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궁을 받들어 수강궁에 빈하다
재궁(梓宮)을 받들어 수강궁(壽康宮)에 빈(殯)하였다. 임금은 소연(素輦)을 타고, 종실과 부마 및 병조·승정원은 도보로 따라갔다. 비로 인하여 백관의 시위는 중지하고, 군사들만 무장하고 〈연화방(蓮花坊)〉 신궁으로부터 수강궁 문밖에 이르기까지 길 좌우에 이중으로 나누어 서게 하고, 병조에서 여러 위를 동원하여 길거리와 골목을 나누어 지키게 하고, 드디어 수강궁 정전(正殿)에 빈(殯)하였다. 이보다 앞서 벽돌과 구워 만든 돌·박석(薄石)으로 가실(假室)의 바닥을 정전 중간에 쌓고, 석회로 그 빈 틈을 바르고, 자리를 깔고 그 위에 평상을 놓고, 평상 위에 대자리와 요를 깔고, 또 장막과 요와 병풍을 정전 중간 북쪽 공처에 설치하여, 임시로 혼백(魂帛)과 책보(冊寶)를 둘 자리를 준비하였다. 시간이 되어, 여러 소신(小臣)들이 관을 들어 평상 위에 올려놓았는데, 남쪽으로 머리를 두게 하고, 관의(棺衣)를 덮고, 유단(油單)으로 싸고, 흰 무명으로 묶고, 볶은 기장[黍]·피[稷]·벼[稻]·양(粱)을 각각 두 광주리씩 만들어, 수족(手足) 있는 데에 네 광주리를 놓고, 그 나머지는 좌우로 나누어 놓는다. 여러 소신(小臣)이 가실(假室)을 들어서 관을 덮는데, 가실의 제도는 관을 올려놓는 평상의 장단과 광협에 따라, 먼저 사면에 방틀 나무를 설치하고, 그 위에 기둥 네 개를 세우고, 대들보와 서까래를 걸고 가는 나무를 피나무 줄로 얽어서 벽을 만들고, 갈대자리를 그 안에 치고 대쪽을 대어 떨어지지 않게 못을 치고, 두꺼운 종이로 두 세 벌 바르고, 다음으로 주작(朱雀)·현무(玄武)·청룡(靑龍)·백호(白虎)를 사면에 그려 붙이고, 그 다음 둥근 쇠고리를 방틀 네 귀에 박고 숙마 밧줄로 고리를 꿰어 결박하고, 때가되면 북쪽 벽과 방틀은 떼어 내고 〈가실을〉 남쪽에서 북쪽으로 밀어 관을 덮게 하고, 도로 북쪽 벽을 막고 진흙으로 밖과 위를 바르고, 다음 숙마포(熟麻布)로 진흙 위를 덮고, 다음 두꺼운 종이로 바르고 백초(白綃)로 장막을 치고 천장도 덮는다. 영좌(靈座)는 찬궁(欑宮) 앞에 남향으로 설치하고, 명정(銘旌)을 영좌 오른편에 세우고, 개선(蓋扇) 두 개를 영좌 앞에 설치하고, 영상(靈床)을 찬궁 동쪽에 설치하고, 거기에 전(奠)을 드리게 한다. 임금은 광연루(廣延樓) 동쪽에 의려(倚廬)를 설치하고 거처하는데, 그 제도는 한 칸으로, 사면에 집이 붙어 있고 띠[茅]로 이은 것이다. 매일 조석전(朝夕奠) 및 상식(上食)을 올릴 때에, 임금은 궤연(几筵) 곁에 모시고 있다가, 제사를 마친 뒤 여차(廬次)로 돌아오는 것을 규례로 하고, 발인(發引)한 뒤에 폐지한다.
- 【태백산사고본】 5책 16권 10장 A면【국편영인본】 2책 482면
- 【분류】왕실-의식(儀式) / 왕실-국왕(國王)
○奉梓宮將殯于壽康宮, 上乘素輦, 宗室、駙馬及兵曹、承政院徒步以從。 以雨命除百官、侍衛軍士被甲執兵。 自新宮至壽康宮門外, 分立路旁, 各二重。 兵曹勒諸衛, 分守街巷。 遂殯于壽康宮之正殿。 前期, 用甎及熟石、薄石築假室基于正殿中間, 以石灰塗其隙, 布地衣, 安平床, 床上又布竹席、地衣、褥席。 又設帳、褥席、屛風於殿中近北空處, 以備魂帛、冊寶假安之地。 時至, 諸小臣共擧椑, 安於床上南首, 覆棺衣, 以油單裹之, 用白正布束之, 用煎黍稷稻粱各二筐, 手足置四筐, 其餘則設於左右。 諸小臣共擧假室, 加於椑。 假室之制度, 柩床長短廣狹, 先設四面地防木, 次立四柱於其上, 架梁拘椽, 用椵繩細木作壁, 以葦簟帖其內, 又以片竹挾之下釘, 以厚紙再三塗之。 次以朱雀、玄武、靑龍、白虎帖四面, 次以圓環下地防四旁, 次以熟麻大繩穿環結之。 時(之)〔至〕 , 去其北隅壁與地防, 自南向北推移, 覆于柩上, 還障北隅, 以泥塗外面及上, 次以熟麻布其泥上, 次以厚紙塗之, 設白綃滿頂及帳。 置靈座於攅宮之前南向, 立銘旌於靈座之右, 設蓋扇各二於靈座之前, 設靈床於攅宮東, 乃設奠。 上居倚廬于廣延樓之東。 其制, 中一間, 四面附舍, 覆以茅。 每日朝夕奠及上食, 上侍几筵之側奠訖, 還廬次, 以爲常, 至發引而止。
- 【태백산사고본】 5책 16권 10장 A면【국편영인본】 2책 482면
- 【분류】왕실-의식(儀式) / 왕실-국왕(國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