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상세검색 문자입력기
세종실록11권, 세종 3년 4월 28일 경신 1번째기사 1421년 명 영락(永樂) 19년

병조에서 취각령의 보완 내용을 아뢰다

병조에서 계하기를,

"전자에 정한 취각령(吹角令)이 완전치 못한 데가 있어, 이제 의정부와 함께 상의하여 보고하나이다. 1. 상왕이 행재소(行在所)에서 명령을 발할 때에는, 먼저 낮에는 연기, 밤에는 불을 피워서 알리고, 다음에 서울에 머물러 있는 병조에 지시를 내린다. 서울에 머물러 있는 병조의 당상관은 곧 임금께 아뢰어, 궁내의 호각 부는 사람[吹角人]에게 명하여 호각을 한 번 불게 하면, 병조에서 이에 호응하여 호각을 불고, 또 사방 높은 곳으로 나누어 올라가, 군사가 다 모일 때가지 분다. 밖에서 호각 부는 소리가 처음 날 때에, 수강궁에 번들고 있는 군사는 문지기와 동정(動靜)을 살피는 사람 1, 2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무장을 갖추고 바로 행재소에 나아간다. 만일 중군(中軍)이 〈수강궁에〉 번을 들었으면, 좌군(左軍)과 번들고 나간 내금위(內禁衛) 내시위·별시위(別侍衛)·충의위(忠義衛)·좌사금(左司禁) 이상과 절제사(節制使)의 군관(軍官) 및 시파치[時波赤]065) 등은 호각 소리를 듣는 대로 선후하여 수강궁에 번든 군사의 예에 의하여 바로 행재소에 간다. 임금은 병조 당상에 명하여 선자기(宣字旗)066) 를 주어서 창덕궁(昌德宮) 문밖에 서게 하고, 다음으로 대궐 안에 번들고 있는 삼군 진무(三軍鎭撫)가 각기 그 군대의 기를 가지고 지정된 장소에 서고, 우군(右軍)과 본시 시위(侍衛)에 속했던 각종 군사들도 무장을 갖추고 창덕궁 문밖에 나아가서 자기의 기 아래에 선다. 만일 좌군이나 우군이 〈수강궁에〉 번을 들었으면, 중군은 곧 행재소에 나아간다. 임금이 장수될 만한 사람 3명을 불러서 3군의 직문기(織文旗)를 주면, 그 기를 받아 가지고 나와서 각각 자기 군대 앞에 세우고 병조의 호령을 듣는다. 의정부·육조·종친·공신·현직 및 보직 없는 2품 이상으로서, 위급한 사태에 달려올 수 있는 자는, 사고가 있는 자를 제외하고 모두 창덕궁 문밖에 설치한 의막(依幕)에 모여서 명령을 기다린다. 군사가 모두 모이면, 임금이 이상에 나열한 군사와 의정부·육조·종친·공신·현직 또는 보직이 없는 2품 이상을 거느리고, 곧 행재소에 나아가서 따로 한 개의 부대를 만들어 명령을 기다린다. 사복시·군기감·의금부 이외의 서울에 머물러 있는 각 관청은, 임금의 행차가 떠난 뒤에 각각 무장을 갖추고 창덕궁 문앞에 설치한 의막에 모여서 명령을 기다린다. 그 나머지 여러 조항은 모두 전에 제정한 취각령에 따른다. 두 임금이 성 안에서 취각할 때에는, 임금은 선자기(宣字旗)와 삼군 직무기(織文旗)를 내리지 않는다. 상왕이 행재소에 있고, 임금이 성 안에서 먼저 취각할 때에는, 임금이 있는 궁궐에 모일 군사와 상왕전 행재소의 위급할 때에 달려 올 수 있는 군사를 윗조항의 정한 수에 의하여 집합시킨다. 상왕이 군사가 모두 집합하기를 기다려, 급히 달려가서 사변에 대처하는 것은 전에 제정한 취각령에 따른다. 1. 두 임금이 행재소에 있으면서 명령을 내리게 될 때에는, 먼저 낮이면 연기, 밤이면 불을 피워서 알리고, 다음에 지시를 서울에 머물러 있는 병조에 내리면, 서울에 있는 당상관은 곧 공비전(恭妃殿)에 아뢰어 소자기(召字旗)067) 를 내어 행재소 있는 쪽에 세운다. 만일 행재소가 동쪽이면 동대문에, 서쪽이면 남대문에서 호각을 불고, 나머지도 모두 이와 같이 한다. 또 사방 높은 곳에 나누어 올라가서 호각을 부는데, 호각 소리가 처음 나올 때에, 왕궁에 번들고 있는 모든 군사와 삼군 진무 등은 곧 무장을 갖추고 각 문을 굳게 지키고, 번을 나간 각 군의 총제(摠制)와 각 위(衛)의 절제사(節制使) 이하로 본시 시위(侍衛)에 속한 각 군사는, 호각을 듣는 대로 선후(先後)하여 곧 무장을 갖추고 소자기 아래에 나아간다. 병조는 먼저 도착한 군사를 거느리고 곧 행재소에 나아가고, 뒤에 도착한 군사는 차례대로 급히 달려간다. 그 나머지 조항은 모두 전에 제정한 취각령에 따른다. 소자기는 항상 궁중에 들여 두었다가 임시로 보고하여 나온다.

