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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실록 11권, 세종 3년 4월 6일 무술 3번째기사 1421년 명 영락(永樂) 19년

대마 도주 종정성이 구리안을 보내어 예조 판서에게 글을 올리다

대마 도주 종정성(宗貞盛)구리안(仇里安)을 보내어 예조 판서에게 글을 올리기를,

"나의 부덕(不德)한 소치로 백성을 제대로 단속하지 못하여, 마침내 경내 백성들이 대국의 변경을 침범하였으니, 이는 하늘이 용사(容赦)할 수 없는 바이라, 비록 죽음을 당한다 할지라도 실로 내가 원하던 바이니, 어찌 추호라도 마음에 거리끼겠습니까. 그러나 우리 고을 사람으로서, 혹은 사명을 띠고, 혹은 무역을 종사한 자들로, 당시 대국 경내에 있던 자 3백 여 명이 모두 관련되어 구류당하고 있으니, 그 부모와 처자들이 안타까워하고 그리워하는 정을 견디지 못하여, 밤낮으로 울며 정신을 잃은 자가 10에 8, 9에 달합니다. 백성 한 사람이 제대로 살지 못할지라도, 인자한 사람은 이를 걱정하는데, 하물며 3백여 명에 달하지 않습니까. 대국에는 다행히 지금 위로는 훌륭한 임금이 계시고, 아래에는 어진 신하가 있사오니, 어찌 이를 위하여 측은히 여기지 않겠습니까. 내가 옛 역사에서 이를 본다면, 요(堯)와 같은 어진 이가 아버지인데도 단주(丹朱) 같은 못난 이들이 있으며, 순(舜)도 큰 성인이지만 고수(瞽叟) 같은 모진 아버지와 상균(商均) 같은 어리석은 아들이 있었으니, 성품의 선악은 아버지와 아들 사이라도 서로 닮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을 다스리는 자는, 그 자신에만 국한하고, 그 친족에까지 연루시키지 않는 것인데, 더구나 다른 사람이야 더욱 그렇지 않겠습니까. 지금 형을 받고 죽음을 당한 자들과 구류를 당한 자들은 서로 골육의 친족도 아니며, 그들이 한 짓도 서로 관련이 없어, 월(越)나라 사람이 진(秦)나라 사람의 비대하고 수척한 것을 보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대국에서는 옥과 돌을 구별하지 않고 곤륜산(崐崙山) 불 속에 섞어 버리며 죄 없는 사람들에게까지 노여움을 옮겼으니, 어진 임금이 먼 곳의 사람을 애휼하는 도리가 과연 이러합니까. 만일 대국에서 은혜를 베풀어 일일이 옛 고장으로 돌아오게 하신다면, 이 막대한 일에 저만이 감사히 여길 뿐 만아니라, 죽은 아비 정무(貞茂)의 영혼도 지하에서 응당 은혜를 갚을 것입니다. 또한 최공(崔公)이 금년 정월에 보낸 서계(書契)를 받자오니, ‘대마도경상도에 예속되었다.’ 했는데, 역사 서적을 조사하여 보고 노인들에게 물어보아도 사실 근거할 만한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만일 대왕께서 훌륭한 덕을 닦고 두터운 은혜를 베푸신다면, 누가 감히 귀의하지 않겠습니까. 옛날 주(紂)가 무도한 까닭에, 억조의 무리가 모두 창을 거꾸로 잡고 대항하였으며, 주공(周公)이 정치를 잘한 까닭에, 월상씨(越裳氏)가 아홉 번이나 통역을 거쳐서 이르렀으니, 반드시 옛날대로 〈일본 소속으로〉 있을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그 덕이 어떠한가에 달려 있을 뿐입니다. 바라옵건대, 여러분들께서는 나의 작은 정성을 임금님께 전달하여 주옵소서. 앞서 주신 전자(篆字)로 새긴 나의 이름을 지금 찍어서 신빙할 수 있는 표적으로 삼습니다. 현하 혹독한 추위에 모두들 나라 위하여 건강에 유의하옵소서."

하였다. 나라에서는 글 내용이 공손하지 않다 하여, 사절을 예절대로 접대하지 아니하고, 그가 바친 예물도 거절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4책 11권 17장 B면【국편영인본】 2책 428면
  • 【분류】
    외교-왜(倭) / 역사-고사(故事)

對馬島 宗貞盛仇里安, 致書于禮曹判書曰:

孤之不德, 無以控馭, 遂使封內之民侵犯大國之邊鄙, 是天之所不赦, 雖就誅戮, 實是孤之願也, 秋毫豈介于懷? 其弊邑之人, 或銜使命, 或事販鬻, 而當時, 在大國邊境者凡三百餘人, 盡遭係累而收虜焉。 父母妻孥, 不勝恩愛戀慕之情, 日夜泣血, 毁其性者十有八九。 一民不得其所, 仁者憂之, 況三百餘口乎? 大國幸今上有明主, 下有良臣, 豈不爲此惻然哉?

孤也以古視之, 以爲父, 而有丹朱之不肖; 亦大聖, 而有瞽叟之頑、商均之愚。 然則性之善惡, 雖父子之間, 不相類, 故治人者, 於其身, 不於其親, 況於他人乎? 今彼誅戮之民與係累之人, 非有骨肉之親, 其施爲之不相關, 猶人視人之肥瘠, 而大國混玉石於崐火, 遷赫怒於無辜。 仁主懷綏之道, 果如此耶? 倘以大國之賜, 一一還于舊業, 則莫大之事, 非獨孤之感其德, 先君貞茂之靈, 亦當結草也。

又得崔公今玆正月之書云: "對馬島隷於慶尙道。" 考之史籍, 訊之父老, 實無所據。 然而大王若修文德, 以篤恩惠, 則誰敢不歸? 昔之無道, 億兆之衆, 皆倒其戈; 周公之盛, 越裳氏重九譯而至。 不必仍其舊, 顧其德如何耳。 但希諸公, 推孤區區之忱, 達于天聰。 前之所賜篆字卑名, 今印寫以爲信符。 辰下嚴寒, 各乞爲國保重。

國家以書辭不恭, 不禮待其使, 却其所獻禮物。


  • 【태백산사고본】 4책 11권 17장 B면【국편영인본】 2책 428면
  • 【분류】
    외교-왜(倭) / 역사-고사(故事)