惟聖上之茹痛兮, 如窮人之無所歸。 塵棲兮宮掖, 雨泣兮臣民。 執靈轜以擗踊兮, 望橋山而怨蒼昊。 嗚呼哀哉! 噫, 脩短之有數兮, 雖聖智而難逃。 唯功德之至大兮, 與日月而齊高。 嗚呼哀哉!

奉梓宮, 出壽康宮門, 乘柳車, 吉凶儀仗以次前導。 上率宗親哭從, 步出宮門, 乘素輦, 百官步從。 出自興仁門, 留都百官、耆老、僧徒、生徒、回回各奉辭於門外, 哭聲振野。 至麻田浦, 乘浮橋以渡, 至山陵, 奉梓宮, 安于帳殿, 上入喪次。


  • 【태백산사고본】 6책 17권 18장 A면【국편영인본】 2책 497면
  • 【분류】
    왕실-의식(儀式) / 어문학-문학(文學) / 역사-전사(前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