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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실록 16권, 세종 4년 5월 6일 임술 2번째기사 1422년 명 영락(永樂) 20년

장윤화의 졸기

장윤화(張允和)가 귀양가 있던 부여(扶餘)에서 죽었다. 윤화흥덕현(興德縣) 사람으로, 과거에 급제하여 여러 번 내외 관직을 역임하고, 사무에 민첩하였으나, 재물을 탐내고 시기심이 많고, 마음이 험하였다. 일찍이 서천(舒川)·순천(順天)·남원(南原) 등지의 수령이 되어 관청 물건을 도용하고, 전라도 관찰사가 되어서는 백성으로부터 터무니없는 세금을 받아들여 권문 세가에 뇌물을 바치고, 자기 수중에 넣는 것도 많았다. 그 형적을 없애기 위하여 고의로 감영 창고에 불을 질러 백성의 원망을 듣게 되었다. 일이 발각되어 고신(告身)을 빼앗기고 부여(扶餘)로 귀양갔는데, 이때에 이르러 병이 들어 죽었다.


  • 【태백산사고본】 5책 16권 5장 A면【국편영인본】 2책 480면
  • 【분류】
    인물(人物) / 사법-탄핵(彈劾)

張允和死于貶所扶餘允和, 興德縣人。 登第累歷中外, 治事敏快, 然貪婪猜險, 守舒川順天南原等邑, 盜用官物。 及爲全羅道觀察使, 多橫斂、賂權貴, 入己者亦甚多, 欲滅其迹, 故燒營庫, 取怨於民。 事覺, 奪告身, 流于扶餘, 至是病死。


  • 【태백산사고본】 5책 16권 5장 A면【국편영인본】 2책 480면
  • 【분류】
    인물(人物) / 사법-탄핵(彈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