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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실록15권, 세종 4년 2월 28일 을묘 1번째기사 1422년 명 영락(永樂) 20년

공비가 가례색에서 뽑은 처녀들을 불러 보다

공비(恭妃)가 가례색(嘉禮色)에서 뽑아 올린 상호군(上護軍) 조뇌(趙賚)와 좌랑(佐郞) 장수(張脩)와 전 현감 신기(愼幾)의 딸을 궁중에 불러 보았다. 처음에 변계량조말생에게 말하기를,

"대비가 이미 돌아가고, 김씨(金氏)도 또한 나가 버렸으니, 마땅히 태상왕을 위하여 다시 명가(名家)의 딸을 가려서 빈(嬪)과 잉첩(媵妾)의 모자라는 데를 보충해야 될 것이다."

라고 하였다. 드디어 건의하여 여러 대신들과 함께 청하였다. 태상왕이 이 말을 듣고 말하기를,

"내가 늙었으니 하고 싶지 않다."

라고 하였으나, 굳이 청하니 그제야 이를 허락하였다. 가례색에서 두 서너 사람을 뽑으니, 이에 조씨(趙氏)를 맞아들이기로 결정하여 필단(匹段)과 견자(絹子)를 조뇌의 집에 내리고 기일이 며칠 있었는데, 태상왕이 다시 오랫동안 주저하더니 마침내 맞아들이지 아니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5책 15권 11장 B면【국편영인본】 2책 475면
  • 【분류】
    왕실-비빈(妃嬪) / 왕실-국왕(國王)

    ○乙卯/恭妃召見嘉禮色所選上護軍趙賚、佐郞張脩、前縣監愼幾之女于宮中。 初, 卞季良趙末生曰: "大妃旣薨, 金氏又出。 當爲太上, 更擇名家, 以補嬪媵之闕。" 遂建議, 與諸大臣上請, 太上聞之曰: "吾老矣, 不欲也。" 請益堅, 乃許之。 嘉禮色選數人, 於是定納趙氏, 賜段匹絹子于家, 期有日矣。 太上復遲疑久之, 竟不納。


    • 【태백산사고본】 5책 15권 11장 B면【국편영인본】 2책 475면
    • 【분류】
      왕실-비빈(妃嬪) / 왕실-국왕(國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