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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실록14권, 세종 3년 12월 7일 병신 2번째기사 1421년 명 영락(永樂) 19년

박은으로 하여금 금천 부원군을 삼고, 이원을 좌의정, 정탁을 우의정에 제수하다

박은으로 하여금 금천 부원군(錦川府院君)을 삼고, 이원(李原)으로 좌의정을 삼고, 정탁(鄭擢)으로 우의정을 삼고, 이종무장천 부원군(長川府院君)을 삼고, 조연으로 한평 부원군(漢平府院君)을 삼고, 조견(趙狷)으로 평성 부원군(平城府院君)을 삼고, 한검(韓劎)을 영돈녕부사(領敦寧府事)로 치사(致仕)하게 하고, 맹사성(孟思誠)으로 의정부 찬성사(議政府贊成事)를 삼고, 박자청으로 판우군도총제부사를 삼고, 허지로 이조 판서를 삼고, 이발(李潑)로 형조 판서를 삼고, 이담(李湛)으로 지돈녕부사(知敦寧府事)를 삼고, 김겸(金謙)조비형(曺備衡)으로 우군 도총제를 삼고, 오승(吳陞)으로 판한성부사(判漢城府事)를 삼고, 우홍강(禹洪康)으로 유후사 유후(留後司留後)를 삼고, 안수산(安壽山)으로 동지돈녕부사(同知敦寧府事)를 삼고, 성엄으로 호조 참판을 삼고, 서선(徐選)으로 형조 참판을 삼고, 성억(成抑)으로 인수부 윤(仁壽府尹)을 삼고, 문효종(文孝宗)으로 좌군 총제를 삼고, 이수(李隨)이종선(李種善)으로 좌군 동지총제를 삼고, 문귀(文貴)조정(趙定)으로 우군 동지총제를 삼고, 탁신(卓愼)으로 예문관 제학(藝文館提學)을 삼고, 최관(崔關)으로 이조 참의를 삼고, 허해(許晐)로 호조 참의를 삼고, 이점(李漸)으로 공조 참의를 삼고, 심도원(沈道源)으로 우사간 대부(右司諫大夫)를 삼고, 신정리(申丁理)로 사헌부 장령을 삼고, 신계삼(辛繼參)으로 사헌부 지평을 삼고, 최흥효(崔興孝)로 사간원 우헌납(司諫院右獻納)을 삼고, 최부(崔府)·최사강(崔士康)·유장(柳暲)으로 경기·경상·황해도의 도관찰사를 삼고, 윤득홍(尹得洪)으로 경기 수군 도안무 처치사를 삼고, 유현(兪顯)으로 판남양도회부사(判南陽都會府事)를 삼았다. 이보다 먼저 박은이 병이 위중하니, 두 임금께서 김익정(金益精)을 보내어 이원에게 묻기를,

"좌의정이 병이 위중하니, 누가 이를 대신 할 만한가."

라고 하니, 이원이 찬성 조연을 천거하였다. 태상왕이 이르기를,

"의정(議政)은 그대들과 더불어 옳다 그르다 하여 서로 도우는데, 조연의 사람된 품은, 종일토록 모시고 앉아 있으면서 한 마디 말도 옳다 그르다 하는 일이 없다. 청성 부원군 정탁은 공신이며, 또 들어서 아는 것이 많으니, 박은을 대신할 만하다."

라고 하였다. 김익정이 대답하기를,

"정탁은 재리(財利)에 마음을 두고 있으니, 재상의 직책에는 마땅하지 못합니다."

하니, 태상왕이 말하기를,

"정탁은 공이 높고, 나이가 많으니, 이 임무에 있으면 어찌 근신(勤愼)하지 않겠는가."

라고 하면서, 마침내 정탁을 재상으로 임용하였다. 박자청은 미천한 신분에서 일어나 오로지 영선(營繕)을 감독한 일로써, 벼슬이 1품까지 이르렀다. 윤득홍은 수군에서 발탁되어, 수전(水戰)에 익숙하여 여러 번 해구(海寇)를 물리쳤으므로, 갑자기 승진하여 이에 이르렀다.


  • 【태백산사고본】 5책 14권 11장 B면【국편영인본】 2책 466면
  • 【분류】
    인사-임면(任免) / 인물(人物) / 외교-왜(倭) / 건설-건축(建築) / 건설-토목(土木)

    ○以朴訔錦川府院君, 李原左議政, 鄭擢右議政, 李從茂 長川府院君, 趙涓 漢平府院君, 趙狷 平城府院君, 韓劒領敦寧府事致仕, 孟思誠議政府贊成事, 朴子靑判右軍都摠制府事, 許遲吏曹判書, 李潑刑曹判書, 李湛知敦寧府事, 金謙曺備衡右軍都摠制, 吳陞判漢城府事, 禹洪康留後司留後, 安壽山同知敦寧府事, 成揜戶曹參判, 徐選刑曹參判, 成抑仁壽府尹, 文孝宗左軍摠制, 李隨李種善左軍同知摠制, 文貴趙定右軍同知摠制, 卓愼藝文館提學, 崔關吏曹參議, 許晐戶曹參議, 李漸工曹參議, 沈道源右司諫大夫, 申丁理司憲掌令, 辛繼參司憲持平, 崔興孝司諫院右獻納, 崔府崔士康柳暲京畿慶尙黃海道都觀察使, 尹得洪 京畿水軍都按撫處置使, 兪顯南陽都會府事。 先是, 朴訔病篤, 兩上遣金益精, 問於李原曰: "左議政疾篤, 誰可以代之?" 薦贊成趙涓, 太上王曰: "議政與君可否相濟。 之爲人, 終日侍坐, 未有一言可否。 淸城府院君 鄭擢, 功臣也, 又多聞, 可以代。" 益精對曰: "留心財利, 不宜相職。" 太上王曰: "功高年老, 居是任, 豈不謹愼?" 竟用子靑起自微賤, 專以監督營繕, 位至一品; 得洪拔於水軍, 便習水戰, 屢却海寇, 驟遷至此。


    • 【태백산사고본】 5책 14권 11장 B면【국편영인본】 2책 466면
    • 【분류】
      인사-임면(任免) / 인물(人物) / 외교-왜(倭) / 건설-건축(建築) / 건설-토목(土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