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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실록13권, 세종 3년 9월 21일 신사 1번째기사 1421년 명 영락(永樂) 19년

백관을 거느리고 태상왕을 받들어 모화루에서 칙서를 맞아들이다

임금이 백관을 거느리고 태상왕을 받들어 모화루(慕華樓)에 거둥하여 칙서(勅書)를 맞아들이는데, 경복궁 문밖에 채붕(彩棚)을 만들어 세우고 여러가지 희극(戲劇)을 꾸며서 맞았다. 해수(海壽)가 칙서(勅書)를 받들고 이르니, 두 임금이 인도하여 대궐 뜰에 이르러, 태상왕이 먼저 예를 행하고 칙서를 받았다. 칙서에 이르기를,

"이제 소감(少監) 해수를 보내서 칙서를 가지고 그대의 아들에게 이르노니, 말[馬] 1만 필을 선택하여 보내서 국용에 쓰도록 하면, 마땅히 값을 치를 것이오. 지금은 특히 왕 및 왕비에게 채단으로 안팎 옷감을 보내오니, 그대는 나의 지극한 마음을 체득할지어다. 왕에게는 저(紵)·사(紗)·채(綵)·견(絹)으로 각 50필과 왕비에게도 저·사·채·견 각 25필을 보내노라."

하였다. 임금이 계속하여 예를 행하고, 또 칙서를 받는데, 칙서에 이르기를,

"칙서가 도착되거든, 왕은 곧 말 1만 필을 가려서 보내게 하여 국용에 쓰게 하면, 마땅히 값을 치를 것이다. 이제 소감 해수를 보내어 앞서 가게 하고 채단으로 된 안팎 옷감을 칙사(勅賜)하니, 왕은 받으라. 왕에게는 저·사·채·견 각 40필을 왕비에게는 저·사·채·견 각 20필이다."

하였다. 예를 마치고 해수태평관(太平館)으로 돌아가니, 두 임금도 태평관에 거둥하여 하마연(下馬宴)을 베풀었다. 태상왕이 해수에게 말하기를,

"비록 하기 어려운 일이나, 마땅히 힘을 다할 것인데, 이러한 일에 감히 마음을 다하지 아니하겠는가."

하니, 가 말하기를,

"참으로 옳은 말입니다."

하였다. 태상왕은 에게 술을 주고 좌석으로 돌아와 앉으니, 임금이 그 좌석 앞에 나아가 꿇어앉아 술을 받아서 부복하고 마시는데, 는 일어나지 아니하였으니, 황제의 사신이 존엄으로 누르는 것이다. 잔치를 파하고 태상왕은 신궁(新宮)으로, 임금은 창덕궁으로 돌아왔다.


  • 【태백산사고본】 5책 13권 16장 B면【국편영인본】 2책 453면
  • 【분류】
    외교-명(明) / 왕실-의식(儀式) / 무역(貿易)

    ○辛巳/上帥百官, 奉太上王, 幸慕華樓迎勑。 結綵棚于景福宮門外, 陳雜戲以迎之。 海壽奉勑至, 兩上引至宮庭, 太上王先行禮受勑。 勑曰:

    今遣少監海壽, 齎勑往諭爾子。 選取馬一萬匹進來, 以資國用, 當酬以直。 今特賜王及王妃彩幣表裏, 爾其體朕至懷, 故勑。 王紵絲綵絹各五十匹, 王妃紵絲綵絹各二十五匹。

    上繼行禮受勑, 勑曰:

    勑至, 王卽選取馬一萬匹進來, 以資國用, 當酬以直。 今遣少監海壽前去, 勑賜綵幣表裏, 王可領也。 王紵絲綵絹各四十匹, 王妃紵絲綵絹各二十匹。

    禮訖, 海壽太平館, 兩上至太平館設下馬宴。 太上王謂曰: "雖難辦之事, 固當竭力, 如此之事, 敢不盡心?" 曰: "甚是。" 太上行酒於, 還座。 上就座前跪受酒, 俯伏飮之, 不起, 壓尊也。 宴罷, 太上還新宮, 上還昌德宮


    • 【태백산사고본】 5책 13권 16장 B면【국편영인본】 2책 453면
    • 【분류】
      외교-명(明) / 왕실-의식(儀式) / 무역(貿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