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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실록 12권, 세종 3년 7월 3일 계해 3번째기사 1421년 명 영락(永樂) 19년

한성부사 정진의 치수에 관해 올린 소문

판한성부사 정진(鄭津) 등이 소를 올리기를,

"가만히 생각하건대, 음진(陰診)의 재앙은 기수(氣數)가 그렇게 만드는 것이므로, 비록 성인(聖人)이라도 능히 면할 수 없는 것이나, 그 재앙을 구제하고 환난(患難)에 대비하는 일은 사람의 힘으로써 할 수 있는 바이니, 신묘년에 상왕 전하께서 내[川渠]를 뚫지 못하고, 봇도랑[溝洫]을 쳐내지 못한 것을 염려하여, 유사(有司)에게 명하여 냇길[川路]를 크게 개척(開拓)하고, 이를 파고 터 놓아, 각기 그 유통이 순하게 하고, 인하여 돌다리를 만들어, 나라가 반석(盤石)같이 견고(堅固)하게 되고, 백성이 편안히 잠잘 수 있는 즐거움을 얻었으니, 만세(萬世)에 이르기까지 후환(後患)을 예비하는 생각이 극진하였습니다. 그러나 지류(支流)의 작은 시내[川]를 다 파서 넓히지 못한 것이 있으므로, 유사가 의견을 올려 최후(最後)의 공(功)을 완성하도록 하였으나, 상왕 전하께서는 백성의 힘쓰는 것을 어렵게 여겨, 만세(萬世)의 터전을 반드시 한 때에 갑자기 이룰 수는 없다고 하여, 역사(役事)를 농사 때까지 끌어 넘기지 못하게 하여, 그 역사를 중지하였으니, 그 나라를 근심하고 백성을 사랑하는 뜻은 지극히 깊고 간절하였습니다. 삼가 생각하옵건대, 주상 전하께서는 큰 기업(基業)을 계승하여 부왕(父王)의 뜻과 사업을 이어받아, 한 사람의 힘과 열 집의 재산을 아껴서, 무릇 공역(工役)을 일으키려 하면, 굳이 거절하고 즐거이 따르지 않으셨으니, 하늘을 공경하고 백성에 마음 쓰시는 생각이 지극하지 않은 것이 없었습니다. 지금 비가 한 달이 넘어도 그치지 않아서, 지난달 12일에 밤에 큰 비가 와서, 물이 넘쳐 하류가 막혔으니, 도성(都城) 안이 다시 침몰될 근심이 있습니다. 말이 여기에 미치매, 전하께서 백성의 부모되신 마음과 자애심(慈愛心)이 많은 덕으로써, 근심하고 조심하심은 말로써 비유하기 어렵습니다, 신 등은 가만히 생각하옵건대 백성을 괴롭혀서 역사를 일으키는 것은 비록 성인(聖人)이 할 수 없는 일이오나, 재해(災害)를 구하고, 환난(患難)을 방비하는 일은 실로 왕정(王政)의 먼저 할 바이니, 삼가 바라옵건대, 전하께서는 특히 유사에게 명하여, 매양 농한기(農閑期)를 당하여 백성을 즐거운 마음으로 사역하게 하고, 그 힘을 다 쓰지 않게 하였으니, 신 등은 직분이 도읍(都邑)을 관장(管掌)하였으니, 감히 입을 다물고 있을 수 없으므로, 삼가 한 두 가지의 좁은 소견을 다음에 조목 별로 열거합니다.

1. 두 곳의 수문(水門)은 좌우의 옹성(壅城)이 좁아서, 도성(都城) 안의 여러 곳의 물이 합쳐 흘러서 막히게 됩니다. 그러므로 동부(東部)의 창성방(彰善坊)이 재해를 입은 것이 더욱 심하였습니다. 원컨대 유사로 하여금 적당한 곳을 가려서 별도로 수문 하나를 더 만들어 수도(水道)를 통하게 하면, 물이 넘치는 것이 감해질 것입니다.

1. 종루(鍾樓) 이하로는 지세(地勢)가 모두 낮아서, 도성의 물이 한 곳으로 몰려드는 것이, 높은 집마루에서 항아리 물을 내려 붓는 것 같아서, 많은 집들이 물에 뜨고 침몰되는 일이 반드시 이르게 될 이세(理勢)입니다. 원컨대 유사에 명하여 예전 도랑[渠] 자리에 그대로 냇길[川路]를 뚫어 파서, 깊고 또 넓게 하여 수재에 대비할 것입니다. 또 좌우 행랑(行郞)의 뒤에도 큰 도랑 하나를 만들면 크게 편리할 것입니다.