1. 임금이 행재소에서 취각할 때에는, 삼군이 나누어 진을 치는데, 중군은 행재소의 대궐문 남쪽에 있고, 좌군은 대궐문 동쪽에 북으로 다가서 있고, 우군은 대궐문의 서쪽에 북으로 다가서 있다. 임금은 중군 뒤에서 따로 한 개의 진을 치고, 의정부·육조·종친·공신·현직 또는 보직이 없는 2품관 이상은 임금의 진 뒤에 진을 치는데, 각 관청 별로 따로 집결하고, 의정부 관원이 집결한 곳에는 표기(標旗)를 세운다."

하였다. 상왕이 그대로 따랐다.


  • 【태백산사고본】 4책 11권 22장 B면【국편영인본】 2책 430면
  • 【분류】
    군사-군정(軍政) / 군사-군기(軍器)

  • [註 065]
    시파치[時波赤] : 응방(鷹房)에서 매를 기르는 사람.
  • [註 066]
    선자기(宣字旗) : 누른 바탕에 선(宣)자를 쓴 기로, 임금의 명령을 전달할 때에 사용함.
  • [註 067]
    소자기(召字旗) : 누른 바탕에 소(召)자를 쓴 기로, 임금이 신하를 소집할 때에 사용함.

○庚申/兵曹啓: "前定吹角令, 有未盡處, 今與議政府同議以啓。

一, 上王在行在當出令時, 先以晝烟、夜火通諭, 次下宣旨于留都兵曹, 留都堂上卽啓于主上殿, 命內吹角人吹角一通, 兵曹應之以角。 又分登四方高處, 以軍士畢會爲限吹之。 外吹角聲初發時, 壽康宮入直軍士把門及考察鎭撫一二外, 具兵甲, 直詣行在。 若中軍入直, 則左軍及出番內禁、內侍、別侍、忠義衛、左司禁以上, 節制使、軍官及時波赤等, 隨其聞角聲先後, 依壽康宮入直軍士例, 直詣行在。 主上殿命兵曹堂上, 授宣字旗, 立於昌德宮門外, 次殿內入直三軍鎭撫、各以其軍之旗, 立於定所, 右軍及元係侍衛各軍士等, 卽具甲兵, 詣昌德宮門外, 立於其旗之下。 若左軍或右軍入直, 則中軍詣行在所。 主上召當爲將帥者三人, 授三軍織文旗, 受旗而出, 就其軍立之, 聽兵曹號令。 議政府、六曹、宗親、勳舊、時散二品以上, 應合赴急者, 除有故外, 昌德宮門外依幕聚會待命。 軍士畢會則主上殿率上項軍士及議政府、六曹、宗親、勳舊、時散二品以上, 卽詣行在, 別作一陣待命。 司僕寺、軍器監、義禁府外, 留都各司, 待主上殿動駕後, 各具兵甲, 各於昌德宮門外依幕聚會待命。 其餘各件, 一依在前吹角令。 兩殿在城內吹角時, 主上殿無宣字旗及三軍織文旗。 上王殿在行在所, 主上殿在城內先吹角, 則主上殿聚會軍士及上王殿行在所赴急軍士, 依上項詳定數聚會。 上王殿待軍士畢會, 赴急應變, 依在前吹角令。

一, 兩殿在行在當出令時, 先以晝烟、夜火通諭, 次下宣旨留都兵曹, 留都堂上卽啓于恭妃殿, 出召字旗, 立於行在之方。 若行在東則東大門, 西則南大門而吹角。 餘皆倣此, 又分登四方高處吹之。 角聲初發時, 主上殿當直大小軍士及三軍鎭撫等、卽具兵甲, 各門堅守, 出番各軍摠制、各衛節制使以下, 元係侍衛各軍士, 隨其聞角聲先後, 卽具兵甲, 詣於召字旗下, 兵曹率先到軍士, 卽詣行在, 後到軍士次次奔走赴急, 其餘條件, 一依前詳定吹角令。 召字旗常時入內, 臨時啓出。

一, 上在行在吹角時, 三軍分運, 中(車)〔軍〕 在行在闕門南, 左軍在闕門東近北, 右軍在闕門西近北。 主上殿, 中軍之後別作一陣, 政府、六曹、宗親、勳舊、時散二品以上, 又於主上殿結陣之後, 各以衙門別處屯聚。 議政府屯聚處, 有標旗。"

上王從之。


  • 【태백산사고본】 4책 11권 22장 B면【국편영인본】 2책 430면
  • 【분류】
    군사-군정(軍政) / 군사-군기(軍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