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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실록17권, 세종 4년 8월 30일 갑인 4번째기사 1422년 명 영락(永樂) 20년

예조에서 안릉 전의를 계하다

안릉 전의(安陵奠儀)에 말하기를,

"흙 덮기가 이미 끝남을 기다려, 통례문은 산릉사(山陵使)의 자리를 정자각(丁字閣) 동계(東階)의 동남쪽으로 서향되게 설치하고, 여러 집사의 자리는 산릉사의 뒤로 설치하는데, 관위가 다르면 여러 줄로 서게 되는데, 모두 서향이며, 북쪽이 위가 되게 하고, 종실 이하 문무 여러 관원의 자리는 연도(羨道)의 좌우로 남쪽에 가까이 하는데, 종실은 서쪽에 있게 되고, 가운데가 머리가 되게 한다. 관위가 다르면 여러 줄로 서게 하는데, 모두 북향이다. 시기에 앞서 능사(陵司)는 영좌를 정자각 한가운데로 북쪽에 가까이 남향으로 설치하고, 왕후의 신좌(神座)는 영좌의 왼편에 설치한다. 집사자는 축판을 영좌의 왼편에 올려놓고, 향로·향합·초를 영좌 앞에 진설하고, 준(尊)은 지게문 밖에 왼편으로 설치하며, 세(洗)는 동계에서 동남쪽으로 북향되게 하고, 【관세(盥洗)는 동쪽에 있게 되고, 작세(爵洗)는 서쪽에 있게 된다. 】 여러 집사의 세는 또 〈거기서〉 동남쪽으로 북향되게 한다. 시각이 되면, 집사자는 손을 씻고, 잔(盞)을 씻고 잔을 닦아 동계에서 올라와 준소(尊所)에 두면, 찬(饌)을 받들어 올려서 영좌 앞에 둔다. 통례문은 종실 이하 문무 여러 관원을 나누어 인도하여 들어와 자리에 서게 한다. 봉례랑은 산릉사를 인도하여 자리에 나아가 서면, 통찬이 ‘재배하고 곡하라.’ 하면, 자리에 있던 자는 모두 재배하고 곡하게 된다. 봉례랑은 산릉사를 인도하여 관세위(盥洗位)에 나아가 관세(盥帨)하기를 마치고, 산릉사를 인도하여 동계에서 영좌 앞에 나아가 북향으로 서게 한다. ‘꿇어앉아 삼상향(三上香)하라. ’고 말하고, 집사자는 다주(茶酒)를 산릉사에게 준다. 산릉사는 뇌다(酹茶)와 삼전주(三奠酒)를 하게 된다. 다음에 왕후의 신좌(神座) 앞에 나아가 북향으로 서면, ‘꿇어앉아 삼상향하라.’ 말하고, 집사자는 다주를 산릉사에게 준다. 산릉사는 뇌다와 삼전주를 하게 된다. 봉례랑이 ‘구부렸다 엎드렸다가 일어나서 조금 물러나 한가운데로 북향되게 꿇어앉으라.’ 말하고, 대축은 영좌의 왼편에 서향으로 꿇어앉아 축문을 읽어 마치면, 봉례랑은 ‘구부렸다 엎드렸다가 일어나서 재배하고 곡하라.’ 하고, 인도하여 내려와 제자리에 서게 한다. 통찬이 ‘재배하고 곡하라.’ 하면, 산릉사 이하 자리에 있던 자는 모두 재배하고 곡하게 된다. 봉례랑은 산릉사를 인도하여 나가게 되고, 통례문은 종실 이하 문무 여러 관원을 인도하여 차례로 나가게 되고, 집사자는 예찬을 걷어치우며, 축판은 구덩이에 묻는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6책 17권 15장 B면【국편영인본】 2책 495면
  • 【분류】
    왕실-의식(儀式)

    ○安陵奠儀曰:

    竢覆土旣畢, 通禮門設山陵使位於丁字閣東階東南, 西向, 設諸執事位於山陵使之後, 異位重行, 俱西向北上, 設宗室以下文武群官位於羨道左右近南, 宗室在西, 中心爲頭, 異位重行, 俱北向。 前期, 陵司設靈座於丁字閣當中近北, 南向, 設王后神座於靈座之左。 執事者奠祝版於靈座之左, 設香爐、香合幷燭於靈座前, 設尊於戶外之左, 設洗於東階東南, 北向, 【盥洗在東, 爵洗在西。】 諸執事洗又於東南北向。 時至, 執事者盥手, 洗盞拭盞, 升自東階, 置於尊所, 奉饌升奠于靈座前。 通禮門分引宗室以下文武群官入就位, 奉禮郞引山陵使就位。 立定, 通贊贊再拜哭, 在位者皆再拜哭。 奉禮郞引山陵使, 詣盥洗位盥帨訖, 引山陵使升自東階, 詣靈座前北向立, 贊跪三上香。 執事者以茶酒授山陵使, 山陵使酹茶三奠酒。 次詣王后神座前北向立, 贊跪三上香。 執事者以茶酒授山陵使, 山陵使酹茶三奠酒。 奉禮郞贊俛伏興小退, 當中北向跪, 大祝進靈座之左, 西向跪, 讀祝文訖, 奉禮郞贊俛伏興再拜哭, 引降復位。 通贊贊再拜哭, 山陵使以下在位者皆再拜哭。 奉禮郞引山陵使出, 通禮門分引宗室以下文武群官以次出, 執事者撤禮饌, 祝版瘞於坎。


    • 【태백산사고본】 6책 17권 15장 B면【국편영인본】 2책 495면
    • 【분류】
      왕실-의식(儀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