1. 진장방(鎭長坊)에는 산골짜기에서 여러 곳의 물이 세차게 흘러 내려, 격류로 쏟아져 내리는 까닭으로, 경복궁 동면(東面)의 내성(內城)이 몇 자[尺] 가량이나 무너졌으니, 만약 수년(數年) 동안 이대로 지나면, 거의 성내(城內)를 다 삼켜서 그 형세를 막을 수 없을 것입니다. 원컨대, 유사에 명하여 내를 넓히고 돌을 포개어 쌓아 올려 수도(水道)를 방비할 것입니다. 경복궁 서성(西城) 밖에도 또한 마땅히 내를 넓혀 흐름을 터놓아야 될 것이며, 그 외의 도랑들도 뚫고 파야 할 곳을 일일이 다 들 수 없사오니, 원컨대, 유사로 하여금 임시로 적당히 시행하게 할 것입니다.

1. 정선방(貞善坊) 다리 1개와 연화방(蓮花坊) 다리 2개, 창선방(彰善坊) 다리 3개, 덕성방(德成坊) 다리 1개 등, 위의 도합 7개의 다리는 거가(車駕)가 상시 지나시는 곳이니, 견고하게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전에는 모두 나무 다리를 만들었으므로, 큰 비를 한 번 지내고 나면, 모두 떠내려가게 되니, 재목의 허비와 백성을 괴롭히는 역사가 해마다 없을 적이 없었습니다. 더욱이 여름 장마 때를 당하면, 반드시 썩어 무너지게되니, 그것이 견고하지 않음이 명백합니다. 청컨대, 유사에게 명하여 돌다리를 만들게 하여 이런 근심을 면하게 하소서."

하였다. 임금이 공조(工曹)에 명하여 농한기(農閑期)를 기다려 시행하도록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4책 12권 21장 A면【국편영인본】 2책 441면
  • 【분류】
    건설-토목(土木) / 과학-천기(天氣)

○判漢城府事鄭津等上疏曰:

竊惟, 陰(診)〔沴〕 之災, 氣數之使然, 雖聖人有所不能免焉。 然其救災、備患之事, 則人力之所可爲也。 歲在辛卯, 上王殿下慮川渠之未鑿、溝洫之未浚, 爰命有司, 大開川路, 疏鑿決排, 各盡其宜, 因造石橋。 邦家有盤石之固, 民庶得安枕之樂, 爲萬世備患之慮, 至矣盡矣。 然而支流細川, 有未盡開鑿者, 有司獻議, 以畢九仞之功。 上王殿下重用民力, 以爲萬世之基, 不必遽成於一時, 役不踰時, 仍罷其役, 其憂國愛民之意, 至深切矣。

恭惟主上殿下纉承丕緖, 繼志述事, 愛一夫之力, 惜十家之産, 凡有興作, 深閉固拒, 未肯俯從, 敬天勤民之念, 靡所不至矣。 今者雨水逾月不止, 前月十二日之夜, 大雨水溢, 下流淤塞, 都城之內, 復有墊溺之患。 興言及此, 以殿下父母之心、好生之德, 軫心惕慮, 難以云喩。 臣等竊伏惟念, 勞民興役, 雖聖人之得已, 救災、備患, 實王政之所先。 伏望殿下, 特命有司, 每當農隙, 悅以使民, 不竭其力。 臣等職掌都邑, 不敢含默, 謹以一二管見, 條列于後。

一, 兩處水門, 左右甕城狹隘, 都城內衆水合流淤塞, 故東部彰善坊被災尤甚。 願令有司相地之宜, 別作一水門, 以通水道, 則汎濫決溢之勢, 庶可減矣。

一, 鍾樓以下, 地皆卑下, 都城之水輻輳, 建瓴家舍漂溺, 理勢必至。 願令有司, 因其舊渠, 鑿開川路, 旣深且廣, 以備水災。 又於左右行廊之後, 開一大渠, 庶爲便益。

一, 鎭長坊山谷衆水奔流, 激破故景福宮東面內城, 若干尺頹圮, 若復數年, 幾齕城內, 其勢莫遏。 願令有司, 開川疊石, 以防水道。 景福宮西城之外, 亦宜開川決流。 其餘開渠穿鑿之處, 難以遍擧, 願令有司, 臨時量宜施行。

一, 貞善坊橋一, 蓮花坊橋二, 彰善坊橋三, 德成坊 〔橋〕 一, 右七橋, 車駕之所常行, 不可不堅緻牢固也。 先是, 皆作木橋, 一經雨水, 則盡爲漂流, 材木之費、勞民之役, 無歲無之。 且當暑雨之時, 必至朽敗, 其不堅牢明矣。 請命有司, 俾作石橋, 庶免此患。

上命工曹, 待農隙施行。


  • 【태백산사고본】 4책 12권 21장 A면【국편영인본】 2책 441면
  • 【분류】
    건설-토목(土木) / 과학-천기(天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